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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태환경

강황은 왜 울금이 되었을까? - 강황일까? 울금일까?

by 내오랜꿈 2017.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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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 식물 분류법


구근(球根) 식물이라는 용어가 있다. 정확한 식물분류법에 따른 명칭은 아니지만 덩어리 모양으로 양분을 저장하는 식물의 땅속줄기나 땅속뿌리 식물을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양분을 저장하기 위해 잎이나 줄기, 뿌리 등이 변형된 것이다. 정확하게 구분하자면 뿌리줄기(根莖), 덩이줄기(塊莖), 비늘줄기(鱗莖), 알줄기(球莖), 덩이뿌리(塊根) 등으로 나뉜다. 뿌리줄기는 죽순대나 연꽃처럼 줄기가 뿌리 형태로 뻗어 있는 것이고, 덩이줄기는 감자처럼 줄기가 덩어리 모양으로 변형된 것이고, 비늘줄기는 마늘이나 양파처럼 줄기가 비늘 모양으로 변한 것이고, 알줄기는 토란이나 글라디올러스처럼 줄기가 둥글게 변형된 것이고, 덩이뿌리는 고구마나 달리아처럼 뿌리가 덩어리 형태로 변한 것이다. 덩이뿌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줄기가 변형된 것이니 뿌리는 따로 있다. 이것들은 각기 형태적, 생태적 특성이 조금씩 다른데도 함께 묶어 구근 식물로 부르는 이유는 그 자체가 번식을 위한 종자로 쓰인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들 모두 꽃을 피우기에 종자로도 번식 가능하지만 꽃을 피울 수 없는 악조건에 대비해서 줄기나 뿌리에 양분을 저장해 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생식기관 역할도 하는 것이다.



▲ 강황가루

▲ 식약청은 지난해 한 TV프로그램에서 같은 식물의 뿌리줄기를 강황, 덩이뿌리를 울금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이는 식물학적으로 엄연히 구분되는 강황과 울금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반쪽짜리 견해일 뿐이다. 국내의 한의학 관련 책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강황과 울금에 대한 서술은 일관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다.


지난해 식품의약청이 뿌리줄기를 강황으로, 뿌리줄기에 매달린 덩이뿌리 형태의 타원형 덩어리를 울금으로 해석하여 논란을 일으킨 강황은 뿌리줄기 식물이다. 영어로는 리좀(rhizome)인데 식물학 용어인 이 '리좀'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 용어로 개념화하기도 했다. 위계와 질서를 세우는 수직적 모델이 아니라 특정한 중심이나 깊이가 없는 수평적 모델, 다른 어떤 것과도 접속 가능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리좀적 공간, 리좀적 세상을 사유하고자 했다. 쉽게 말하면 경직된 사고나 관계가 아니라 유연한 사고와 관계를 통해 차이와 이질성을 포괄하는 리좀적 다양성을 새로운 세계의 표상방식으로 개념화한 것이다. '리좀'은 끝없이 수평으로 자라는 덩굴들을 뻗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개체로 자라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줄기를 뻗는다. '갑'도 '을'도 없는 수평적 세계다. 대나무 줄기, 우리가 뿌리로 잘못 알고 있는 줄기와 죽순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뿌리줄기를 비롯한 구근 식물에 대해 잡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강황 또는 울금이라는 식물의 이름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식약청은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에서 강황이라는 식물의 뿌리줄기를 강황으로, 이 뿌리줄기에 달린 덩이뿌리를 울금이라고 주장했다. 식약청의 주장이 맞다 틀리다의 문제를 떠나 강황이라는 뿌리줄기에 혹처럼 달리는 하얀 덩어리를 덩이뿌리라 부를 수 있는가부터가 의문이다. 하나의 구근 식물에서 뿌리줄기도 생기고 덩이뿌리도 생긴다는 게 가능할까? 식물학에서 덩이뿌리는 눈을 가지고 있어 고구마나 달리아처럼 영양생식이 가능하다. 강황의 뿌리줄기에 달린 하얀 덩어리가 덩이뿌리라면 영양생식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강황의 뿌리에 생기는 하얀색 덩어리에는 눈을 씻고 봐도 그 어떤 눈도 발견할 수 없다. 당연히 영양생식이 불가능하다.


