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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동해, 울진의 겨울 바다, 백암온천 그리고 대게

by 내오랜꿈 200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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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온천. 우리나라에서 울릉도까지 직선거리가 가장 짧다는 울진 후포항에서 10여 분 거리의 백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LG, 농협 등의 기업체 연수원과 한화콘도가 있어 그리 접근성이 좋지 못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결혼해서 구미에 살던 시절, 두어 번 들러본 이후로 망양정, 월송정, 성류굴, 불영계곡 등의 주변 풍광과 제철 먹거리의 풍부함에 이끌려 자주 찾게 되는 곳 가운데 하나다. 특히나 겨울철은 값싼 자연산 횟거리는 물론 살오른 대게가 사람들의 혀끝을 유혹하는 곳이기도 하다(겨울과 초봄의 한화콘도 쓰레기 봉투는 대게 껍질 일색이다).

그러나 수도권에서의 접근성은 그리 만만치 않다. 가장 직선거리라 할 수 있는 길은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풍기IC로 빠져 나와 36번 국도를 따라 영주 봉화를 거쳐 31번 국도로 바꿔 타고 내려가다 88번 국도를 따라 평해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말이 직선거리지 36번 국도를 벗어난 다음의 31번 88번 도로는 산길을 돌고 도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수원에서 백암온천까지 걸리는 시간은 안 막힐 경우 3시간 30분 정도. 시간상으론 부산 가는 것보다 더 걸리는 시간이다.

늘 다니던 익숙한 이 길을 접어두고 이번엔 일출도 볼 겸 동해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는 7번 국도를 택했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동해까지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7번 국도의 4차선화가 상당 부분 완공되었으리란 지레짐작도 이 길을 선택하는데 한했다. 새벽 5시에 출발해 7시 30분경 묵호항 앞바다에 섰다. 동틀 무렵의 묵호 앞바다는 자신의 살아있음을 방파제에 부딪치는 거센 파도로 표현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자신에게 맞서는 것은 집어삼키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은 거센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서,남해의 그 얌전한 바다는 언제나 만만한 놀이터였던 어린 시절의 동네 저수지 같다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오랜만의 동해 일출을 기대했지만 잔뜩 낀 구름으로 원하던 그림의 해맞이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 해뜨기 직전의 묵호 앞바다


▲ 곰칫국은 지역에 따라 끓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묵호에서는 신김치로 시원한 맛을 냈고, 후포에서는 콩나물을 위주로 하여 해장국 같은 맛을 냈다. 몇 년 전 묵호항에서 먹었을 때는 맑은 지리탕으로 먹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대부분 이렇게 김칫국 같이 끓이는 게 대세인 모양이다. 여수에서는 김치 같은 건 전혀 넣지 않고 무우와 야채를 중심으로 맑은 지리탕으로 끓여 낸다.


방파제 인근의 식당에서 따끈한 곰칫국 한 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한 뒤 묵호항 어시장 구경으로 시간을 보내다 다시 7번 국도를 탔다. 군데군데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직선화되어 수원에서 후포항까지 약 4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7번 국도의 확장공사가 마무리 되면 40분 이상은 단축되어 시간상으론 영주 봉화를 가로지르는 내륙길과 별 차이가 없어질 것 같다.

후포항에서 친구 부부와 만나자 마자 우선 대게부터 사기로 했다. 어판장 주변에 대게를 파는 가게들이 몇 있었지만 우리는 항구 안에 마련된 좌판을 어슬렁거리다 경매에서 탈락된 대게를 판매하는 아주머니 무리들 틈에서 다량의 대게를 구입했다. 이 대게들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속이 덜 찬 관계로 경매에도 오르지 못한, 한 마디로 말하면 불합격품인 셈이다. 그러나 즉석에서 먹기에는 그렇게 문제가 될 게 없을 뿐더러 경매를 거친 대게의 1/3 이하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니 현지에 들린 여행객이 먹기엔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대게가 쪄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항구 끄트머리에 즉석으로 회를 썰어 파는 좌판에서 오징어회를 떴다. 처음엔 그냥 가볍게 회맛만 볼 요량이었는데, 소주가 한 잔 들어가자 생각이 달라졌다. '고무다라이'에서 열심히 헤엄치고 있던 쥐치까지 썰어 본격적으로 난장에서 소주판이 벌어진 것. 오징어 열몇 마리 10,000원, 쥐치 5마리 10,000원. 게다가 초장까지 공짜로 얻어먹었다. 어느 곳에서 이렇게 먹을 수 있으랴. 먹다가 쥐치회는 남아서 콘도로 가져가 밤에 마저 먹었다.^^

사실 묵호항에서 곰칫국으로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딱히 배가 고팠던 것은 아니었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회는 유난히 달고 맛났다. 그것은 아마도 내일처럼 기꺼이 자리를 만들어주고, 초장과 먹다 남은 소주까지 챙겨주는 회 파는 젊은 아주머니와 그 옆에서 조개를 파는 할머니의 진심어린 인정이 보태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살가운 인심에 허우적거리며 정신을 놓고 먹다가 마지막에는 카메라 챙기는 것도 잊어버리고 숙소로 잡은 한화콘도로 향했다. 그리하여 다음 날 아침 카메라를 되찾기까지 백암산 등반 사진부터 콘도에서의 대게파티 사진은 휴대폰으로 찍은 몇 장을 제외하곤 당연히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 배가 포구에 닿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즉석 경매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묵호항).


