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기간, 무 파종한 지 3주차에 접어들었다. 줄뿌림에 가까운 점뿌림을 했더니 본잎이 3~4매 생기면서부터 자리다툼이 심하다. 솎아주어야 할 시기가 지난 탓이다. 김장무는 보통의 경우 파종 2주째에 애벌솎기를 하는데, 본잎이 여린 시기에 솎아낸 건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서 솎아내 버리느니 나물이나 물김치로 활용하기 위해 애벌솎기를 조금 늦춘 것. 솎기 전에 날짜를 꼽아 보니 파종 18일째인데 어떤 것은 본잎이 5~6매 정도 나온 것도 있다. 아마 뽑아 보지 않아도 초생피층(primary cortex) 파열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듯하다.
▲ 김장무 솎아 주기 전
▲ 김장무 솎아낸 후
무의 생육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는 게 이 초생피층(primary cortex)이라 불리는 겉껍질의 탈피다. 초생피층이란 말 그대로 무 씨앗이 처음 발아할 때 떡잎을 달고 나오는 줄기의 표면을 일컫는데 이 겉껍질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무로 성장할 중심 뿌리가 자라고 있다. 무는 이 초생피층과 그 안에 있는 중심 뿌리가 어느 시점부터 생장 속도를 달리하게 된다. 그 결과 초생피층의 파열이 일어나 중심 뿌리가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무는 급속하게 굵어진다.
▲ 무의 초생피층 파열. 본잎이 3~4매 시기에 땅속 뿌리에서부터 진행된다.
원예작물학 교과서나 농진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자료에 따르면 무의 초생피층 탈피기는 파종 후 20~25일 정도로 잡고 있는데 실제로 키워 보면 파종 후 15일 정도부터 초생피층 파열이 진행된다. 사람 눈에 보이는 건 뿌리와 잎줄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초생피층 파열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실제로 뽑아 보면 뿌리의 하단부 어느 지점에서는 훨씬 더 빨리 중심 뿌리가 초생피층을 뚫고 땅속으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원예작물학 교과서의 서술과는 달리 본잎이 3~4매 나오는 시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따라서 원예작물학 교과서나 농진청 교본은 분명 수정되어야 한다. 파종 후 며칠 째가 아니라 무의 본잎이 3~4매 나오는 시점에서부터 초생피층 파열이 시작된다고.
▲ 무의 초생피층 파열. 겉으로 드러나는 시기는 파종 후 3주 정도부터다.
어떤 식물이든 같은 날, 같은 땅에 심어도 서로 자라는 상태가 다르기에 며칠의 시차는 늘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 무시하고 파종 며칠 째에 무의 초생피층 파열이 일어난다는 식의 사고는 작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기준으로 삼은 표현방식인 것 같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무를 중심으로 보면 본잎이 3~4매 나오는 시기는 무 각각의 생장 속도에 따라 보름 정도일 수도 있고 한 달 정도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어떤 땅, 어떤 조건이냐에 따라 무의 생장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무슨 권리로 이를 20일이니, 25일이니 한정할 수 있을까?
비가 오지 않는 것만 빼면 무난한 가을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추석 지나자 마자 하룻동안 150mm의 폭우에 시달리더니 이제는 태풍 버금가는 바람이 분다. 무 뿌리와 배추 뿌리가 보기 애처로울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이 달리 뭘 해줄 게 없으니 애타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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