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채소 가운데 하나다. 품종도 그만큼 다양한데 미국이나 일본은 주로 크리습 헤드(crisp head)형 결구상추를 즐겨 먹고, 유럽은 버터 헤드(butter head)형인 반결구상추가 주류를 이루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결구상추보다는 잎상추가 주류를 이룬다. 이는 아마도 채소류를 샐러드로 먹는 문화와 쌈으로 먹는 문화의 차이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텃밭의 상추와 치커리. 상추는 꽃대가 올라오고 있고 치커리는 아직 버티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집 텃밭에서도 쌈용으로 쓰는 상추나 치커리가 사시사철 자라고 있는데 겨울보다는 이맘때가 상추 먹기가 힘들다. 겨울에도 노지에서 어느 정도 버티는 상추지만 장마철과 고온이 교차하는 때는 꽃대가 올라오거나 줄기째 녹아버리기도 한다. 새로이 씨앗을 파종해도 고온으로 인해서 잘 발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상추는 호광성 종자라서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흙을 거의 덮지 않을 정도로 파종해야 하는데 여름철 한낮의 흙 표면온도는 50도를 넘어가기 일쑤다. 이론적으로 상추의 발아적온은 10~16℃ 정도고 30℃ 이상이나 5℃ 이하에서는 거의 발아하지 않는다. 특히 30℃ 이상의 온도에서는 자발적 휴면상태에 들어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상추 씨앗은 직파했을 경우 발아까지 평균 7일 정도 걸리는데 여름철에는 저온으로 보관한 종자라도 흐린 날이나 햇볕이 약한 날이 지속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발아율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 상추 씨앗 저온처리. 큰 접시에 키친타올을 깔고 종류별로 씨앗을 넣은 뒤 물을 공급한 다음 랩을 씌우고 냉장고에 넣어 둔다.
봄부터 키우던 상추가 꽃대를 세울 준비를 하는지라 20여 일 전 여름상추를 파종했다. 냉동실에서 보관하던 씨앗이라 별 생각없이 텃밭에 직파했는데 열흘이 지나도 발아한 게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상추 씨앗을 최아 처리하여 파종하기로 했다. 식물 씨앗에 따라서는 저온처리를 하면 발아가 촉진되는 경우가 있는데 고온에서 자발적 휴면에 들어가는 상추 종류가 대표적이다.
종자 저온처리는 특별한 게 아니라 씨앗을 저온 상태에 두어 휴면 상태를 종료시켜 싹이 트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씨앗 최아방법 중에서도 가장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전문적인 방법이야 까다로울 수도 있겠지만 개별 농가에서는 냉장고를 이용하면 된다. 넓은 접시에 키친타올을 깔고 저온처리하고자 하는 씨앗을 구역을 나누어 분류한 뒤 찬물을 공급하여 수분을 머금도록 한두 시간 놓아둔 다음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는다. 랩을 씌우지 않고 두어도 되는데 이때는 수분이 마르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해 주어야 한다. 상추 씨앗은 이런 방법으로 2~3일 정도 냉장고에서 저온처리하면 싹이 틀 준비를 마친다. 너무 오래 두면 싹이 나와 뿌리가 자랄 수도 있으니까 싹이 나올랑 말랑 할 때가 좋은데 이게 2~3일 정도인 것 같다.
▲ 저온처리 쌍추, 치커리 씨앗 포트 파종.
▲ 포트파종 1일째. 상추 씨앗은 대부분 발아 완료. 치커리, 쑥갓 씨앗도 3일째 모두 발아 완료.
▲ 파종 7일째. 1개씩 남기고 모두 솎아주었다.
직파하느냐 포트 파종하느냐에 따라 저온처리 기간을 달리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는 이틀 반 정도 냉장고에 놓아 둔 다음 포트 파종했다. 텃밭에 아직 치커리나 깻잎 등이 있는지라 종류별로 8개씩만 파종. 저온처리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금방 나타났다. 파종한 뒤 하루 만에 상추 씨앗은 대부분 발아했고 치커리, 쑥갓도 2~3일 만에 모두 발아를 마쳤다. 이렇게 간단한 걸 두고 매번 직파한 뒤 싹이 나는지 안 나는지 들여다 본 걸 생각하니 허탈할 정도다.
▲ 가을재배용 오이 6포기. 직파한 씨앗 6포기도 모두 발아했다.
▲ 가을재배용 양배추, 브로콜리도 1차 파종했는데 브로콜리는 전혀 발아하지 않음. 씨앗이 오래되어서인지.... 저온처리 후 파종한 것과 새로 싼 씨앗을 비교 실험 중.
여름상추 파종하는 김에 가을재배용 오이와 양배추 종류도 파종했다. 오이는 직파와 포트파종을 동시에 했는데 어느 경우나 싹이 100% 발아한다. 반면 양배추와 달리 브로콜리는 전혀 발아하지 않았다. 씨앗이 오래되어서인 거 같아(2013년 채종으로 표기) 새로 구입한 뒤 기존의 씨앗을 저온처리하여 파종한 것과 비교실험 하고 있는 중이다. 늘 보면 양배추보다 브로콜리가 발아도 늦고 모종도 부실한 경우가 많다.
날씨는 이제 한창 여름으로 가고 있는데 내 마음속 텃밭은 이미 가을 너머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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