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백합과 작물은 특이하게도 구근(알뿌리)으로도 번식하고 씨앗으로도 번식한다. 마늘, 양파, 부추, 파 등이 우리가 즐겨 먹는 대표적인 백합과 작물인데 파를 제외하고는 영양번식, 종자번식 모두 다 가능하다. 파는 크게 대파와 쪽파로 구분할 수 있는데(자잘한 종류가 제법 있지만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대파는 씨앗으로, 쪽파는 알뿌리로 번식한다. 쪽파도 대파처럼 간혹 꽃이 피기는 하지만 불임성이라 발아 가능한 씨앗을 맺지는 못한다.
▲ 종자용 쪽파 알뿌리 갈무리. 쪽파가 대를 눕히고 쓰러지면 알뿌리를 캐야 할 때다.
쪽파는 텃밭 재배에서 빠질 수 없는 작물이다. 파김치나 파전 등과 같이 그 자체로도 완결적인 식재료로 쓰이지만 다른 음식의 양념으로 훨씬 더 빈번하게 이용되고 특별한 병충해가 없는 편이라 기르기도 아주 쉽기 때문이다. 보통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파종한 뒤 30일 정도 지나면 크게 자란 것부터 순차적으로 수확해 이용할 수 있다. 날이 추워지면 대를 쓰러뜨리고 월동한 뒤 이른 봄부터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제주도나 남도 해안가 일부 지방에서는 푸른색을 유지한 채 월동 가능하다. 대부분의 텃밭 재배 관련 책을 보면 쪽파는 다비성 작물이니 어쩌니 하면서 많은 거름을 넣어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상업적 목적으로 내다 팔 거 아니면 거름 없이도 충분히 재배 가능하다. 거름 듬뿍 넣어 연약하게 키운 쪽파보다 거름 없이 키운 쪽파의 향이 훨씬 더 강하고 맛도 진하다.
쪽파 재배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라면 역시나 종자로 쓰일 알뿌리를 갈무리해서 보관하는 일이다. 이론적으로 쪽파의 알뿌리는 종자 휴면성이라는 특성이 있어 30℃ 이상의 기온에서 20일 정도 노출되어야만 휴면성이 타파된다. 곧 금방 캐낸 알뿌리는 다시 심어봐야 종자의 휴면성 때문에 발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쪽파는 늦봄에 알뿌리를 갈무리해 두었다가 한여름을 나고 8월 이후에나 다시 파종하는 게 일반적이다. 종자를 잘못 보관하면 장마철의 습한 날씨에 썩어버릴 수 있기에 쪽파 알뿌리는 캐낸 다음 햇볕에 일주일 정도 말린 뒤 양파망 같은 것에 넣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면서 볕 좋고 바람 부는 날에는 한 번씩 꺼내어 다시 말려주는 게 좋다.
▲ 7월 초에 파종한 쪽파의 8월 초 모습.
만약 쪽파의 종자휴면성을 빨리 타파하고 싶다면, 다시 말해서 8월 중순 파종이 너무 늦다고 생각되면 쪽파 알뿌리를 갈무리한 뒤 그늘에 보관하지 말고 계속 햇볕에 노출시키면 된다. 5월 말이나 6월 초의 한낮 온도는 25℃를 오르내리지만 뙤약볕에서는 40~50℃는 우습게 올라간다. 이럴 경우 쪽파 알뿌리를 뙤약볕 아래에 놓아둬도 종자 휴면성 타파의 기준이 되는 30℃가 적용되는가가 문제인데, 2년 동안 실험해 본 결과 휴면성 타파의 기준인 '30℃ 이상의 기온에서 20일 이상'은 태양열에 의한 복사열까지 포함된다. 지베렐린 같은 발아촉진 약품이 판치는 세상에서 뭐 그리 대단한 정보일까만 일찍 파종해서 한여름에 쪽파를 먹고 싶다면 갈무리한 쪽파 알뿌리를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시켜서 20일 이상 놓아두었다 파종하면 된다. 위 사진은 2016년 7월 초에 파종한 쪽파의 8월 초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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