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고 있다. 취나물, 고사리 등 봄나물 채취도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특별히 정해 놓은 날짜는 없지만 고비가 나오기 시작하고 열흘 정도면 봄나물 채취를 접는다. 이곳은 4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말경이면 고비는 거의 대부분 올라온다. 고사리는 일찍 나오는 걸 뜯으면 땅속 줄기를 통해 옆에서 다시 돋아나지만 고비는 한 번 채취하고 나면 새순이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면 고비가 끝난 이후에도 고사리나 취나물 등 다른 봄나물을 더 채취할 수 있지만 4월 한 달 동안 뜯은 것만으로도 우리 먹기에는 솔직히 차고 넘친다.
▲ 채취한 고비 다듬기. 하얀 솜털 부위를 하나하나 제거한 뒤 삶는다.
토요일 아침부터 집 주변 산을 두어 시간 돌아다니며 채취한 고사리와 고비. 봄에 뜯은 고사리와 고비는 생으로 보관하기가 힘드니 전부 데쳐서 말린 뒤 묵나물 상태로 보관한다. 고사리는 그냥 삶지만 고비는 데치기 전에 하얀 솜털을 전부 제거해야 한다. 두 시간 채취하면 서너 시간 다듬는 게 기본이다. 채취하는 시간보다 다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많은 셈. 이렇게 다듬은 뒤 끓는 물에 데쳐서 말리는데 고비는 찬물에 두어 시간 정도 담궈서 쓴맛을 우려낸다. 그런 다음 말리면 고사리는 볕 좋은 날의 경우 하루면 다 마르지만 고비는 이삼 일 정도 말려야 한다. 그만큼 고사리보다 섬유소 외의 다른 성분이 많다는 뜻이리라.
▲ 고비(위)와 고사리(아래)
▲ 고비는 생식엽과 영양엽이 따로 올라온다. 거의 대부분 생식엽이 먼저 올라오고 영양엽이 나중에 올라온다. 주로 채취해서 먹는 건 영양엽인데 생식엽도 못 먹을 건 없지만 올라오자마자 금방 억세져서 잘 먹지 않는다.
고사리와 고비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고비는 고사리목 고비과로 분류된다. 식물 분류학상으로 따지자면 고사리와 고비는 쑥, 민들레, 상추 사이의 차이보다 인과관계가 더 먼 식물인 셈이다. 쑥, 상추, 민들레는 분류학상 모두 같은 국화과 식물이다. 지역에 따라서 고사리는 채취해서 식용으로 쓰지만 고비는 먹지 않는 곳도 있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하더라도 고비는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집 주위에서 자라는 고비는 항상 우리 차지가 된다. 사람들이 고비를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사리보다 쓴맛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조리할 경우 고비는 확실히 고사리보다 쓰다.
▲ 고비는 고사리보다 쓴맛이 강하다. 그래서 삶은 뒤 찬물에 두어 시간 담궈 두었다 말린다.
그러나 그 쓴맛을 없애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뜨거운 물에 데친 뒤 고사리보다 물에 조금 더 오래 담궈 두면 된다. 우리 집에서는 고사리는 삶은 뒤에 바로 말리지만 고비는 한나절 정도 찬물에 담궈 두었다가 말린다. 말린 뒤 조리할 때도 고사리보다 조금 오래 불려서 사용하면 쓴맛은 얼마든지 중화시킬 수 있다. 쓴맛만 제거한다면 고비는 고사리보다 훨씬 나은 식감과 풍부한 맛을 제공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고비를 고사리보다 더 높게 쳐주기도 한다. 나 역시 고사리보다는 고비를 선호한다. 고사리보다 풍부한 맛은 물론이고 한결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기에.
마르고 있는 봄나물을 보는 것은 즐겁지만 한 달 동안 산야를 헤매고 돌아다니느라 손과 다리는 온통 긁힌 상처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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