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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꽃살문의 유혹, 성혈사(聖穴寺) 그리고 사과따기 체험

by 내오랜꿈 2009.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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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30분. 부석사를 나와 아침을 챙겨 먹었는데도 시간은 마냥 여유롭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몸이 나른한 느낌이다. 그래서 소수서원에 들렀지만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주차장에서 2시간 남짓 눈을 붙였더니 심신이 개운해진 느낌이다. 한 시간여 거리의 모처에서 일박한 지인들이 여유를 부리는지 출발이 늦어지는 것 같다. 시간도 죽일 겸 순흥쪽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성혈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소백산 국망봉 자락에 위치한 성혈사(聖穴寺)는 아스팔트를 벗어나 사과밭 사이로 한참을 올랐는데도 과수원이 끝나는 곳으로부터 30도 경사는 되어보이는 산길을 또다시 올라야 한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협소한 길이다 보니 내려오는 차라도 만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딱히 주차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공터에 차를 세우니, 길 오른편 산자락에 모과나무에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손이 모자라는 건지 나무 밑에는 모과가 떨어져 뒹굴고 있고,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독경 소리만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술 담그기에 관심이 넘치는 남편이 '따 갈까?'라고 묻기에 '일부러 시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고 싶냐'고 타박하며 말려야 했다.

경내는 기울어가는 절 상태를 반영하는지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 된 느낌이다. 중창과 보수를 위해 서까래 삼십만원에서부터 기둥 삼백만원까지 등급별로 금액을 적어 불사를 모집중인 플랭카드가 요사채로 여겨지는 건물의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불편한 마음은 잠시 접고 경내를 둘러보지만 이렇게 인적이 드물어서야 어디 제대로 모금이 될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2, 3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집 근처의 경기도 박물관에서 '꽃살문 전시회'를 했을 때 성혈사란 이름이 각인되었는지, 전문적으로 답사를 다니는 친구의 입을 통해 각인된 익숙함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정작 와 보기는 처음이다. 부석사와 마찬가지로 의상대사의 창건물인 아담한 '나한전'. 단청이 칠해지지 않아 더 맛이 깊은 꽃문살을 눈으로 어루만지며 망중한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다. 인근의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더없이 매력적인 곳이긴 하지만 관광지화된 지 오래라 번잡하고 사람으로 넘쳐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혹여라도 그 곳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시달림을 겪었다면 이 곳에 들려 마음을 위로받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나한전에는 석조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친근한 인상의 16 나한이 모셔져 있는데, 찾아 온 예를 드리고 급하게 찍은 것이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빛바랜 단청의 천정 조각에서도 수백년 세월이 느껴짐.


▲ 정면3칸 중, 소담스럽게 피어오른 모란꽃의 오른쪽 문살과 빗꽃살이 규칙적으로 새겨진 왼쪽 문살.


▲ 나오는 길에, 호수가 예뻐서 차를 세우고 잠시 단풍놀이를 즐기다가 제대로 엎어져 피를 보았다. 구경을 끝내고 차 쪽으로 몸을 돌리려다 뒤의 벤취를 미처 못 본 탓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시라도 했는지 몇 일 전, 웬지 밴드 한 상자를 차에 비치하고 싶더라니.. 끙~ 


▲ 전원주택에 관심이 많은 고로, 아름다운 호수를 낀 언덕에 전원주택인지 별장인지는 모르지만 '한스빌'이라는 문패를 달고 작은 촌락을 형성하고 있기에, 잠시 올라가서 구경을.



11시 가까이 되어서야 만나기로 한 일행들이 부석사쪽으로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 여름휴가 때 지나가는 말투로 나온, '가을에 부석사 사과 따러 가자'는 말을 이렇게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소백산 산행을 포함하여 겸사겸사 오게 되었는데, 다른 팀들은 아직은 애들이 어린 까닭에 우리 부부처럼 마음 놓고 산행을 즐기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경북 구미가 주소지였을 당시, 중앙고속도로는 풍기까지만 개통했고 제천과 풍기 구간의 죽령터널은 아직 뚫리기 전이었다. 춘천여행을 다녀오며, 굽이굽이 죽령고개를 넘은 직후에 풍기의 도로변에서 구입한 사과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조직은 단단하고 신맛과 단맛의 환상적인 조합은 물론, 쪽을 갈랐을 때 노란 꿀선이 선명하게 빛을 발했다. 이후 명절날 선물 들어온 최상품이라는 사과조차 그때 먹었던 풍기사과 만큼 맛나지는 않았다. 강수량은 적고,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해발고도가 높아 온도차가 큰 천혜의 자연조건이 맛 좋은 사과를 재배 가능케 하는 것이란다.

대구나 경북이 사과의 최대 주산지로 알려졌지만 최근엔 지구 온난화 현상의 영향을 받아 강원도 최전방에서도 재배된다는 소식이 들리는 상황이다. 그런 까닭에 남편과 나는 그때의 사과 맛이 날까, 궁금해 하며 사과따기 체험이 예약된 '뜬바우골' 농장으로 달려갔다.

친환경 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하는 '뜬바우골 작목반'에서 나온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사과를 먹어가면서 재배법이나 종류, 맛있는 사과 따는 요령 등의 강의를 듣고, 사과 따기에 돌입했다. 나눠 준 봉지에 사과를 따고, 무게 만큼 가격이(\5,000/1kg) 책정되는데, 환경을 살리는 자연 농법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그닥 비싼 가격은 아닐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인당 오천원을 받고 적당량 만큼 따가는 식의 체험이었는데, 채산이 안 맞았는지 올해부터는 방법이 바뀌었단다. 사과를 따면서 과수원 내에서 먹는 것은 무제한 공짜라서, 힘 닿는 한 양껏 먹을 욕심을 부려보지만 대부분 2개 정도만 먹으면 배가 불러온다. 나중에 지갑이 대책없이 가벼워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막무가내로 따지 말라는 약간의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 두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강의 듣는 일행들.


▲ 초록잎 사이로 주먹만한 사과가 올망졸망 달려, 붉은 빛을 발하며 유혹한다. 


▲ 쓱쓱 문질러서 두쪽 가르기가 힘겨울 만큼 단단한 조직을 자랑하는데, 변함없는 천연 꿀맛에 감동.


▲ '맛있다'를 연발하며, 사과에서 입을 떼지 않는 아이들.


▲ 우리 부부는 적당히 무게를 가늠하며 땄지만 아이들이 있는 집은 대중없이 따다 보니 기격이 만만찮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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