▲ 경매에서 탈락된 대게는 항구 주변의 난장에서 즉석에서 쪄 판매되는데, 마리당 2,3천원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속이 덜 차거나 다리가 몇 개 없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 하루 사이, 30마리 정도 될 법한 양의 대게를 쉼없이 해치우는데 당당 일조를 한 아이. 물릴 법도 한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렇게 게를 잘 먹는 가족은 처음 봤다.


콘도에 도착하니 2시 이후에나 입실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콘도 뒷편의 백암산 등반부터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백암온천을 대여섯 번은 들렀지만 정작 산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콘도 뒤쪽의 산책길을 따라 완만하게 시작되는 등반로를 30여 분 오르자 가파른 급경사가 이어진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때를 놓쳐 거의 잠을 못 자고 온 탓인지 오늘따라 몸이 영 말을 안 듣는다. 짊어졌던 배낭을 아내에게 맡기고 뒤따라 올라가지만 천근 같은 이내 몸은 자꾸만 뒤쳐진다. 게다가 하산길로 택한 백암폭포 코스가 얼마나 가파르고 험하였던지 만약 등반코스를 거꾸로 폭포방면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더라면 분명 중간에서 오르기를 포기했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힘든 반나절의 산행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 해발 1004m 정상의 백암산. 동해바다가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주산인 백암산을 첩첩히 둘러싼 수많은 산세들을 굽어보는 탁 트인 눈맛이 시원하여 모든 힘겨움을 한방에 날려주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멋진 산이다.


▲ 백암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능선(아래 사진과 함께 휴대폰으로 찍어 화질이 좀 떨어진다)


우리가 정상을 오르고 있는 동안 중간쯤 오르다 아이들과 먼저 내려간 친구 부인 역시 백암폭포 방향 하산길의 그 끔찍함을 몸소 경험한 터라 이날 산행은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바로 대게 먹기에 돌입. 밤 늦게까지 대게를 산더미처럼 징하게 쌓아놓고 친구가 가져온 와인과 집에서 직접 담근 매실주로 파티를 벌였다. 소주, 와인, 매실주, 맥주 등 제법 만만찮은 양을 마셨지만 여인네들도 즐겁게 동참해 양을 덜어준 덕분인지 별다른 숙취없이 상쾌하게 아침을 맞았다. 대게를 넣어 육수를 만들어 국물맛을 낸 환상적인 라면과 어묵탕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숙소였던 콘도의 온천이 아닌 조금 한가한 호텔 온천을 찾았다. 목욕비는 온천축제기간을 맞아 어딜 가나 삼천원만 받고 있었다. 예전에는 온천이나 사우나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여행 다니면서 숙박비도 아낄 겸 겸사겸사 찜질방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은근히 사우나를 즐기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한 것 같다.

다시 후포항으로 나와 어제 잊고 간 카메라를 찾은 뒤 때마침 후포 5일장인지라 재래시장을 둘러보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생선꾸러미를 손에 쥐게 된다. 가격이 너무 싸기 때문이었다. 싱싱하기 그지 없는 꽁치를 10여 마리 쌓아두고 5천원이란다. 도루묵 수십 마리가 5천원이다. 고등어도 마찬가지다. 완전 '허거~ㄱ'이다. 그러니 어찌 사지 않을 수가 있으랴. 그렇게 생각지 않았던 장을 보고 인근의 바닷가 식당에서 도루묵찜과 곰칫국으로 점심을 먹고 친구 가족과 헤어진 우리는 느긋하게 다시 묵호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겨울철이면 더더욱 살인적으로 변하는 상습적인 주말 귀경길의 영동고속도로 정체를 피하고, 새벽시장에서 장도 볼 겸해서 묵호항에서 일박을 더 하기로 한 때문이다.


▲ 울진에서 동해 묵호항으로 가는 7번 국도를 끼고 형성된 바닷가 마을에는 줄줄이 널어 놓은 오징어가 이색 풍경을 자아낸다. 


▲ 먹음직스런 대게. 영덕보다는 울진 후포항이나 죽변항에서 구입하는 대게가 가격이 싸다. 영덕은 너무 관광지화되어 이들 지역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싸다. 연말에 부산에서 지인들이 집에 왔을 때 울진에서 1마리에 10,000원짜리 대게를 시켜 먹었는데, 살이 가득 차서 어른 한 사람이 두 마리를 먹기가 힘들었다.


요즘은 시절이 좋아서 굳이 산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먹거리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지만 그래도 산지에서 직접 맛보는 제철음식이 유혹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침 일찍 들른 묵호항 어판장에서 구입한 산오징어를 비롯해 이번 동해 여행에서 장만한 양미리, 꽁치, 고등어, 건조가자미, 반건조 오징어, 마른 북어 등은 두고두고 이번 겨울의 우리집 반찬이 될 것 같다. 동해바다, 대게, 그리고 넘쳐나는 생선들. 이번 여행의 키워드다.

▲ 양미리구이. 매끼마다 종류를 달리하며, 식탁에서 생선을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먹는 중.


▲ 크리스마스 날, 근처의 지인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생물 오징어를 통째로 먹물찜도 해먹고, 파전에도 넣었지만 그래도 많이 남아서 일부는 손질하여 냉동시키고, 일부는 이 사진처럼 베란다에 널어 직접 반건조 오징어를 만들기로 했다. 맑은 공기와 찬바람을 맞으며 꾸덕꾸덕 말려야 하는데, 아쉬운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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