진도강황영농조합에 따르면 강황을 수확할 때 식약청에서 울금이라고 발표한 하얀 덩어리는 어쩌다 몇 개씩 생기는 것이고, 그것도 뿌리줄기 수확할 때 끊어져 땅속에 그대로 버려지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지금까지는 이것을 따로 상업적으로 이용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농가는 뿌리줄기, 곧 강황을 수확한 뒤 하얀 덩어리는 그냥 버렸고, 부지런한 일부 농가에서는 아까우니까 대충 주워서 기껏해야 효소 담금용으로 쓰는 정도였다. 강황(또는 울금)이 각광받는 이유는 그 속에 많이 함유된 커큐민(Curcumin)이라는 폴리페놀 성분이 가지는 항종양, 항산화, 항염증 작용의 우수성 때문이다. 그런데 식약청 발표대로라면 이렇게 뛰어난 약리작용을 지닌 '울금'을 지금까지 버리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정말 수천 년의 재배 역사를 가진 식물의 '고갱이'를 못 알아보고 버릴 정도로 아둔한 인간이었을까?



▲ 강황 싹 트는 모습과 대규모 재배 모습.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영미권 자료에서는 강황의 대규모 재배 모습을 담은 사진은 많지만 울금의 대량 재배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 강황 꽃. 하얀색이나 아이보리 색이 기본 바탕이고 꽃잎 끝부분에 옅은 보라색이나 핑크색이 돌기도 한다.

▲ 강황의 뿌리줄기 수확 모습. 뿌리줄기를 말려 가루로 만든 카레분


강황과 울금은 같은 식물인가? 다른 식물인가?


강황과 울금을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 둘이 같은 식물인가, 아닌가이다. 이것만 명확히 한다면 논란의 대부분을 매듭지을 수 있다. 강황이나 울금은 생강과 중에서 '쿠르쿠마(curcuma)속' 식물의 하나인데, "위키피디아"에는 학명이 있는 '쿠르쿠마속' 식물 99가지가 정리되어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Curcuma" 참조). 내가 본 그 어떤 책이나 자료보다 훨씬 종류도 많고 내용도 풍부하다. 이에 따르면 강황, 울금, 아출(또는 봉출)은 이 쿠르쿠마속 식물 가운데 하나로서 학명과 영어명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강황(薑黃), 학명 : Curcuma longa , 영어명 : turmeric

울금(鬱金), 학명 : Curcuma aromatica , 영어명 : wild turmeric

아출(莪朮), 학명 : Curcuma zedoaria, 영어명 : zedoary


우리 나라 자료나 책들에서도 대체로 이 구분을 따르는 편이지만 상당수 자료에서는, 특히나 인터넷 자료나 한의학 관련 자료들에서는, 강황과 울금의 학명을 뒤바꾸어 서술하고 있다. 영어명 역시 바꾸어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강황(薑黃)과 울금(鬱金)이라는 명칭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명확하게 강황의 학명을 'Curcuma longa', 울금의 학명을 'Curcuma aromatica'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영어명 역시 강황을 'turmeric', 울금을 'wild turmeric'으로 표기한다. 중국의 의학 서적에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왜 우리 나라 자료나 책에서는 학명이나 영어 이름이 뒤바뀌는 혼란이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이유는 한 가지 뿐이다. 사전 편찬자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학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일본 자료를 인용했기 때문이다(말이 좋아 인용이지 사실 베낀 것이다).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중국에서 강황이라 부르는 'curcuma longa'를 '우콘', 또는 '우킨'이라고 한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울금(鬱金)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반대로 울금인 'curcuma aromatica'를 '쿄우오우'라 부른다. 한자어 강황의 일본식 발음이다. 왜 일본에서 강황과 울금이 뒤바뀌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우리 나라의 <한의학대사전> 같은 사전류에서는 대부분 이런 혼란을 재생산하고 있다. 요즘 인터넷 검색을 하면 지식백과 파트에서 첫머리에 검색되는 <두산백과사전>도 마찬가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 나라 백과사전류는(일반 사전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일본 백과사전을 베끼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 흔적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것. 식민지 잔재 청산은 지식 분야서도 이렇듯 요원한 일이다. 어쨌거나 식물학적으로 강황, 울금이 각기 다른 식물로 분류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강황, 울금, 아출은 같은 생강과 쿠르쿠마속 식물이지만 서로 다른 종, 또는 아속 식물이다.


