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은 소금'이란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꼭 소금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몸에 좋은'이란 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 황소개구리가 생태계 교란의 주범으로 찍혀 골칫덩이가 되어가고 있을 때 지인들끼리 '황소개구리가 몸에 좋다'는 말을 퍼뜨리면 금새 해결될 건데, 하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얼마 전 낙동강 하류를 중심으로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뉴트리아의 쓸개에 곰보다 많은 웅담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는 뉴스가 나오자 마자 뉴트리아의 생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인 것을 보면 이게 꼭 우스갯소리로 흘릴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몸에 좋은 소금이라는 상징 또는 이미지는 다분히 특정 이익집단의 상술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물이나 공기가 화폐를 주고 받을 정도의 인간의 노동을 통하지 않고서도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사고 파는 대상에서 제외된 반면에 소금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가장 중요한 매매의 대상이 될 정도로 생존의 필수 요소로 취급되었다. 이는 소금이 물이나 공기보다 더 중요하거나 더 필요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희소성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법칙이 작용한 것일 뿐이다. 물론 지금이야 물도, 심지어 공기도 돈 주고 사는 시대이긴 하지만... 희소성이 지배하던 시기에 모든 소금은 그저 인간의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었을 뿐 '몸에 더 좋은' 소금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사치는 잉여 또는 풍요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몸에 좋은 소금이라는 이미지는 현대에 들어와 대규모 염전이 개발되고 과학의 발전으로 손쉽게 바닷물을 소금으로 만들 수 있게 되면서 탄생한 관념일 뿐이다. 남아도는 소금을 비싸게 팔아 먹는 방법의 하나로 몸에 좋은 성분이 추가된 고급 소금이라는 이미지의 죽염이 상품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국가간 장벽이 허물어져 값싼 외국산 소금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애국심 또는 민족의식에 편승해 몸에 좋은 국산 천일염이라는 허울이 무의식적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 천일염을 상온에서 보관하면 수분과 함께 각종 불순물이 빠져나간다. 흔히들 이 과정을 일러 간수가 빠진다고 표현한다. 3년 정도 묵히면 처음 중량의 약 20~25%까지 줄어든다. 20Kg 소금 포대를 2년 정도 묵힌 다음 무게를 재니 16Kg을 나타내고 있다
소금을 굳이 구분한다면 몸에 좋다거나 실체 없는 애국심이 아니라 맛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맛이라는 기준도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소금의 주성분은 염화나트륨이고 염화나트륨은 짠맛을 낸다. 소금이 짠맛 이외의 맛을 내는 이유는 다양한 미네랄 성분 때문인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염화마그네슘이나 황산마그네슘 형태로 존재하는 마그네슘(mg)이다. 바닷물은 96.5%가 물이고 3.5%가 염분이다. 이 3.5%의 염분 성분을 분석하면 염화나트륨(77.9%), 염화마그네슘(9.6%), 황산마그네슘(6.1%), 황산칼슘(4%), 염화칼륨(2.1%)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이상의 각 성분별 퍼센티지 수치는 모두 국립농업과학원, <바닷물의 농업적 활용 매뉴얼>에서 인용). 곧 소금 속에 마그네슘 성분이 의외로 많은 15.7%나 들어있다는 말이다. 이 마그네슘은 쓴맛을 낸다. 그러니 갓 만든 천일염은 쓴맛이 아주 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천일염은 2~3년 묵혀 마그네슘이나 칼륨 같은 불순물(소금 입장에서 보자면 나트륨 이외의 미네랄 성분은 불순물일 뿐이다)을 충분히 뺀 것이라야 쓴맛이 줄어든다. 이 과정을 일러 흔히들 간수가 빠진다고 표현한다. 간수가 빠지는 이유는 소금이 가지고 있는 조해성 덕분인데 소금을 상온 상태로 보관하면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데 마그네슘이나 칼륨 같은 미네랄 성분이 수분에 녹아서 함께 빠져나간다. 내 경험으로는 3년 정도 보관하면 애초 소금 중량의 약 25% 정도까지 줄어든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서 소금을 다루는 염소 곰전 편에 젓갈업자들이 젓갈을 담그면서 중국산 소금을 쓰는 바람에 젓갈을 망쳤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절반의 진실만 표현할 뿐이다. 젓갈 맛이 나빠진 것은 간수를 빼지 않은 싸구려 소금을 썼기 때문이지 중국산 천일염이라서가 아니다. 우리 나라 천일염도 간수를 빼지 않고 쓰면 당연히 쓴맛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 천일염이 중국산 천일염보다 더 뛰어나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 나라 천일염이 세계 최고라는 주장은 신안 염전의 소금업자들이 판매 전략으로 할 수 있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소리다.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유는 이 게랑드 소금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그네슘 성분이 적게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천일염이 세계 최고라는 주장보다는 천일염을 정제한 재제염이나 바닷물로 만든 정제염이 천일염보다 불순물이 더 적다는 말이 훨씬 더 과학적 사실에 부합한다. 불순물이 적다는 말은 소금, 곧 염화나트륨 본연의 맛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그래서 난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고추장이나 젓갈을 담글 때는 천일염보다는 천일염을 정제한 재제염(흔히들 '꽃소금'으로 불리는)을 쓰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주장한다. 천일염에 포함된 불순물은 젓갈이나 고추장 맛을 떨어뜨리는 주범의 하나이기에...
결론적으로 소금은 음식의 간을 조절하는 양념일 뿐이다. 많이 먹어서 결코 좋을 것이 없는, 오히려 나트륨 과다 섭취를 걱정해야 하는 양념에 불과한 것. 천일염을 통해 섭취하는 미네랄은 인간이 다른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미네랄에 비하면 '새 발에 피'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한 끼 식사로 흡수할 수 있는 것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몇 가지 미네랄 성분 함량을 과대평가하면서 만들어낸 몸에 좋은 소금이라는 관념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는 장소가 침대라는 사실을 들어 침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라는 주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보수단체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 성조기도 황당한데 이스라엘 국기는 왜 들고 나온 것일까? 아무리 종교가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켜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거의 종교적 맹신이 빚은 이성의 마비 수준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홈페이지)
▲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집회 참가자(사진 출처 "헤롤드 경제")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의외로 많이들 이런 '몸에 좋은 소금'과 같은 엉터리 관념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탄핵 심판 변호사가 몸에 태극기 두르는 것이 대통령 변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태극기와 성조기 흔드는 것(그런데 도대체 이스라엘 국기는 왜 들고 나왔는지???)을 애국이라 생각하는 인간들이 가지는 관념 또한 이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국기 흔드는 걸 애국이라 여기는 건 독일 나찌주의자들이나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하던 행위이다. 애국은 주둥이로, 태극기 흔드는 것으로 하는 게 아니다. 세금 꼬박꼬박 내고 세금 축내는 헛짓거리 못하게 감시하는 게 국기 흔드는 것보다 훨씬 더 진정한 애국적 행위이다.
국기만 흔들면 애국이라는 생각이나 국산 천일염이 무조건 좋다는 발상은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 내포된 단세포적 발상의 최대치가 희화화된 모습이 아닐까 싶어 더없이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소금에 대한 보편적 상식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신문기사 하나를 소개하자면 “천일염, 정제염, 재제염… 그 소금이 그 소금” 을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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