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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태환경

봄이 시작되는 곳

by 내오랜꿈 2017.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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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봄의 '시작'과 '끝'을 달력 위의 날짜로 경계지을 수 있을까?


"기상학에서는 일 평균기온이 5℃ 이상으로 올라가는 때를 봄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일 평균기온을 산출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대개 오전 10시 전후의 기온이 일 평균기온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울산의 오전 10시 기온은 6℃ 가량 된다."


얼마 전, 어느 지방 일간지 '오피니언' 코너의 "겨울이니? 봄이니?"란 제목의 칼럼 내용 일부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기상청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까지 언제부터를 진정한 봄의 시작으로 보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칼럼이다 보니 논조도 확신에 찬 어조로 일관하고 이런저런 통계자료까지 들먹이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꽤나 설득력 있는 전문적인 글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글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경험치로 추론한 사실을 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글로서는 빵점이다. 일단 10시 전후의 기온이 일평균기온일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부터가 계절에 따른 태양 고도, 구름의 정도, 바람의 세기, 비의 유무 등 그날그날의 기상조건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므로 기상학을 들먹이는 글에 논거로 쓰이기에는 너무 유치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아래는 2016년 2월 29일에 전파를 탄 어느 방송사의 뉴스 시간에 기상캐스터란 인간이 나와서 마이크에 대고 떠들었던 내용이다.


"봄이 오는 듯하다 다시 추워졌습니다. 어제 눈이 내리고 북서쪽에서 한기가 내려왔는데요. 현재 기온 서울이 영하 5도 안팎까지 떨어져서 꽤 쌀쌀합니다. 하지만 이번 추위는 오래가진 않습니다. 내일까지는 평년을 밑도는 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모레 낮부터 기온이 크게 오르겠습니다. 특히 목요일에는 서울의 낮 기온이 12도 , 금요일에는 15도까지 올라 올 들어 가장 높겠습니다. 기상학적인 봄의 시작은 일주일 간 일평균기온이 5도 이상일 때 그 첫날을 봄의 시작으로 보는데요. 그 기준으로 하면 3일인 목요일부터 본격적인 봄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상캐스터가 방송에서 '기상학적인 봄의 시작', '일평균기온 5도' 운운하며 떠드는 내용이니 이걸 시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호도 의심할 생각을 못 하고 믿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상학적인 봄의 시작은 일주일 간 일평균기온이 5도 이상일 때 그 첫날을 봄의 시작"으로 본다는 건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둔 소린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방송에서 이런 정체불명의 헛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 정도면 차라리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가벼운 편파방송이 진실보도에 더 가깝다 할 것이다.



▲ 생강꽃

▲ 달래


기상학적인 봄의 시작에 대해 우리나라 기상청은 아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9일간의 일평균기온이 섭씨 5도 이상이고, 다시는 일평균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 때 그 시작일"을 봄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는 것. 예컨대 3월 1일부터 3월 9일까지의 일평균기온의 합산 평균이 섭씨 5도 이상이고, 3월 9일 이후로 일평균기온이 섭씨 5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없다면 그해의 봄의 시작일은 3월 1일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눈치빠른 사람은 일평균기온 5도라는 기준이 겨울의 구분에도 적용되리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의 시작은 역으로 "9일간의 일평균기온이 섭씨 5도 이하이고, 다시는 일평균기온이 5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때 그 시작일"이 되는 것이다. 봄, 겨울을 이렇게 구분한다면 다른 한 쌍의 계절 구분도 있을 것인데 여름, 가을의 구분은 섭씨 20도가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위에서 예를 든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사실과 다른 내용을 진실인 양 보도하는 엉터리 보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엄연히 기상학적인 측면에서 계절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잡설'을 끌어들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좋게 해석하자면 이런 허위사실 보도로 인한 기대이익이 별로 없다는 측면에서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허위사실 보도라 할 수 있다. 굳이 죄를 따지자면 스스로 평균 이상의 지성과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언론계 종사자들의 무지함에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래도 명색 기상학에 관련된 내용인지라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한 가지 복잡함이 있긴 하다. 기상청에서 계절을 구분할 때 적용하는 일평균기온은 그해의 일평균기온이 아니라 해당 날짜의 10년치 일평균기온의 평균으로 따진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2017년 3월 1일의 일평균기온은 2008년 3월 1일부터 시작해서 10년 동안의 3월 1일 일평균기온의 산술평균을 구한 값을 적용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계절 구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날짜 편차를 줄이기 위함이다. 2,3월이 몹씨 추운 해도 있을 것이고 따뜻한 해도 있을 것인데 한해의 기온만 적용한다면 2월에 봄이 시작되는 해도 생길 수 있고 4월에 봄이 시작되는 해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상학적인 계절 구분이 아니라 2017년의 봄의 시작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2017년의 일평균기온만 따지는 게 보다 더 확실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신문기사나 방송에서 일평균기온을 이야기할 때 10년치 자료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위에서 예로 든 신문기사나 방송은 이와 무관하게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 오레가노

▲ 머위

▲ 배초향(방아)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과학적 엄밀함에 바탕을 둔 이러한 계절 구분보다는 사람들 저마다의 마음 속에 각인된 그 어떤 기억이나 시그널이 봄의 시작을 알리는 더 중요한 징표 아닐까? 그게 하루라도 빨리 멋을 내고픈 여인네의 옷차림이든, 매일 오르내리는 뒷산에 핀 진달래든. 


나에게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은 집 뒷산에 피어나는 진달래나 생강나무의 꽃과 메마른 땅을 비집고 돋아나는 머위나 방아 잎사귀 같은 봄나물들의 새순이다. 묘하게도 이것들이 꽃 피거나 새순이 올라오는 시점과 기상학적인 계절 구분은 늘 근접한다. 올해만 해도 내가 사는 지역의 기상학적인 구분을 적용한 봄의 시작일은 2월 28일이다(앞으로 일평균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이 즈음부터 우리 집 텃밭의 배초향(방아)과 머위 새순이 돋아나고 집 뒷산의 생강꽃이 피기 시작한다. 특히 머위순이 올라오는 시점은 해마다 봄의 시작일과 거의 일치한다. 텃밭에 머위를 키우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 따져보시기 바란다. 


올해도 봄은 이미 잰걸음으로 내 앞을 저만치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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