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나 수박, 호박 같은 박과 작물은 가지과 작물보다 확실히 생육적온이 높은 편이다. 고추, 토마토와 같은 시기에 모종을 옮겨 심어도 일평균기온이 20℃를 넘어가야 제대로 자란다. 중부내륙지방은 5월에 들어서야 고추나 오이 모종을 심지만 남부지방은 대부분 4월 중순이면 심는다. 그러나 남부지방도 4월의 최저기온은 10℃ 언저리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다. 10℃는 박과작물이 자라기에는 턱없이 낮은 온도다. 몇 년 동안 오이 모종을 키워 옮겨 심으면서 박과 작물의 이런 생육 특성을 생각할 때 굳이 고추와 같은 시기에 심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지사. 올해는 작정하고 모종을 키워 심는 것과 직파하는 것과의 차이를 비교해 보기로 했다.
▲ 4월 초에 파종한 직파 오이. 발아하는데 보름 이상 걸렸고, 발아한 지 일주일 된 모습.
▲ 2월 말에 포트 파종한 뒤 50일 정도 키워 4월 10일경 옮겨 심은 오이 모습. 이 정도 차이라면 오이는 애써 모종을 키울 이유가 없지 않을까?
위 사진 두 장은 4월 초에 직파한 오이 모습이고 마지막 사진은 2월 말에 실내에서 포트 파종하여 50일 정도 키운 뒤 4월 10일경 노지에 옮겨 심은 오이다. 수확할 때까지 지켜봐야 정확한 비교가 되겠지만 파종 40일 차이가 이 정도라면 2월 달부터 모종 키운다고 야단법석을 피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느낌상으로 지금 자라는 모습을 놓고 비교했을 때는 20일 정도 차이 날까 말까 하다. 해마다 오이를 직파해서 키우기도 했지만 모두 여름 파종이었다. 봄에 모종을 키워 심은 오이가 한여름을 지나면 생명을 다하는 게 보통이라 6월 말이나 7월 초 정도에 오이를 직파하면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계속 오이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월 말 포트 파종하여 3월 초에 옮겨 심은 양배추. 결구가 진행중이다.
▲ 1월 말에 포트 파종, 3월 초 옮겨 심은 브로콜리.
4월의 마지막 주말, 낮기온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25℃ 위로 올라간다. 텃밭에서 한두 시간 움직이니 온몸이 땀범벅이다. 마늘, 양파밭 풀 정리하다 보니 브로콜리 꽃봉오리가 제법 크게 자라 있다. 그 옆에선 양배추도 결구가 진행되고 있다. 3월 초에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냉해 입을까 걱정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20여 일 지나면 수확해도 좋을 만큼 자랄 것 같다. 이곳에서는 양배추, 브로콜리의 2월 초 파종, 3월 초 옮겨 심기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무심히 지나치는 시간 속에 비파 열매도 어느새 엄지 손톱 크기로 자라 있다. 어쩌면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자라는 자연의 시간 속에 괜히 인간의 시간이 개입되어 늦고 빠름을 계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오이만 해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열흘 일찍 수확하고자 한 달 일찍 씨앗을 넣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건 분명 자본주의 세상이 굴러가는 기본적인 잣대가 되는 효율성이라는 기준에도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다. 농사란 게 효율성으로만 따지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야 할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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