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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알파고, 아직은 설계된 인공지능인 이유

by 내오랜꿈 2017.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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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국에서 벌어진 알파고와 커제의 3번기 1국은 알파고의 1집 반승으로 끝났다. 중국식룰을 적용했으니까 덤은 7집 반이다. 커제의 흑번이었으니 우리식(덤 6집 반)으로 하면 커제가 반집을 졌다는 이야기다.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도 반집 승부는 운이라고들 말하기도 하는데 겉으로만 보면 그만큼 아주 미세한 승부였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식 룰을 적용해 덤이 6집 반으로 세팅된 프로그램이었다면 알파고가 이렇게 뒀을 리 만무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늘 바둑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10집 이길 수 있는 바둑을 1집만 이기는 알파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반 이후 알파고의 우세는 확연했고, 흑이 덤은커녕 반면으로도 모자라는 형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네 귀와 변 중앙까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황이라 특별한 변수도 없었는데, 알파고는 좌변에서 거의 선수로 살릴 수 있는 백돌 5점을 죽이고(기보 144) 두는 기술을 선보인다. 이후에도 두텁게, 두텁게만 두어서 기어이 한집 반만(!) 이기는 '기술 아닌 기술'을 보여준 것이다. 수순 중계를 보면서 알파고의 알고리즘은 많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길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게 이기는 방법으로 설계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알파고의 형세판단 시스템이나 로직이 궁금했는데, 경기 후 커제와 딥마인드 CEO 및 기술 관계자가 함께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기에 찬찬히 읽어보다 다음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 커제 9단(왼쪽)과 알파고의 계가 장면. [사진제공/구글, 출처:www.cyberoro.com]


- 오늘은 커제가 1집반으로 졌다. 알파고의 목표는 그냥 이기는 게 아니고 전면적, 압도적으로 이기는 거 아닌가?


(데미스) “알파고는 언제나 승리 확률을 극대화하지 승리 로직을 극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즉 균형을 도모한다(trade-off).”


(실버) “승리 확률을 높이려면 불확실성을 감소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알파고의 수는 느슨해 보일 수 있다.”


'트레이드 오프(trade-off)'는 원래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경제학 용어다. 물가와 고용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때 주로 인용되는데, 완전고용에 가까우면 물가가 상승하고 물가가 안정화 되면 실업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 정책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고용 증가와 물가 안정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가 서로 양립할 수 없기에 어느 한 쪽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트레이드 오프'라고 한다. 위에서 인용한 구글 딥마인드 CEO인 데미스와 기술책임자인 실버의 설명만으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요소의) '균형을 도모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긴 힘들다. 유추하자면 원래 형세판단이라는 게 실리의 균형(집의 많고 적음)이나 세력의 좋고 나쁨(두터움을 읽어내는 능력 같은 것) 등을 따져 전체 국면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것인데, 이때 많이 이기기 위한 최선의 수보다는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알파고의 수는 느슨해 보일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느슨하다는 건 어쩌면 우리 인간의 감성일 테고, 인공지능의 입장(오로지 이긴다는 목표)에서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을 거란 이야기다. 이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10집 이기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는 걸 최선으로 여기는 인간의 감성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단순히 설정된 목표(이기기만 하면 된다)에 따라 움직이는 인공지능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나만 하더라도 1집 이기는 알파고가 아니라 10집이든 20집이든 이길 수 있는 만큼 압도적으로 이기는 알파고가 보고 싶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차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접바둑밖에 없다. 인간이 두 점, 세 점 접히고 두었을 때 알파고가 찾아내는 최선의 길, 이기는 길은 과연 어떤 것일까? 어쩌면 이것이 알파고와 대결하는 인간의 솔직한 자세 아닐까? 1집 반을 지고도 알파고는 '바둑의 신'이라 말하는 커제의 말은 결코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임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내면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을 것이다. 알파고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걸 느끼고 있을 테니까. 호선으로 조롱당하는 느낌의 승부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접히고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올초 알파고에게 60연패 했을 때부터 이미 더 이상 인간이 내세울 자존심도 남아 있지 않은 마당에 접바둑을 두지 못 할 이유가 있을까? 


알파고와 인간의 솔직한 승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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