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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채소류를 자급자족 하려는 이유

by 내오랜꿈 2017.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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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부추는 재래종이다. 시골에 들어오면서 고향집에 자라던 걸 뿌리나누기한 것으로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 때부터 키우던 것이니까 아무리 짧아도 70년 이상은 같은 자리에서 자라고 있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늘 씨앗을 맺을 틈도 없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뜯어먹히기 바빴던 부추다. 백합과 식물은 거의 대부분 기온이 낮아지면서 장일에서 단일로 넘어가는 즈음에 꽃이 피고 씨앗이 맺힌다. 자연상태로 둔다면 9월 초중순이면 꽃이 피기 시작할 텐데 먹을 것 부족했던 시절, 고향집에서 키우던 이 부추는 푸른 잎줄기가 자라는 한, 늘 잘라 먹히기 바빴다. 미처 꽃이 필 틈도 없는, 고달픈 삶을 살았던 부추였던 셈이다. 어차피 부추는 다년생 작물이고 번식도 뿌리나누기로 하는 까닭에 씨앗이 딱히 필요한 게 아니니 꽃 감상이 아니라면 굳이 피울 이유가 없긴 하다. 백합과 식물답게 부추꽃은 정말 예쁘긴 한데 우리 집 텃밭의 부추 역시 3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잘라 먹기 바쁜 관계로 꽃이 필 틈이 없다. 



▲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재래종 부추. 


채소류는 가급적 자급자족이 원칙이다. 겨울에도 월동배추를 비롯한 양배추 종류나 시금치, 유채, 대파 등이 어느 정도 월동 가능하기에 그때그때 텃밭에서 가꾸거나 집 주변 들판에서 자라는 제철 푸성귀를 뜯어먹는다. 생으로 먹는 쌈채소도 상추나 치커리를 봄동이나 양배추로 대체하면 겨울이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될 건 없다. 마늘, 양파는 이른 봄까지는 창고에서 보관한 걸 생으로 먹다가 3, 4월 두 달 동안 장아찌 담근 것이나 얼려서 보관한 것으로 대체한다(2월까지 창고에서 어떻게 마늘, 양파가 보관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비닐 멀칭 없이 물이나 거름을 안 주고 키워보라고 답하겠다.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없어서 못 먹은 경우는 있어도 보관이 안 되어서 못 먹은 경우는 없다). 어쩌다가 장기 보관이 어려운 오이나 토마토 같은 과채류를 사는 일은 있지만 이것도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하다. 독하게 마음 먹는다면 이것들도 사먹지 않아도 된다. 몇 개월 안 먹으면 그만이니까.



▲ 재래종 부추

▲ 요즘 많이 키우는 개량종(중국) 부추. 시장에 나오는 부추는 거의 대부분 중국이 원산지인 이 개량종 부추다.


농사 짓는 초기에는 자급률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텃밭에 없는 건 가끔 오일장이나 마트에서 사다 먹기도 했는데, 주변의 농가에서 채소 키우는 모습을 보고선 사먹을 생각이 절로 없어졌다. 대부분의 시골 노인분들은 이미 농약이나 비료는 어떤 작물이든 간에 많이 주는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씨앗을 파종하기 전에 토양소독제도 반드시 뿌려야 하고 풀을 잡기 위해서는 제조제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 예초기로 논둑, 밭둑의 풀을 베는 모습은 거의 구경하기가 힘들다. 어떻게 키우는지 알고 있는, 농약과 비료에 찌든 채소가 오일장에 나온다면 제아무리 시골 할머니들의 투박한 손과 애잔한 주름살로 포장된다한들 과연 그 채소를 사먹고 싶은 생각이 들까? 시골생활이라는 삶 자체가 직접 키워서 먹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재래종 부추(위)와 중국이 원산지인 개량종 부추(아래). 경제성, 생산성이라는 이름 앞에 재래종 부추는 시장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개량종 부추에 밀려 완전히 사라지디시피 했다. 


채소를 자급자족 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처음에 언급한 부추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먹던 부추와 시장에서 파는 부추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비유하자면 쪽파 보다가 대파 보는 느낌이랄까? 직접 키워서 먹지 않는다면 내가 먹는 모든 것이 이 부추와 같은 운명일 수밖에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이미 시골(사람)이 도시(사람)보다 훨씬 더 돈에 민감하고 속물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곳임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농사 짓는 사람들은 돈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농약과 비료를 반복해서 뿌리고 키운 취나물과 곤드레나물이 건조되어 상품화된 포장박스에는 버젓이 친환경 웰빙 취나물, 곤드레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물론 인증을 받지 못 했으니 인증마크는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 역시 친환경, 웰빙이라는 글자만 보지 인증마크 따위에는 관심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돈만 벌면 된다는 사람들과 돈으로 웰빙을 사려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한 이 시스템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누굴 탓하랴. 자본주의를 탓한다면 모를까.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니 맘 편하게 내 먹을 거는 내가 키우자는 아주 소박한 생각에서 키우는 가짓수가 점점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 100% 자급자족이라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없으면 안 먹고 사는 것도 자급자족의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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