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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메갈, 워마드' 문제와 '시사인 사태'를 보면서...

by 내오랜꿈 2016.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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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사회운동권에서 자주 논란이 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전체와 부문의 문제였다. 주로 엔엘의 민족모순 우선론에 바탕을 둔 통일운동 때문에 발생한 것이긴 하지만 점차 사회운동 세력의 약화와 각 부문 운동의 활성화로 인해 민족모순이니 계급모순이니 하는 것에 근거한 주적론과 무관하게 수시로 논쟁의 한가운데로 돌출하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숱한 논쟁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하나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뜨겁게 불타올랐던 '페미니즘' 논쟁.


사실 9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주류 운동세력과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씨네 21> 편집장을 역임했던(<한겨레 21>이었나?) 최보은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 발언으로 페미니즘 논쟁은 80년대 엔엘-피디 논쟁 이후 최대의 이슈로 부각된다. 최보은의 발언에 대한 김규항의 작은 컬럼 하나로 시작된 논쟁은 학계를 비롯한 지식인 사회와 사회운동 세력 전반에 걸쳐 오랜 시간, '그(놈들, 년들) 페미니즘'이니 '마초적 사회주의자'니 하는 극단적 상징 표현들을 쏟아내며 출구 없는 지루한 논쟁을 지속하게 된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한, 사회운동 세력 내의 마지막 대규모 논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로도 노무현 지지 문제와 결부된 민노당 사표 논쟁이나 민노당 분당 문제 등으로 시끄럽긴 했지만 '그 페미니즘' 논쟁만큼 전방위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더 이상 전체에 복무하지 않는 부문이니 전체를 위한 부문의 희생이니 하는 논쟁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주 가끔씩 진보정당 '당게'에서 자기들끼리 짧게 치고 박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탓일까? 얼마 전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메갈,워마드' 문제는 내게 별다른 관심사가 되지 못 했다. 카페나 SNS 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걸 알고 몇 번 검색을 해 보긴 했지만 솔직히 내게는 '일베현상' 이상의 그 무엇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어쨌거나 '일베'도 내가 발붙이고 사는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 가운데 하나이고, 걔들도 무슨 괴물은 아니니까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정도? 잘나고 진보적인 인사들이야 자신의 진보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메갈리아' 논란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건강한 페미니즘적 요소를 찾아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말이다.



▲ 사진 출처 : <시사인>(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6799)


그랬는데, 어느 순간 '메갈,워마드' 문제가 내 사고 속으로 들어왔다. '시사인' 사태 때문이다. 일개 언론사나 일개 잡지가 특정 사안에 대해 지지 여부를 표현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오히려 난 미국처럼 선거 국면에서 특정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우리나라 언론도 공개지지만 하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는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하지만 이번의 시사인 사태는 선거 국면에서의 특정 정당이나 후보 지지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수많은 논란과 대중의 반감이 교차하는 시기에 마치 자신이 '프라우다'라도 되는 양 자신의 입장(설령 그것이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추론의 영역에 속한다 할지라도) 이 '진리'임을 설파하는 고압적 자세는 바람직한 저널리즘의 자세라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내가 구식인지는 몰라도 난 아직도 언론은 '보도'를 하는 것이지 '주장'을 하는 매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바람직한 '보도'와 '주장'의 차이와 경계를 획정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겠지만. 더군다나 언론이 권력이 아니라 대중, 그것도 자신의 독자와 싸우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인텔리겐치아적 선민의식에 찌든 기자들의 오버액션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 '삼성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정신'으로 그대들이 싸워서 쟁취하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대들의 독자를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초라한 남자들'로 몰아서 그대들이 얻는 건 과연 무엇인가? 왜 수많은 매체가 자신의 생각과 같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내부자가 아닌 특정인을 내세워 그것들을 주장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뭐, '싫음 말고' 수준의 한낱 외부자의 시선일 뿐이니 그대들이 괘념치 않아도 무방하지만 이번 시사인 사태가 어떤 모습으로 수습되더라도 내게는 저널리즘의 '그 어떤 오만함'에 대한 슬픈 기억으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한 가지. 요새 그 최보은 아줌마는 어디서 무얼 하고 사나 모르겠다. '박근혜를 여성의 눈으로 보'고, '여성이 여성을 찍자'며, '여성해방과 인간해방은 별개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최보은 여사. 말하던 대로 박근혜를 찍으셨고, 여성 대통령 덕에 바라던 여성해방은 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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