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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인 비노 베리타스! -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by 내오랜꿈 2009.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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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비노 베리타스!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교황에게는 술이 있으나 여자가 없고, 술탄에게는 여자는 있으나 술이 없다. 그러니 술과 여자를 다 가진 우리의 인생이 훨씬 더 즐겁지 아니한가."


정운영 선생의 어느 에세이에 의하면 60년대 유럽의 젊은이들은 이런 의미로 이어지는 노래를 부르면서 갓 대학생이 된 젊은이들이 치기 어린 구호, '인 비노 베리타스!'(술 속에 진리가 있다!)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치곤 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치기 어린 행동일 뿐이겠지만 이 말 속에도 나름대로의 진리는 있다.


이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잠언이라는 설도 있고, 로마 시대의 속담이라는 설도 있다. 내가 그 어원의 진위를 확인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 그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알다시피 교황이라는 자리, 신부라는 위치는 인간의 욕망 가운데 1,2위를 다툰다는 성적 욕망을 철저하게 억압해야 하는, '금욕'을 강요 당하는 생활이다. 이런 위치이기에 이들에게 술 내지 담배는 억압 당하는 성욕을 대체하는 욕망의 분출구로서 기능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욕망의 '대체재(代替財)'인 셈이다. 해서 우리는 인터뷰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담배 피는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까지 묘사하는 글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슬람의 최고권력자를 뜻하는 술탄에게는 알다시피 이슬람교의 교리에 따라 술이라는 게 철저하게 금욕의 대상이 된다. 조정래의 『한강』에 나오듯이 70년대 중동 붐의 영향으로 사우디로 진출한 한국 건설 노동자에게 가장 큰 고통은 술을 못 마시는 것이었다고 한다. 해서 『한강』에는 포도나 과일 등을 이용해서 밀주를 담가 먹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앵그르(Ingres, Jean Auguste Dominique, 1780 ~ 1867), 「터키탕」


이런 술탄이었기에 성에 대한 집착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를 초월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화가 앵그르의 「터키탕」이라는 그림을 보셨는지. 이 그림만큼 끈적끈적한 관능이 짙게 배어 나오는 그림도 드물 것이다. 독특하게 원형으로 된 이 그림 속에는 앵그르가 추구한 오감의 도취가 갖가지 형태로 가득 담겨 있는데, 특히 여인들은 어느 그림보다 퇴폐적으로 표현돼 있다. 방안에 가득한 여인들. 그녀들은 제각각 다른 상념에 빠져 있다. 왜일까. 이곳은 막강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통치하는 술탄의 할렘. 곧 후궁들의 대기실이다.


할렘의 후궁들은 술탄의 총애에 따라 서열이 올라간다고 한다. 서열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술탄과 관계를 맺는 횟수가 많았음을 의미하지만, 그래봤자 1명의 술탄과 수천 명 후궁들의 관계일 뿐이다. 표현하자면, '총애는 짧고 후궁은 많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것 역시 술이라는 욕망을 억압 당한 자의 '대체제(代替財)'라고 인정해 주어야 할까?


우리가 흔히들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퇴폐 업소의 한 전형으로 언급하는 이른바 '터키탕'은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쯤되면 차라리 술을 허락하고 성욕을 억압한 로마 교황청의 처신이 옳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 거 같은데, 원래 '인 비노 베리타스'란 제목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이번에 대학에 입학하는 조카들을 생각하며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인가 교훈적인(?) 말을 해주고 싶다는 욕망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오늘의 대학 사회란 게 내가 경험한 대학 사회와 너무나 달라진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얼마 전 읽은 신문 기사는 더더욱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하나인 문화유산답사 모임의 어느 회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 회원이 퍼다 놓은, 오늘 우리 대학 사회의 한 단면을 나타내주는 신문 기사가 있다. 이른바 '컨닝'이 난무하는 실태에 대해서 분석해 놓은 기사다.


학점을 위해서라면 정보통신 등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서라도 이른바 '컨닝'을 해야 하고 그렇게라도 해야 취업전선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할 기회가 주어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학생들의 항변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때문이다. 이들에게 과연 '인 비노 베리타스'를 외치던 그 낭만이 스며들 여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


적어도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 해도 학점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생활했던 건 같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소위 역사적 사명을 외치며 길거리로 나서던 이들에게도, 나서진 못하지만 심정적 동조만 보내며 당구장이나 술집을 들락거리던 이들에게도 학점에 얽매여 발버둥치는 모습을 찾기란 힘들었다. 오히려 이 당시는 학점이 높으면 취직하기가 힘든 세상이었다. 설마? 4.5 만점에 3,5 이상이 넘어가면 조직 생활에 있어 위험 인물(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공부만 했을 인물)로 치부되어 대기업체의 서류 전형에서 탈락할 위험이 높았던 것이다. 해서 가장 좋은 학점이 3.0에서 3.5 사이였다. 3.5보다 높으면 곤란하지만 3.0보다 조금 낮은 것은 오히려 괜찮았다.


'무슨 소리?' 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당시 상경계열의 분위기가 이랬다. 이러니 나의 대학 생활은 그야말로 술로 시작해 술로 마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86년, 87년을 거치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맨날 수업 거부에 집회니 뭐니 하며 어수선한데, 시험은 어떻게 칠 것이며 친다 한들 학생들이 못 치겠다고 버티는 데야 교수들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맨날 시험 대신 레포터 제출로 한 학기를 마감하는 게 다반사였다. 특히나 나 같이 약삭빠른 학생들은 전공필수 두 과목을 제외한 5과목 모두를 나와 아주 친한 소위 '운동권 교수'(?) 과목으로 신청해 놓으니 그야말로 시험칠 일 없어 좋고 학점 걱정할 필요 없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럼 당시 학생들이 전부 다 마시고 놀았을까? 솔직히 고백해 보면, 많이들 놀았던 거 같다. 시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증권사나 금융권으로 갔고(왜냐하면 일반 기업보다 연봉이 높았으니까), 놀고 먹던 친구들도 거의 대부분이 졸업도 하기 전에 국내 최고 재벌 기업들에  취직했다. 이도저도 아니었던 나는 당시의 당황을 보면서 이러니 기를 쓰고 대학에 갈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때 '시대는 시대고 나는 나다'며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친구들은 증권사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전부 빚더미에 앉아 내몰리는 상황을 맞게 된다. 88년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가지수가 91년도에 들어오면서 최고 수준에서 한순간에 절반 이하로 폭락한 것이다. 역사는 나름대로 이들에게 복수를 했던 셈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한 분위기였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들도 많았으니까. 그것이 비록 대학이 '혁명(이론)의 생산 공장'이란 오명을 뒤집어쓰는 영욕으로 얼룩진 역사를 대변한다 할지라도 오늘의 대학 사회가 보여주는 학점만능주의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철학 서적 하나 읽기보다는 학점을 따는 데 매달리고 남는 시간에는 영어 학원을 오가고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어학연수를 갔다와야 하고 토익 850은 기본으로 받아야만 취업원서를 내볼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지금의 현실하고 비교해 보면 말이다.


이런 오늘의 대학사회 속에서 '인 비노 베리타스'를 호기롭게 외칠 수 있기는 힘들겠지만, 백 번을 양보해서 '지식의 생산 공장'이라는 대학 본연의 의무조차도 수행하지 못하고 '취업기술학교'가 되어가는 현실은 분명 서글픈 대한민국의 자화상일 것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여. 시대가 그대들을 힘들게 하더라도 가끔은 이렇게 외치며 맘껏 오늘을 즐길 수 있는 날도 있기를 바란다.


인 비노 베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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