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초입의 어느 날. 몇 년 동안 버려지다시피 하던 땅에 트랙터가 바삐 움직이더니 다음 날에는 축사에서 나온 듯한 퇴비를 뿌리고 있었다. 이천 평이 넘는 넓은 땅이고, 2차선 도로에 접해 있고, 더군다나 평지인데 왜 놀리고 있을까?, 하던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려는 듯이 그 뒤로도 며칠 동안 이런저런 분주한 작업들이 행해졌다. 아마도 토양소독제도 뿌려졌을 것이고 밑거름용 복합비료도 더해졌을 것이다. 그러고 얼마 뒤 구멍 뚫린 까만 폴리에틸렌 비닐이 덮였다. 이로써 이 밭에 심어질 작물이 마늘일까, 양파일까 하는 것만 남았는데 며칠 지나고 보니 밭 주인(?)의 선택은 양파였다. 키우는 입장에서 보자면 나름의 희망을 안고 선택했을 그 모습이 나에겐 왠지 모를 불안한 예감으로 다가오는 건 그간의 경험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 수확을 포기한 양파밭 모습(2016년 6월 9일). 대부분 꽃대가 올라왔다.
작년 한 해 양파 가격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근 몇 년을 비교했을 때 제일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수확기나 비수기의 영향을 받아 가격이 들쭉날쭉 할 수도 있는데 작년에는 양파 가격이 줄곧 고공행진을 거듭했던 것. 그 덕에 이 땅과 같이 놀고 있던 땅들이 양파밭으로 변해가는 걸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건 '해걸이(alternate year bearing)' 이론이었다. '해걸이'는 주로 과실나무의 경우 한 해 수확량이 많으면 다음 해에는 수확량이 적다는 걸 설명하는 농사이론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고추, 마늘, 양파, 배추, 무 같이 환금성이 높고 대규모로 재배되는 작물의 경우 재배면적의 증감에 따른 가격변동 폭이 해마다 요동치는 것에도 유비될 수 있다. 수확하지도 않고 갈아엎어지는 배추밭, 양파밭의 모습이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는 건 이런 농산물 가격의 '해걸이' 때문이다. 그나마 고추의 경우는 재배면적의 증감보다는 그 해의 기상조건에 더 큰 영향을 받는지라 해마다 가격변동이 심하게 반복되는 건 아니고 배추, 무의 경우는 가격변동이 있더라도 재배기간이 짧고 대체재도 있는 편이라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마늘, 양파는 거의 어김없이 해마다 등락을 거듭한다.
▲ 수확을 포기한 양파밭의 3월 초 모습
따라서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작년에 양파 가격이 높았으니 올해 양파 수확기의 가격이 떨어질 거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양파나 마늘 농사짓는 사람들은 가격이 좋으면 재배면적을 늘리고 안 좋으면 줄이는 패턴을 반복한다. 간혹 기상조건에 따라 전염병 같은 게 번져 2년 연속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경우도 물론 있으나 그런 요행을 바라기에는 관행농의 경우 애초에 투입되는 비용이 너무 크다. 몇 년 간 놀리던 이 땅만 하더라도 트랙터 사용료와 퇴비, 제초제, 비료, 농사용 비닐 구입 비용으로만 백만 단위가 넘었을 것이다. 양파 모종 구입 비용과 심는 비용으로도 백만 단위가 넘었을 것이다. 그 외 이런저런 비용으로도 '솔찮게' 들어갔을 것이다. 미래의 수익을 위해 몇백 만 원의 선투자를 한 셈이다. 그런 선투자가 모조리 빚으로 남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떤 심정일까? 잘못된 선택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선선히 인정할 수 있을까?
아시다시피 올해 양파 가격은 4월 중순 이후 추락을 거듭한 끝에 5월 이후에는 수확하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수확을 포기한 드넓은 양파밭에 올라온 꽃대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한다. 잘못된 선택과 잘못된 농사 방법이 압축된 모습이기에. 이렇게 많은 꽃대가 올라왔다는 건 모종 선택에서부터 심는 시기, 시비량 등에서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돈만 좇는 농사의 표본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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