국내 자료 중에서는 드물게도 <식품과학기술대사전>이 강황과 울금 그리고 아출을 완전히 다른 식물로 명확히 구분한다. 다만 내용이 조금 빈약한데, 강황은 "카레분, 단무지, 오이피클 등에 이용되는 식품첨가물"로 이용하고 , 울금은 "뿌리의 건조품에서 황색의 색소 쿠르쿠민을 얻는다"고 서술하는 게 전부다. 이 사전에서는 심황이라는 항목을 별도로 구분하고 있는데 강황과 내용도 거의 같고, 학명(Curcuma longa)도 같고, 영어 이름(turmeric)도 같다. 그런데 울금 항목에서 학명은 'Curcuma aromatica'으로 달리 표기하면서도(본문에서는 또 다시 뒤바꾸어 표기하기도 한다.ㅠㅠ) 영어 이름은 강황과 같은 'turmeric'으로 표기하고 있다. 사전 완벽하게 만드는 게 아주 어렵다는 건 알지만 이런 오류들은 걸러져야 하는 것 아닐까? 어쨌든 내가 찾아본 자료 중에서는 <식품과학기술대사전>만이 강황, 울금, 아출의 학명을 "위기피디아"의 쿠르쿠마(curcuma)속 식물 분류처럼 정확하게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다.


(국가기관 중에서는 파주농업기술센터의 한 연구원이 강황과 울금은 전혀 다른 식물이고, 그에 따른 각각의 생태적 특성도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견해는 오래 전인 2009년에 어느 인터넷 사이트의 '지식 질문' 코너에서 댓글로 언급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용 생략한다.)




▲ 울금(wild turmeric). 어릴 때는 잎맥 가운데 옅은 붉은색 띠가 보인다. 강황의 어린 잎에서는 보기 힘들다. 꽃 색깔도 강황보다 전체적으로 핑크빛이나 보랏빛이 강하다. 하지만 흰꽃이 핀 울금 사진도 있으니 꽃 색깔로 구분하기는 힘들 것 같다. 오히려 잎의 형태나 모양이 강황과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뿌리줄기의 크기도 강황보다 대체로 빈약하다. 무엇보다도 "위키피디아"에서는 울금의 대규모 재배 사진을 찾을 수 없다. 정원이나 공원의 담장 밑에서 소규모로 자라는 모습만 볼 수 있다. 영미권에서 울금은 대규모 재배 식물이라기보다는 꽃이나 향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관상용 정원식물인 것 같다.


같은 식물이라고 보는 견해


앞서 언급한 대로 식약청은 같은 식물의 뿌리줄기를 강황으로, 덩이뿌리(?)를 울금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강황을 캐 보면 생강처럼 생긴 뿌리줄기 사이로 수많은 실뿌리가 나 있는데 그 중에는 타원형의 덩어리를 달고 있는 실뿌리가 있다. 이 견해는 타당성 여부를 떠나 식물생태학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다. 이 타원형의 덩어리를 덩이뿌리라 부를 수 있는지 여부다. 식물학에서 정의하는 덩이뿌리, 뿌리줄기, 비늘줄기 등 구근 식물은 영양생식이 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강황의 뿌리줄기 밑에 달린 타원형의 하얀 덩어리는 번식이 불가능하다. 번식이 불가능한데도 덩이뿌리라는 용어를 붙일 수 있을까? 또 같은 식물에서 뿌리줄기도 생기고 덩이뿌리도 생기는 게 가능할까? 뿌리줄기는 줄기가 변형된 것이고 덩이뿌리는 뿌리가 변형된 것이다. 물론 나는 식물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내가 본 책이나 자료에서는 한 식물에서 영양생식이 가능한 뿌리줄기와 덩이뿌리가 동시에 생긴다는 걸 본 적이 없다. 내가 식약청의 강황, 울금 구별법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촌진흥청은 강황은 식물명이고 울금은 이 강황이란 식물의 뿌리줄기를 원재료로 해서 만든 약재명으로 해석한다(농진청의 공식적인 견해는 아니고 농진청의 한 연구원이 비공식적으로 표명한 견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강황과 울금을 같은 식물로 생각한다면 차라리 이 견해가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실제로는 강황, 울금이 엄연히 다른 식물이라 해도 이것들의 뿌리줄기를 가공한 약재를 울금으로 해석한다면 어떤 식물이 강황이냐, 울금이냐에 따른 모든 논란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구분은 식물학자에게 맡겨 두면 되는 것이니까.


