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웃집에서 마지막으로 수확해 나눠 준 고구마를 삶고 있는데, 틀어놓은 TV에서 무슨 전문가라는 인간이 나와 '맛'에 관한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음식의 맛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른바 사람이 느끼는 '오미'를 언급하면서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이 오미라고 떠들고 있었던 것. 일반인이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명색 전문가라는 인간이 사석도 아니고 방송에다 대고 매운맛이 맛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떠드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매운맛은 미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통각에 속한다. 우리 몸은 맛수용체가 아니라 감각수용체(누가 내 어깨를 쳤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를 통해 캡사이신의 매운맛, 엄밀히 말하면 맛이 아니라 통증을 느낀다. 혀뿐 아니라 눈도 얼굴도 코도 심지어 팔뚝도 매운맛을 느끼는 건 혀에만 있는 맛수용체와는 달리 감각수용체는 우리 몸 어느 곳에든 분포하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외에도 글루탐산이라는 아미노산의 한 종류가 특별한 맛을 내는 핵심물질이고 인간의 혀가 바로 이 글루탐산의 맛을 느끼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우리가 조갯국이나 고기를 먹으면서 느끼는, 네 가지 맛 이외의 감미로운 맛이 바로 그것이다. 감칠맛(savory taste, 일본어로는 '우마미'라고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맛은 일본의 한 화학자가 다시마 추출물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후 다시마 같은 해조류나 육류에 많이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육식이나 잡식을 하는 동물은 대부분 이 감칠맛수용체를 지니고 있는 반면 초식동물은 감칠맛수용체가 없거나 부족하다. 특히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도 맛수용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팬다의 경우 자신의 조상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감칠맛수용체가 고장나 고기(단백질) 맛을 못 느끼게 되면서 영양가 없는 대나무 잎을 하루 종일 먹어야 하는 신세로 진화했다고 한다(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진화는 발전이 아니다).
자꾸 핵심에서 벗어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하면, TV라는 매체에서 떠들면 이런 엉터리 정보를 보통의 사람들이 그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일반 출연자가 나와서 떠들어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방송의 힘인데, 전문가라는 감투까지 씌워 놓았으니 그 힘은 배가될 수밖에 없는 것. 그럼에도 일방향으로 전달되는 정보의 진위 여부는 오로지 개인의 '현명함'에 맡겨져 있으니 온갖 사이버 정보전이 난무하는 것 아닐까? 미디어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SNS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제발 정보의 진위나 정확함에 대한 검증도 없이 아무 것이나 링크시키지 말고 한두 개를 소개해도 좀 제대로 된 정보를 선별하고 반드시 자신이 이해한 바탕 위에서 링크시켜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고구마를 삶다가 파생된 생각의 가지인지라 갑자기 궁금해졌다. 인터넷에서는 고구마를 맛있게 삶는 방법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하는. 컴퓨터를 켜고 검색해 보니 대부분 자기 경험에 근거한 신변잡기 수준이지만, 정답에 가까운 것들이 몇 개 눈에 띄긴 했다. 일단, 약한 불에 삶아야 한다는 글들...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한 글은 찾을 수 없었다. 고구마를 맛있게 삶는 데 무슨 정답 같은 게 있느냐고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더군다나 '맛은 개인의 취향이고, 고구마 품종에 따라 다를 것인데 어떻게 획일적인 방법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이다. 지극히 정당한 의문이다. 품종에 따라 맛이 다를 것이고, 토양에 따라 다를 것이고, 같은 땅이라도 어떻게 키웠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결정적으로는 맛은 개인의 취향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맛있게 삶는 방법 운운할 수 있는 건 고구마의 단맛에 대해 현대 과학이 밝혀낸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구마를 먹으면서 맛있다고 느끼는 건 단맛 때문이다. 생고구마보다 삶은 고구마나 군고구마가 맛있는 이유는 생고구마일 때보다 삶거나 구우면 고구마의 단맛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고구마는 대부분 전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구마 전분 속에는 아밀라제라는 당화효소가 들어 있다. 이 아밀라제라는 당화효소는 섭씨 50℃ 전후에서 가장 활성화된다고 한다. 곧 아밀라제라는 당화효소가 50℃ 전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고구마의 전분을 당분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당화효소가 잘 활동하지 못하고 너무 높은 온도에서는 효소가 변성되어 활동이 중지된다고 한다. 고구마를 맛있게 삶으려면 50℃ 정도의 온도를 얼마나 충분히 오래도록 유지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그러므로 강한 불보다는 약한 불로, 화력 좋은 장작불보다는 가스불로, 가스불보다는 자동으로 ON/OFF를 반복하는 인버터 방식의 전기회로를 사용하는 것이 고구마를 더 맛있게 삶는 방법인 것이다. 곧 강한 불에 빨리 삶는 것보다는 약한 불로 오래 삶거나, 삶는 중간에 불을 끄고 어느 정도 뜸을 들인 다음 다시 삶는 것이 고구마를 더 맛있게 삶는 방법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TV나 인터넷에서 떠드는 엉터리 전문가들의 말과는 비교불가 차원인 과학의 영역이기에 논란이 있을 수가 없다.
어릴 적, 겨울밤이면 쇠죽 끓인 가마솥 아궁이의 숯불이 잦아들 때쯤 고구마를 묻었다. 요즘은 숯불에 고구마를 구울 때 은박지에 싸서 넣는지라 시뻘건 숯불에 바로 넣기도 하는데 옛날엔 은박지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기에 반드시 숯불이 사그러들어 재가 될 때를 기다린 다음 고구마를 넣었다. 최소한 한두 시간은 지나야 다 익을 정도의 불이 될 때를 기다려서. 안 그러면 다 타버리기에. 이렇게 구운 고구마의 맛은 어땠을까?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이고 개인의 기억이 들어간 경험이겠지만 이때 먹었던 고구마는 지금은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가장 맛있는 고구마로 남아 있다. 불꽃이 사그러든 재 속에서 한두 시간 동안 은근하게 익은 고구마의 맛. 과학을 몰랐던 시대에 가장 과학적으로 익힌 고구마의 맛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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