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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당근, 꽃 피우기 전에 쓰러지다.

by 내오랜꿈 2017.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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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초, 당근을 수확하면서 못난이 당근 일부를 밭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두 가지 목적이었다. 월동이 가능한지와 월동이 된다면 씨앗을 받을 생각으로. 당근은 10℃ 이하의 기온에서 30~60일 정도 지나야 꽃눈 분화가 촉진되는 대표적인 저온감응형 식물이기에 봄재배보다는 월동재배 시 한결 수월하게 씨앗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동안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위가 올 때면 당근의 상태를 살펴보면서 식물의 환경적응능력에 새삼 감탄하곤 했다. 국화과나 십자화과 식물도 아닌 미나리과 식물이 한겨울 추위에 맞닥뜨려서는 잎줄기가 로제트 식물 형태로 변신하면서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것을 보고서.



채종용으로 월동시킨 당근인데, 한순간에 생을 마감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생각 못 했기에 찍어둔 사진 하나 없다.


3월 들어 서서히 일어서는 당근 잎줄기를 보면서 곧 춘분이 지나고 장일조건이 되면 이내 꽃눈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뜻밖의 재앙에 마주쳐야 했다. 힘겹게 겨울을 이겨낸 당근이 땅 밖으로 나와 말끔히 씻긴 채 소쿠리에 담겨 간장 항아리 위에 얌전히 앉아 물기를 말리고 있었던 것. 12월에 수확한 당근이 아직도 냉장고 속에 조금 남아 있는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옆지기가 씨를 받기 위해 남겨둔 이 당근을 몽땅 뽑아버린 것이다. 좀 어이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당근이 심어져 있던 곳에 가 보니 한 뿌리도 남김없이 잘게 잘린 잎줄기 잔해만이 이랑을 가지런히 덮고 있었다. 완전 '헐~'이다. 아무리 채종용으로 남겨둔 것이라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도 눈치가 없을까? 참 나.....


기왕지사 이리 된 거 맛이나 보자 싶어 작은 거 하나를 깨물었는데 생각보다 식감이 너무나 연하고 아삭하다. 오랫동안 땅 속에 있으면 섬유질이 많아서 좀 질긴 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12월에 수확할 때보다 더 연한 것 같다. 두세 개를 먹어봤지만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올해는 이곳에서도 당근은 충분히 월동이 가능하고 월동시킨 당근의 식감도 훌륭하다는 걸 알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씨앗 채종은 또 이렇게 내년으로 미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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