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모습/농사

갑자기 다가선 가을이 그리 썩 반갑지 않은 이유

by 내오랜꿈 2016. 8. 30.
728x90
반응형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갑자기 나를 쓱 앞질러 저만치 달아나려 한다. 한 달 넘게 비 한 방울 없이 지속된 폭염 탓에 가을 준비는 하는 둥 마는 둥인데... 당근도 파종 시기를 놓쳤고(당근은 파종한 뒤 수확하기까지 110일 정도 걸리는 작물이다), 쪽파도 늦었다. 겨우 김장용 배추 모종만 키우고 있는 정도다. 김장용 무나 갓도 파종해야 하고 상추, 치커리 등 가을용 쌈채소도 파종해야 하고 비트나 콜라비 같은 뿌리 채소도 파종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틀 전만 하더라도 텃밭에서 오그라드는 고춧잎을 바라보며 지칠 줄 모르는 태양에 원망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비 한 번 오고 나더니 새벽녘 살갗을 스치는 기운이 한겨울 문풍지 틈으로 스며든 냉기 같다. 여름 내내 멀리했던 홑이불을 끌어당기는 것으로는 활짝 열린 창문으로 밀려드는 찬바람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 덕분에 두세 번 깨고 잠들기를 반복하는 비몽사몽간에 기상청 예보가 생각나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지난 금요일 기상청 중기예보만 하더라도 9월 초순까지 낮 기온은 30℃를 넘고 아침기온은 22~23℃를 유지하는 것으로 예보되어 있었는데 어제, 오늘 이곳의 아침기온은 16~17℃ 정도다. 이것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기압배치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일 텐데 단순히 비 예보도 아니고 어떻게 기압배치 변화를 이삼 일 전까지도 예측하지 못 한다는 말인가? 난 비 예보 한두 번 틀리는 것으로 기상청 욕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기상청 예보의 정확도는 85% 정도(미국이나 유럽도 이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라고 하는데 틀릴 확률이 15%라면 여섯 번 가운데 한 번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일 년 중 비(눈도 포함)가 오는 날은 평균 90일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 년 내내 무조건 비가 오지 않는다고 우기기만 해도 75.34%는 맞는 셈이다. 단순히 비 예보만 생각한다면 내가 무조건 비가 오지 않는다고 우겨도 75%가 넘는 정확도를 보일 수 있는데 수백 억짜리 슈퍼컴퓨터에, 수천 억 예산을 쓰는 기상청 예보의 정확도가 85% 수준이라면 과연 정확도 10% 높이기 위해 그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절로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 예보 틀린 것 가지고는 기상청 욕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새벽 한기에 선잠에 시달리다 보니 절로 욕설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마도 폭염과 기상청 예보 탓에 손 놓고 있었던 가을준비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 아닐까 싶다.


이번 주는 무를 비롯해 당근, 비트, 콜라비 등 뿌리 채소부터 서둘러 파종해야겠다. 이것들은 파종부터 수확하기까지 최소한 두세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뿐더러 내한성도 취약한 작물들이기에 자칫 추위가 일찍 오기라도 하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창밖은 뭉게구름 떠다니는 가을 하늘의 은근한 푸름이 선연하고 창 안쪽은 바질 꽃잎의 은은한 향이 상큼하다. 말려서 차로 쓸 요량인지 옆지기가 꽃이 피기 시작한 바질을 줄기째 꺾어 거실 창가에 매달아 두었다. 그 향기에 취해서일까? 뭉게구름이 앞산 꼭대기에 걸려 낮은 포복을 하듯 힘겹게 넘어가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