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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들판도 타고 작물도 타고 농부의 마음도 탄다

by 내오랜꿈 2016.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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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들판이 타들어간다. 최고기온이 40℃에 육박하는 등 연일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는 날씨. 비마저 실종되었다. 한 달째. 이곳은 지난 7월 12일, 40mm 정도의 비가 오고 난 뒤로는 그 흔한 소나기 한 번 내리지 않았다. 최저기온도 25℃ 이상에 머무는 날이 대부분이고 바닷가 근처라 습도도 높아 이슬점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 낮기온은 매일 35℃를 오르내리고 한 달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데 이슬마저 맺히지 않는 날씨. 이런 날씨에 작물들이 제대로 자란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게다.



▲ 줄기가 말라버린 곤드레나물 재배밭. 스프링쿨러가 설치되지 않은 곳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 스프링쿨러가 설치된 밭은 그나마 버티고 있는 중이다.


주변의 곤드레나물과 취나물 밭. 스프링쿨러가 설치된 곳은 그나마 버티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곳은 잎줄기가 말라간다. 이뿐 아니라 고구마순도 마르고 콩줄기도 말라간다.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자랐지만 내 기억에 고구마 줄기가 말라가는 모습은 올해 처음 본다. 매일매일의 날씨에 관심을 가진 뒤로 이런 적이 있었을까 싶다. 주변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형편이라 이제 곧 스프링쿨러마저 무용지물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앞으로 열흘 동안 비 예보는 없다. 이 지역 올여름 기상청 예보는 비에 관한 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한여름 기상청 예보가 이렇게 정확한 것도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 2015년 8월 중순의 고추밭.

▲ 2016년 8월 중순의 고추밭.

▲ 4일 정도면 잘 마른 태양초가 만들어지는데 말릴 고추가 예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날씨에 텃밭의 고추는 어떨까? 이 즈음의 고추는 물 만난 고기처럼 줄기와 잎이 우거지고 열매는 탐스럽게 익어가고 꽃은 쉴 새 없이 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텃밭의 고추는 줄기는 듬성듬성하고 잎은 축 늘어지고 피어나는 꽃송이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익은 고추는 4일이면 아주 잘 마른 태양초가 만들어지는데 말릴 고추가 예년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붉은 고추를 말리지 못해 전기장판을 돌리곤 했더랬는데 아득한 옛이야기 같다.




이 와중에 배추 모종을 옮겨 심는다. 날씨가 좀 수그러든 다음에 옮겨 심고 싶어도 파종한 지 20일이 넘었기에 더 이상 미루기도 힘들다. 10월 중순 수확 예정으로 좀 일찍 파종한 배추 모종인데 이 폭염 속에서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염려스럽긴 하지만 어디 내다 팔 건 아니니 못 자라면 김장배추로 대신하면 그만이다.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어 고통받는 것에 비하면 이깟 배추 나부랭이가 뭐 그리 문제이랴. 


저 지칠 줄 모르는 태양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들판도 타고 작물도 타고 농부의 마음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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