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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멸치 젓갈 거르기(2016)

by 내오랜꿈 2016.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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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지방에서부터 서서히 김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곳은 아직 김장 담그기에는 조금 이른 편이지만 배추나 무 자라는 상태를 보아가며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할 때다. 김치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뭐니뭐니 해도 배추일 터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재료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젓갈일 것이다. 내 어릴 적만 하더라도 젓갈 담그기는 장 담그기만큼이나 한해의 먹거리를 좌우하는 중요한 행사였는데 요즘은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젓갈 담궈 먹는 집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귀찮아서일 거다. 실제로 젓갈 담그는 건 아주 쉽다. 멸치든 새우든 조기든 밑재료에 적당량의 소금(재료에 따라 원재료 양의 10~25% 정도)을 버무려 삭히기만 하면 젓갈은 완성된다. 메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장 가르기까지 여러 공정을 거치며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장 담그기와는 달리 젓갈은 사람의 손길이 아니라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 그런 만큼 젓갈의 역사는 장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고 특정 지역이나 인종, 민족을 뛰어넘는, 전세계적인 보편적 먹거리라 할 수 있다.



▲ 담근 지 2년 6개월 된 멸치 젓갈

▲ 큰 소쿠리에 부어 1차로 걸러낸 멸치 액젓


젓갈은 숙성기간에 따라 젓과 젓국으로 나눌 수 있다. 1~3개월 정도 단기 숙성시켜 원재료의 형체가 남아 있을 때 먹는 것을 '젓'이라 하고, 6개월 이상 숙성시켜서 찌꺼기를 걸러낸 것을 '젓국'이라 한다. 여기에 더해 젓국을 걸러낸 찌꺼기에 물과 소금을 추가해서 한 번 끓인 다음 맑게 걸러내어 '어간장'을 만들 수도 있다. 시골살이 시작하면서 장류는 처음부터 직접 담궈 먹었지만 젓갈은 시골집에서 담근 걸 얻어다 먹다가 2~3년 전부터 직접 담궈 먹고 있다. 사실 너무 간단한 일이기에 직접 담근다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다. 오히려 젓갈은 담그는 것보다는 걸러 내고 보관하는 뒷처리 과정이 까다로운 편이다.


지난 주부터 모처럼 맑은 날이 계속되기에 김장에 쓸 것과 파종할 것을 구분하느라 마늘, 양파를 손질하다가 창고 한 귀퉁이에 먼지를 소복이 뒤집어쓴 젓갈 숙성통이 눈에 들어왔다. 2014년 6월 초에 담근 것인데 작년 김장 때 한 통을 사용하고 남은 것이다. 2년 반이 지난 것이니 상태가 살짝 염려되기도 했는데 헤쳐 보니 거의 완벽한 상태로 삭아 있다. 젓갈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조건이라면 오래 묵힐수록 좋다. 마침 날도 좋으니 열어 본 김에 걸러 내자 싶어 지난 주 내내 젓갈 냄새와 함께했다. 멸치 액젓 거르기는 아주 단순한 작업이면서도 자잘한 손이 많이 간다. 기름기가 많으니 최소한의 도구를 사용해 뒷처리 거리도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 1차로 걸러낸 멸치 액젓을 다시 한 번 광목천을 받쳐 2차로 걸러 내면 투명한 멸치 액젓이 나온다.

▲ 액젓 거르기는 정말 단순한 과정이지만 최소한 3~4일은 투자해야 한다.


멸치 젓갈은 용도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걸러내 보관한다. 액젓 찌꺼기가 들어 있는 탁한 형태로 보관하기도 하고 이것을 창호지나 광목천을 받쳐서 한 번 더 걸러내 맑은 액젓으로 보관하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는 김치 등을 담글 때는 주로 탁한 액젓을 사용하고, 무침이나 소스 같이 요리에 넣을 때는 맑은 액젓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옆지기가 올해부터는 김장에도 맑은 액젓을 사용하자고 한다. 멸치 젓갈 특유의 깊은 맛도 좋지만 조금 깔끔한 김치 맛을 즐기자는 말일 것이다. 1차로 걸러낸 액젓 원액을 다시 한 번 광목천을 받쳐 걸러내는 작업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젓갈 한 통 걸러내자면 최소한 네댓 날은 각오해야 한다. 물론 2년 반이라는 숙성 기간에 비한다면야 그리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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