식약청의 견해와 농진청 연구원의 견해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는 우리 나라 한의학을 집대성한다는 목적으로 편찬한 <한의학대사전>을 들 수 있다. 이 사전에서는 강황을 "생강과 식물인 강황, 울금의 뿌리줄기를 말린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울금은 "생강과 식물인 울금과 강황의 덩이뿌리를 말린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서술만 보면 강황과 울금을 다른 식물로 분류하면서도 그것들의 '뿌리줄기'와 '덩이뿌리'를 구분하여 뿌리줄기 말린 것을 강황, 덩이뿌리 말린 것을 울금이라 정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식약청의 견해는 같은 식물에서 뿌리줄기와 덩이뿌리로 구분하는데, <한의학대사전>에서는 강황이든 울금이든 이 식물들의 뿌리줄기 말린 것을 강황, 덩이뿌리 말린 것을 울금이라고 하고 있다. 한의학 사전답게(?) 식물의 구분 자체에는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강황의 학명을 'Curcuma aromatica', 울금의 학명을 'Curcuma longa'로 표기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는 한의학 서적이라면 당연히 중국 의학서적을 참고할 거 같지만 이는 분명 일본 자료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이다. 이런저런 책이나 자료를 가져다가 짜집기하는 일이 다반사인 사전류가 가지는 맹점을 강황, 울금 항목에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한의학대사전>이다.



▲ 아출(zedoary).


결론을 대신해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식물학적으로 강황과 울금은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무엇이 강황이고 무엇이 울금이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둘이 같은 식물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소리다. 따라서 강황과 울금이 같은 식물이고, 뿌리줄기냐 덩이뿌리냐에 따라 나뉜다는 식약청 및 한약재 관련 책들의 주장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우리 나라에서 강황, 또는 울금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는 식물은 식물학 분류체계에 따른 학명이 'curcuma longa L.' 인 강황일 확률이 99.9%다. 일단 재배식물이라는 것 자체가 강황을 의미한다. 강황의 영어명은 'turmeric'이고 울금의 영어명은 'wild turmeric'이다. 'wild'는 일반적으로 '거친, 들판의'라는 뜻이지만 식물학에서는 대부분 '재배식물의 야생형'이라는 뜻이다. 곧 강황은 울금이라는 식물을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개량해서 재배하게 된 식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자료를 보면 울금의 뿌리줄기는 강황에 비해 그 크기가 아주 빈약하다. 뿌리줄기가 보잘것없던 울금을 원종으로 해서 점점 개량하여 뿌리줄기를 크게 만든 것이 지금의 강황이 아닐까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에서 찾아 보면 강황(turmeric)은 대규모로 재배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널려 있는데 울금(wild turmeric)의 경우는 대규모 재배 사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인도를 포함한 영미권에서 울금은 그 이름이나 학명('Curcuma aromatica')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꽃이나 향기를 감상할 목적으로 키우는 정원 식물로 취급되는 것 같다. 울금이라는 이름으로 올려져 있는 사진은 대부분 집 정원이나 공원 담벼락 밑에서 몇 포기씩 자라고 있는 모습들 뿐이다.


3. 식물학적으로는 강황, 울금 구별이 이렇게 명확한데 왜 우리 나라에서는 강황이냐, 울금이냐를 놓고 그토록 논란이 됐을까? 왜 우리 나라에서는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는 강황이 울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은 특이하게도 강황(curcuma longa)을 울금이라 부르고 있다. 강황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이나 그 재배 과정에서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울금으로 바뀌어 불렸겠지만 그건 내가 파악할 수 있는 영역 밖이니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어쨌거나 그런 일본의 자료나 책을 토대로 국내에서 2차 가공된 백과사전이나 식물도감들이 유통되면서 강황이니 울금이니 하는 논란이 증폭된 게 아닐까 짐작된다. 실제로 상당수의 백과사전이나 한의학 관련 책, 심지어 식물도감에서도 일본의 자료를 그대로 베낀 탓에 강황과 울금의 학명이나 영어명이 뒤바뀌어 서술되어 있다. 이러니 혼란이 안 일어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4. 지금까지는 몰라도 사실 이제는 강황이냐 울금이냐에 대한 논란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비교하면 쉽게 정리될 수 있는 문제다. 인도 등 강황의 원산지에서 자라는 것과 우리 나라의 진도 등지에서 재배되는 것의 유전자를 대조하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문제 아닐까? 밝히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식약청이나 농진청, 또는 다른 연구기관에서 못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노력은 하지 않고 기존의 책이나 자료들을 답습하면서 뿌리줄기는 강황, 덩이뿌리는 울금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소리나 하고 있는 식약청이 한심하기만 하다.


