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어떤 현상이 일어났지만 뭔가 뒷맛이 개운하지 않을 때 자주 쓰이는 고사성어다. 사회체제의 억압과 폭정에 저항하여 들고일어난 인민의 항쟁으로 기존의 체제가 무너질 듯하다가 별 성과없이 구체제의 복귀로 귀결되는 사회현상을 두고서도 인용되곤 한다. 우리에게는 80년 서울의 봄이 그랬고, 87년 여름이 그랬다. 죽 쒀서 개 준 격일 때의 심경을 표현할 때 딱 들어맞는 문구라 할 수 있다. 고사성어라는 게 이야기와 인물의 결합에서 파생되는 것이니 춘래불사춘에도 중국 4대 미녀 가운데 하나라는 왕소군(王昭君)이 등장한다.
왕소군은 한나라 때의 후궁인데 흉노족과의 화친정책으로 흉노 왕의 첩으로 보내진다. 왕소군이 흉노 왕에게 보내지는 후궁으로 지목되는 과정에도 인간사의 추악한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시 황제는 원제(元帝)라고 하는데 후궁 숫자가 꽤나 많았나 보다. 그 많은 후궁을 일일이 대면해서 얼굴을 확인하는 게 귀찮아서 그랬는지 궁중화가에게 후궁들의 자태를 그림으로 그려 화첩을 만들게 한다. 이제 후궁들에 대한 황제의 총애는 화공의 손끝에 달린 셈. 후궁들이 화공에게 앞다투어 뇌물을 바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안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왕소군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후궁으로 들어간 탓에 뇌물을 바칠 만한 돈도 없었을 뿐더러 뇌물을 주면서까지 자기를 예쁘게 보여야 할 필요성도 못 느낄 만큼의 자존심도 있었던 모양이다. 왕소군이 뇌물 받아 먹는 재미에 빠져 있던 화공의 붓끝에서 어떻게 그려졌을지 짐작되는 대목. 그 결과 왕소군은 흉노에게 보내질 후궁으로 지목되고 만다. 뭐 꼭 화공이 그린 그림만 가지고 결정되었을까만 궁을 떠나면서 인사를 하러 온 왕소군을 본 황제가 그 미모에 깜짝 놀라 당시 궁중화가였던 모연수의 목을 잘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니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던 게 아닌가 싶다.
▲ <인왕산도>를 그린 조선시대 화가 강희언의 <소군출한도>, 출처 :『미술대사전』인명편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왕소군은 궁을 떠나 말을 타고 북녘땅으로 떠나게 된다. 이때 북쪽 하늘을 날아다니던 기러기가 왕소군을 보고서는 너무 예뻐서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왕소군의 별명이 낙안(落雁)이다. 기러기가 날아가다 미모에 놀라 날개짓 하는 걸 잊어 떨어질 만큼 예쁘다는 말이다. 이걸 중국인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문학적 수사가 뛰어나다고 해야 할까. 찬바람 불고 삭막한 북녘땅은 여름은 짧고 겨울이 긴 사막지대.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한들 메마른 사막 땅에는 꽃도 피지 않는다. 이런 땅에서 살아가는 왕소군의 심경을 노래한 시 가운데 당나라 때의 시인 동방규의 "王昭君"이라는 시에 '춘래불사춘'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 간혹 어떤 자료나 책에 따라서는 이 싯구가 왕소군이 직접 지은 것으로 둔갑되곤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뜻하지 않게 봄이 와도 봄 같지도 않은 땅에서 외롭게 살다 간 왕소군의 심경을 대변한 문구라서 그럴까? '춘래불사춘'이란 문구에는 어딘가 모르게 헛헛하고 아쉬운 느낌이 묻어 있다. 우리의 80년과 87년이 그랬듯이. 그런데 80년과 87년의 '춘래불사춘'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80년이 총칼에 의한 억압적 상황에서 맞닥뜨린 것이라면, 87년은 인민대중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다. 일인일표제를 기반으로 하는 직접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 선택이 아무리 '우매한' 결정이었다한들 다수의 선택을 전체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금 탄핵 여부로 시끄러운 박근혜도 결국 다수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경상도, 전라도라는 망국적 지역감정에 힘입은 바 크고, 역사의 진보를 후퇴시키는 결정이었다 해도 그것을 뒤집을 수단은 80년의 누구처럼 총칼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쿠데타나 혁명처럼 총칼을 앞세운 물리적 힘을 동원한 승리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체제 안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하는 집단이라면 결국 선거 국면에서의 승리가 최종적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 체제에서 최후의 승자는 결국 선거에서 이기는 자다. 총칼을 내려놓은 이상 이것 말고는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혁명도 투표를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그 승리를 위해서는 때로는 '마키아벨리스트(부정적 의미로 덧씌워진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니다)'가 되는 것도 주저하지 말아야 하고, 때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는 것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고고하게 자신의 지조를 뽐내는 것은 낙향한 선비가 할 수 있는 행동인지는 몰라도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목표를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닐 것이다. 고작 박근혜 끌어내리는 걸 목표로 하는 싸움에 동참하는 걸 절대적 투쟁이라 생각하면서 정의당 국회의원 스무 명보다 노동당, 녹색당 국회의원 한 명이 더 낫다는 생각을 자랑스레 밝힐 수 있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이승환과 문소리는 물론 강금실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강금실이 녹색당 지지하는 발언했다고 법무부 장관 시절 이주노동자 추방 정책을 들먹이며 폄하하는 행위는 녹색당 당원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소위 말하는 '운동'은 사회적 약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행위이지 자신의 이념을 뽐내거나 지키기 위한 수단은 아니지 않은가?
한 달 넘게 이어져 온 싸움이 탄핵국면으로 들어섰다. 국회의 탄핵가결이 이루어지면 도리어 싸움의 동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고, 헌재 판결이 나기까지는 어정쩡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촛불로 헌법재판관들을 압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럼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애초부터 탄핵이 목표가 아니라 즉각 퇴진이 목표였어야 하는 싸움임에도 어느새 탄핵 여부가 쟁점이 되어 버렸다. 저쪽은 탄핵 싸움으로 가면 불리할 거 없다는 냉정한 판단을 끝내고 뒤를 도모하고 있는데 이쪽의 상당수는 승리 가능성이 반반인 탄핵 싸움에 목을 맨 꼴이다.
내년 봄 어느 시기에 씁쓸한 심경으로 '春來不似春'을 읊조리고 싶지 않다면, 지금은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선거 국면이 되면 또다시 제2의 박근혜를 찍을 내 부모 형제들, 주변 친구들에게 단순히 박근혜가 문제가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라는 지역감정에 근거한 선택이 문제라는 걸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성향 위주로 관계맺어진 SNS 상에서 자기의 선명성을 자랑하는 건 자기만족은 될 수 있을지언정 승리의 보증수표는 아닐 것이다. 지금이 무슨 혁명적 상황이라고(아니, 혁명적 상황이라 해도 마찬가지지만) SNS에 글 올리는 것조차 선명성 여부를 따지며 자기검열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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