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여유/여행

매물도 낚시여행 - 첫째날

by 내오랜꿈 2009. 10. 21.
728x90
반응형


매물도에서의 첫째날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나, 여름휴가를 같이 보낸 남편의 대학 써클 선배부부와 매물도 한 번 가자고 입을 모았었는데, 가을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섬여행을 감행하게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어둠을 가르며 여수를 출발, 진주에서 대진고속도로를 올리자마자 운전이 힘들 만큼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배 시간까지 여유를 둔 6시경에 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에 도착한 이유는 새벽 서호시장에서 해물거리라도 살 게 있나 싶어서였는데, 개인적으로 종류나 가격면에서 여수만 못한 것 같았다. 시장을 배회하다가 일행과 합류하여 아침거리로 저마다 원조라고 수선을 피우는 한 식당에서 충무김밥을 사 들고 7시 첫 배를 탔다.

 


 

통영의 여객선 터미널에서 1시간 30분 정도 뱃길을 달린 내내 잠에 취한 사이 도착한 아름다운 섬 매물도. 우리 일행을 빼고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이 모조리 내렸을 때야 그곳이 소매물도임을 알았다. 우리 일행을 포함한 몇 명 만이 대매물도의 대항마을 선착장에 내렸다. 소금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갯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선명한 색의 슬레이트 지붕 곳곳에 '민박'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안 가봐서 모르지만 소매물도에는 물도 귀하고, 민박도 불편하고, 등대바위 외에는 별로 볼 게 없다는 마을 아줌니 말씀을 위로 삼으며 가파른 언덕배기에 위치한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낭군들이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사이, 여행자답게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을 기웃거리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에서 노부부가 염소 잡는 장면을 생전 처음 봤는데,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무안하여 어른들께 인사만 건넸다. 어촌답게 집집마다 대여섯 마리 생선이 담긴 작은 그물망이 걸려있다.

 

 

 

민박집에서 방파제 쪽 사정을 살피니, 뭔가 열심히 건져올리는 듯하여 서둘러 내려가 보니 온통 전갱이(이곳 사람들은 '매가리'라고도 함) 천지. 낚시대만 던지면 전갱이 떼가 달려들어 다른 어종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은빛 '며루치' 떼도 얼마나 이쁜지.. 제법 먼 바다여서 뭍에서의 너저분한 방파제 풍경과는 달리 쪽빛 바다를 유영하는 고기 떼가 죄다 눈에 들어올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괴물 같이 생긴 큰 해파리도 생전 처음 봤다. 남편이 쥐어준 낚시대에서 활동이 왕성한 전갱이에게 꾼들이 말하는 손맛이란 것도 느꼈다.

 

 

 

두어 시간 투자하여 잡은 어획물로 점심상을 차려 시장기를 달랬다. 벵에돔과 볼락 한 마리씩 겨우 잡은 것은 씨알이 작아 애처로왔지만 뼈꼬시 치고, 굵직한 것만 골라낸 전갱이는 다섯 판 정도 구웠는데, 갓 잡은 싱싱함만으로도 뭔들 맛있지 않으리오.

 


 

신새벽에 하루를 시작한 까닭에 시계가 제자리 걸음하는 냥 무지 길게 느껴지는 하루. 1차 낚시가 끝나니 마땅히 할 일이 없다. 민박집에서 부리는 낚시배로 일인당 만 원의 비용이 드는 소매물도 관광을 나설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또 하나의 마을인 당금마을 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가을이 가을다워야 하건만 왜이리 덥누. 조금 걸었는데 땀이 삐질삐질 난다. 매물도의 사정은 잘 모르나 어림짐작하건데, 섬이니 어업에도 종사하겠지만 집터 주변으로 작은 채마밭을 가꾸고 민박을 치며, 자가용인 소형배로 낚시꾼이나 관광객을 상대하는 것이 주수입원인 듯 보인다. 차도가 없는 이 섬 안에서는 당연히 자동차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덕분에 오로지 보행자만 존재할 뿐이다. 비교적 조용하고 한적하여 스스로가 견딜수 있을 만큼 머리 식히러 오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언니랑 책 한 권 손에 들지않은 점을 아쉬워하며, 다시 방파제로 내려와 혹시나 하고 낚시대를 던졌다. 여전히 극성인 전갱이. 하는 수 없이 저녁거리로 방금 들어선 어선에서 농어와 참돔 오만 원 어치를 샀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 완벽한 어둠이 찾아 오기 직전의 황홀한 바다. 이내 수면 위의 모든 그림자를 삼킬 것이다.

 


 

산허리에 위치한 민박집은 이 마을 이장댁인데, 한 번 오르내릴 때마다 여간 숨가쁜 게 아니다. 애초에 저녁은 사먹을 생각에 매운탕 끓일 재료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인심 좋은 쥔 아줌니께서 재료를 전부 그냥 주셨다. 두툼하게 썬 회와 보글보글 끓인 깔끔형 매운탕을 안주 삼아 소주가 빠질 수 없는 완벽한 저녁을 챙겨 먹고 다시 밤낚시를 나갔는데, 촉촉한 바람의 질감이 그만이다. 한참을 놀고 있으니, 짙은 어둠을 뚫고 요란하게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정체는 해안 경비정인데, 정박한 이유를 모르겠다. 해가 쓰러진 방향에 눈썹 같은 초생달이 하늘에 걸려 있다. 별 수확없이 낚시를 접고, 야참으로 남편이 준비한 오뎅탕을 먹은 후 하루를 마무리했다.

 


written by 느티 : 2006 10 21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