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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태환경

봄에 꽃 피우는 비파나무 - 일탈일까, 진화일까?

by 내오랜꿈 2016.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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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텃밭 작물을 키우면서 그 작물의 생태적 특성이나 재배방법에 대해서는 꽤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다. 작물이 책에서 습득한 지식대로 자라주는 선행을 배풀 리야 만무하지만 무농약 무비료 재배를 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생리장해 현상이나 병충해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 그러기 위해서는 각 작물의 생태적 특성과 재배방법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작물을 재배하는 곳의 토양이나 기후조건 등 재배환경에 대한 이해도 선행되어야 한다.



▲ 2016년 1월 29일, 영하 10℃에 2~3일 노출되고도 살아남은 브로콜리.


그런데 작물을 키우다 보면 가끔씩 내가 알고 있는 작물의 생태적 특성과는 다른 모습을 경험할 때가 있다. 더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재배방법을 시도할 때도 있고,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다. 양배추 종류인 브로콜리는 대부분의 작물학 교과서에서 영하 3℃ 내지 영하 5℃ 이하에서는 월동이 어렵다고 되어 있는데, 몇 년 키워 보니 남부 해안지방의 경우 영하 7~8℃까지도 견디는 걸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이제는 브로콜리의 월동 재배를 위해 서너 차례 육묘 시기를 달리해 모종을 키우는 방법까지 시도하고 있다.



▲ 지난 6월에 핀 꽃에서 자라는 치자 열매. 이 나무에서 9월이면 또다시 꽃이 핀다.


반면에 해마다 반복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고 넘가가는 경우도 있다. 치자나무의 경우 해마다 6월 중순이면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가 한창 굵어져 익어갈 무렵인 9월 중순이면 또다시 꽃이 핀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난대성 수목의 경우 영양생장은 일 년에 몇 차례 반복하는 걸 볼 수 있는데(예컨대 녹나무나 후박나무 등), 생식생장을 반복하는 건 내가 아는 한 아직 알려져 있는 게 없다. 예외가 있다면 열대성 작물인 커피나무의 경우 하우스 재배에서 봄부터 시작해서 몇 차례 순차적으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고 하는데 치자나무가 일 년에 생식생장을 두 번 하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단순히 기후 온난화 현상이라고 치부한다면 제주도에서 자라는 치자나무는 전부 생식생장을 반복해야 할 터인데 아직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집 마당 한편에서 자라는 비파나무도 대표적인 난대성 식물이다. 온도에 민감해 영하 5℃ 이하로 자주 내려가는 지역에서는 꽃이 잘 피지 않고 핀다 해도 열매는 거의 맺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늦가을인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꽃이 피어 그 상태로 겨울을 난 다음 이듬해 2~3월부터 열매가 굵어지기 시작해 6월에 노랗게 익는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이랬다. 그런데 올해는 이 비파나무도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 2016년 5월 25일의 비파나무. 작년 가을에 핀 꽃에서 비파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데 한 줄기에서는 꽃을 피우고 있다.

▲ 2016년 7월 22일의 비파나무. 봄에 핀 줄기에서 비파 열매가 굵어가고 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난 5월 초순, 비파 열매가 한창 익어갈 무렵에 난데없이 줄기 하나에서 꽃이 피었다. 12개월이라는 비파나무의 생태 사이클로 보자면 정확하게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정반대의 시기에 꽃이 핀 것이다. 처음에는 '세상이 이상하다고 너까지 왜 그러냐' 혼자 읊조리며 그냥 넘어갔다. 이제 곧 열매가 익고 새잎을 밀어올릴 터인데 저게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꽃이 자라 이 더위에 비파 열매를 키우고 있다. 다른 줄기들은 한창 새잎을 키우면서 다가올 가을의 개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혼자 열매를 키우는 저 줄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게 올해만의 해프닝에 끝날지 치자나무처럼 연례행사가 될지 지켜봐야 할 거 같다. 내맘처럼 키우기 힘든 식물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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