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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 둘째날
어젯밤에 마신 술이 좀 과했는지 머리가 아프다. 겨우 몸을 일으켜 제주시에서 알아준다는 해장국 집에서 가볍게 속풀이를 하고 1100도로를 올랐다. 개인적으로 고대하던 한라산 산행길. 하지만 등산하고는 좀 거리가 먼 마흔 넘은 아줌마 때문에 아쉽지만 등반로 중 가장 짧은 '영실코스'를 선택했다. 백록담까지 갈 수 없는 점이 무척 아쉬웠지만 여타 코스보다 훨씬 경치가 좋다는 평가를 위로 삼기로 했다. 지난 주에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길이 미끄러우니 아이젠을 꼭 착용하라는 당부의 말이 영실휴게소 스피크를 통해 안내되고 있다. 산행 기점인 영실휴게소(해발 1280m)에서 아이젠을 급히 마련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좁은 오솔길 주변은 온통 눈천지다.
처음 10여 분은 눈 쌓인 숲길과 오르막 계단 뿐이었는데, 어느새 전망이 탁 트인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고르며 쳐다본 남쪽은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풍경 속에 봉긋봉긋한 오름들이 솟아 있다. 정말 한라산이 아니면 등반하면서 이런 풍경은 꿈도 꿀 수 없으리라. 병풍바위와 오백나한을 상징하는 절벽들을 감상하며 오르는데, 앞서 가는 등반객 가운데 누군가가 여름에 오면 저 절벽들 사이로 폭포수가 떨어진다며 그게 정말 절경이라는 설명을 동료들에게 해주고 있다.
살아 백 년, 죽어 백 년! 이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한다는 구상나무 숲을 지나니 광활한 설원이 펼쳐져 있다. 이른바 한라산 정상 부근의 고원지대인 '선작지왓'이다. 하이얀 설경 속에 노루들이 와서 목을 축인다는 노루샘 약수터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땀흘리고 난 뒤 1700 고지에서 마시는 약숫물 한 잔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선작지왓'을 지나니 곧바로 오늘의 종착역인 '윗세오름'이다. 백록담 쪽으로의 길은 아쉽게도 차단되어 있다. 그 뒤 오른편에 보이는 바위가 '조면암'이다. 왔노라표 기념 사진을 찍는 짧은 시간에도 능선을 훓고 지나는 바람에 머리카락은 방향성 없이 마구잡이로 날린다. 체온 마저 떨어져 한기가 느껴지는 때에 매점에서 제일 인기 있는 먹거리는 역시 컵라면이다.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덥히고서 서둘러 하산길을 재촉한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에 여유있게 둘러보는 아스라히 펼쳐진 제주 풍경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정말이지 너무나 애매모호하다.
등반으로 허기진 속을 채우자며 찾은 곳이 서귀포에서 유명하다는 해물뚝배기집 '진주식당'. 전복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작고 쫀득쫀득한 맛이 나는 오분자기 뚝배기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등어 구이를 시켰는데, 다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비 모를 정도로 허겁지겁 비워낸다. 어지간히들 배가 고팠나보다.
점심을 먹고 서귀포 시내를 벗어나 찾은 곳이 효돈천이 바다와 만나는 풍경이 멋스럽다는 '쇠소깍'. 몇 번 제주에 왔었지만 '쇠소깍'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다와 만나는 풍경이 이국적인데 그만 카메라 밧데리가 아웃이라서 남은 사진이 이것밖에 없다. 그래서 이 사진을 끝으로 그 비경을 제대로 못담아 무지 아쉽다.
'쇠소깍'에서 나와 강정포구를 들렀다. 낚시 채비를 가져 오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별 특징없는 포구를 둘러 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꿀물이 뚝뚝 떨어질 듯 탱탱한 햇귤따기 체험을 했다. 밭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한대로 공짜이고, 직접 딴 것은 한 바구니에 이만원이니까 다시 저 곳을 간다면 배를 완전히 비워야 남는 장사다. 아쉽게도 우리는 산행 후 점심이 늦어져 밑졌지만 오로지 사진 촬영을 위해 남겨둔 전시용 감귤 밖에 못 봤던 제주 여행을 생각하면 이채로운 체험이었다.
등반 뒤라 피곤했는지 콘도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을 먹자는 성화에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다. 여객선 터미널 부두 근처에 있는 '성복식당'에서 선도 유지가 포인트인 고등어와 쥐치회를 시켰다. 수족관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고등어와 쥐치가 가득인데 저렇게 큰 쥐치는 처음 보았다. 아마도 '말쥐치'인 것 같다. 비린내 하나없이 쫄깃하고 탱탱한 살점의 고등어회. 역시 고등어회는 산지에서 직접 먹어야 제맛이다. 혹자는 '물항횟집'을 추천하기도 하던데, 가격적인 측면으로나 횟감의 신선도 면에서 나는 이 '성복식당'을 강력 추천한다. '물항횟집'에 비해 상업적인 냄새가 훨 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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