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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익숙한 그리움, 부석사

by 내오랜꿈 2009.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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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길이란 '익숙함'을 찾게 마련이다. 늘상 새로운 일상을 꿈꾸며 여행을 떠나곤 하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발길은 어느새 좋았던 내 기억 속의 어느 곳으로 닿아 있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익숙한 그리움'이라 표현한다. 나에게 '익숙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절집 세 곳을 꼽으라면 화순 운주사, 청도 운문사 그리고 영주 부석사다. 

그 세 곳에 대한 그리움의 기억은 물론 제각각일 터인데 결혼한 이후 아내와 함께 한 기억이 묻어 있는 곳이 바로 부석사다. 수원과 구미에 따로 떨어져 살며 주말부부로 지낸 2년 동안 틈만 나면 돌아다닌 곳이 경북 북부 일대다. 아마도 구미에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으면서 여러 가지 볼거리를 간직한 곳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당연히 안동, 영주 일대가 선택된 것이리라.

나의 그리움과는 별도로 아내는 또 그 나름대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라 우리 부부에게 부석사는 여건만 허락한다면 언제든 달려가고 싶은 곳이다. 지난 여름 휴가를 함께 보낸 모임에서 다음에는 부석사에 사과 따러 가서 보자며 작별인사를 대신했는데, 벌써 그게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다가선다. 

그러나 가을의 주말이 항상 여유롭지만은 않다. 집안 행사, 결혼식, 다른 모임 등으로 언제나 분주한 게 봄, 가을의 주말 풍경이다. 지난 주말 역시 아내의 조카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진주에서도 오는데 서울 근처에 살면서 안 가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아내와 의논한 끝에 토요일 일정은 포기하고 일요일 새벽에 떠나서 부석사를 둘러보고 월요일에 소백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미 길을 떠난 부산팀들이 "병산서원"이라며 전화를 해서 지금이라도 출발하라고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아, 이 무렵의 "병산서원"은 또 얼마나 익숙하고 아름다운 그리움인가!

일요일, 새벽 4시. 집에서 나와 풍기IC까지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 영주 외곽을 지나 소백산 자락 가운데 하나인 봉황산 중턱에 자리한 부석사로 찾아가는 길 양옆으로 사과밭이 즐비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빨간 사과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가 코 끝에 스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파고든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아마도 조금 늦어버린 방문인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옷깃을 곧추세우고 오르기 시작한 부석사 흙길.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500여 미터의 비탈길. 노란 은행잎이 깔려 걷기조차 아깝다. 무엇이든 가장 아름다울 때 찾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는 바램일 터이지만 잎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한 은행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흙길. 늘씬한 당간지주가 있어 아쉬울 것도 없고 차근차근 음미하며 걷다 보면 지루할 틈도 없다. 



경사를 최대한 이용하여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 건물의 가람 배치. 천왕문에서부터 경내가 시작되는데, 사천왕이 지키고 있으니 이 안쪽이 도솔천인 셈. 범종루 아래에 서니 안양루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높낮이에 차별을 둔 석축도 음미하여야 할 볼거리다.


▲ 범종각에는 법고와 목어만 있고, 정작 범종은 서편 다른 건물에 있다. 


▲ 범종각의 한 단 위에 방랑시인 김삿갓이 백발이 된 뒤에야 올랐다는 안양루가 살짝 비껴 있다. 제멋대로 생긴 자연석을 맞추고 쌓아서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석축. 


▲ 안양루 계단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비껴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한 답사객. 요리조리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를 자랑하는 석등의 미학에 폭 빠졌나 보다.




그렇게 오르고 올라 가파른 길 맨 위에 자리한 '무량수전' 앞에 섰다. 한 때는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외워야 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외운 중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니 봉정사 극락전이 더 오래되었다고 가르친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만 난 어느 건물이 더 오래된 것인가, 무슨 사건이 일어난 연도는 언제인가, 연대 순으로 잘못 나열된 것은 무엇인가, 같은 식으로 시험을 치르며 역사를 배운 세대다..-.-... 

해뜨기 전, 무량수전 앞마당에 서서 지금까지 올라온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맛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시야가 탁 트인 삼층석탑에서 아래를 보면 겹겹이 펼쳐진 유연한 소백산 자락과 마주한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양날개로 굽어볼 수 있다. 으레, 이곳에서는 소백산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이 예쁘다는 이야기만 들었기에 이 시간의 부석사는 처음이다. 역시 같은 곳이라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 나름의 멋이 존재한다. 

아내가 동부도밭에 가자고 하여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섰지만, 한 단 아래로 잘못 왔는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다시 올라 가기도 그렇고, 새벽부터 움직인 대가인지 배도 고파오기에 서둘러 내려오고 말았다. 방바닥이 따끈하게 데워진 '종점식당'에서 새벽 한기에 으슬으슬해진 몸을 녹이며, 아침으로 청국장이 딸려나오는 산채정식을 시켜 먹는 것으로 부석사를 향한 '익숙한 그리움'을 접었다. 


▲ 무량수전 앞에서, 범종각을 중심으로 바라 본 부속 건물들. 


▲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한 불제자가 일으키는 흙먼지를 피해, 창건주인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전설이 담긴 부석 앞에 섰는데, 이 뜬돌은 부석사(浮石寺)란 이름의 근간이기도 하다. 


▲ 무량수전에서 조사당 가는 길목에 화사석을 잃은 석등과 삼층석탑이 있다.


▲ 시야가 탁 트인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풍광들. 겹겹이 펼쳐진 유연한 소백산 자락을 뒷배경으로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양날개로 굽어볼 수 있다. 


200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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