5. 구근 식물로 분류되는 식물 가운데 한 식물에서 영양생식이 가능한 뿌리줄기도 생기고 덩이뿌리도 생기는 식물이 있을까? 식물학적인 엄밀함은 양보하여 덩이뿌리라 인정해도 그것이 울금이라면 지금까지 우리 나라 강황 재배 농가에서는 그렇게 약성이 뛰어나다고 칭송되는 울금(?)을 왜 제대로 수확하지 않고 버렸을까? 울금이라면 정녕 '미스테리한' 일 아닌가? 반대로 울금이 아니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6. 백과사전이나 한의학 관련 책들은 강황, 울금을 다루면서 (같은 식물로 다루든 다른 식물로 다루든) 뿌리줄기가 강황, 덩이뿌리가 울금이라는 식의 서술로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덩이뿌리가 울금이라고 '정의' 내리고서는 이 울금이 인도 카레의 원료라거나 염료와 식품의 착색제라는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다. 강황이라는 식물이든 울금이라는 식물이든 이 식물들의 뿌리줄기 밑에 달린 (많은 책이나 자료에서 덩이뿌리라 주장하는) 타원형의 덩어리는 노란색이 아니라 흰색이나 회색이다. 이것들은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도 우리가 아는 카레 가루처럼 샛노란 색이 아니라 희색빛에 가까운 거무튀튀한 노란색이다. 도대체 어떤 멍청이가 뿌리줄기 말린 샛노란 것을 놔두고 이 거무튀튀한 가루를 가지고 염료나 착색제로 쓸까? 또 카레를 만들까? 한의학 관련 책에서 울금 항목에 서술하고 있는 것들은 뿌리줄기를 말린 강황 가루이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렇듯 뿌리줄기, 덩이뿌리에 따른 강황, 울금 구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류와 혼돈이 반복되는 뒤죽박죽 상태다. 이러니 한때 잘 나가던 한의학계가 서서히 망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한약재로서의 강황, 울금에 대한 명칭 논란은 제발 한의학 전공자들이 알아서 좀 통일시켰으면 한다.


7. 사람들에 따라서는, 특히나 강황(그들 스스로는 울금이라 주장하는) 재배 농가 중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정보에 기반하여 울금이 함유 성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강황보다 훨씬 뛰어난 것처럼 이야기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커큐민 함량이 강황보다 울금이 몇십 배는 더 높다는 식이다. 물론 어떤 조건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몇십 배 차이 운운할 만큼 유의미한 차이가 있지는 않다. 커큐민은 강황이나 울금의 뿌리줄기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계열 화합물의 하나로 노란색 결정체다. 이 폴리페놀 계열의 화합물은 대부분 맛이 쓰다. 강황이나 울금의 뿌리줄기가 쓴맛을 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커큐민은 노란색 결정체이므로 커큐민 함량은 노란색이 짙을수록 높다. 당연히 덩이뿌리라 주장하는 하얀색 덩어리보다는 뿌리줄기의 커큐민 함량이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울금을 뿌리줄기 밑에 매달린 하얀색 덩어리로 만들었다고 하면서 커큐민 함량이 강황보다 훨씬 높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제정신이면 이런 소리 못 한다. 울금에 대한 '신격화'는 하나의 상술일 뿐이다.


8. 결론 


⊙ 식물학적으로 강황은 강황이고 울금은 울금이다. 명백히 다른 식물이다.

⊙ 진도 등 우리 나라에서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는 식물은 학명이 'curcuma longa L.'인 강황이다.

⊙ 전 세계적으로 카레분, 식품첨가제, 염색제로 쓰이는 건 강황(turmeric)의 뿌리줄기를 말린 것이다. 영미권에서 울금(wild turmeric)은 주로 관상용으로 키우는 정원 식물이다.

⊙ 우리 나라와 일본만 강황이나 강황 가루를 울금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강황(tumeric)이라는 식물을 울금이라 부르는 일본의 영향이 크다.

⊙ 한의학적인 측면에서 약재명으로 통용되는 강황, 울금이라는 명칭은 책마다, 자료마다 그 내용과 이름이 제각각이고 뒤죽박죽이라 전혀 신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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