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활짝 갠 하늘이다. 햇빛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제일 먼저 일주일 넘게 눅눅한 창고 속에서 달라붙으려는 곰팡이 포자와 싸우던 마늘, 양파를 꺼내 일광욕을 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습한 바닷가인데 이곳은 지난 주부터 어제까지 10일 동안 8일이나 비가 내렸다. 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습한 날이 지속되었다는 말이다. 이 날씨에 텃밭은 어떨까?
▲ 잿빛검팡이병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토마토. 가운데 노랗게 보이는 것이 수확을 거의 마친 강낭콩 줄기다.
습하긴 해도 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아서인지 고추를 비롯한 다른 작물은 별 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토마토. 지난 주 초부터 아래쪽에서 잿빛곰팡이균에 감염된 잎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장마를 거치면서 제법 표가 날 정도로 번지고 있다. 토마토 재배시 많이 걸리는 병해는 풋마름병이나 흰가루병 그리고 곰팡이병이다. 그 중에서 풋마름병은 기온이 30℃ 이상의 고온에서 잘 발생하고 흰가루병은 건조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병이다. 그런데 잿빛곰팡이병이나 잎곰팡이병은 습한 날씨에 기온이 20~25℃ 정도일 때 가장 많이 발생한다. 저온다습한 상태에서 발병하기 쉬운 것(토마토 재배 조건에서 보자면 20℃는 저온에 속한다). 딱 지금 시기다. 이곳 지역은 이번 주 초까지 20일 넘게 최저기온은 20℃전후, 최고기온은 25℃ 전후에 머물러 있다. 몇 년간 토마토를 키우면서 풋마름병은 간혹 나타난 적이 있지만 곰팡이병은 발생한 적이 없는데 올해 처음으로 잿빛곰팡이병을 구경한다.
▲ 잿빛곰팡이균에 감염된 토마토 잎. 아래쪽 잎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습도나 온도 이외의 조건을 돌아보면 공기의 통풍이 문제가 됐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올해는 폭 120cm 이랑에 두 줄로 토마토를 심으면서 이랑 가운데에 강낭콩을 파종했다. 엄밀히 말하면 강낭콩을 먼저 파종하고 3주 정도 뒤에 토마토를 옮겨 심었다. 강낭콩은 파종후 수확까지 3개월이면 충분하니까 토마토가 익을 때 쯤이면 강낭콩은 이미 다 수확하고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계산대로 지금은 가운데 파종한 강낭콩을 거의 다 수확했다. 하지만 거의 두 달 가까이 우거진 강낭콩 줄기 때문에 토마토 아래쪽으로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모두가 좋을 수는 없는 법인가보다. 강낭콩은 아주 잘 자라 수확까지 마쳤지만 토마토에는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으니...
또 다른 요인을 생각하자면 모종 상태에서부터 곰팡이 포자가 옮겨 왔을 수도 있다. 지금 텃밭에서 자라는 토마토는 30여 포기인데 대부분 직접 키운 것이지만 9포기는 시장에서 파는 모종을 사온 것이다. 키우는 모종이 더디 자라는 까닭에 조금 빨리 수확할 목적으로 일찍 심기 위해 사온 것. 모종을 키웠던 파종상이 잿빛곰팡이균에 감염된 곳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발병한 이후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약을 칠 것도 아니니 스스로 치유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다행인 건 아직까지 토마토 과육에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잿빛곰팡이병은 과육에도 곰팡이 포자가 옮겨 갈 수도 있는데 잿빛으로 변하면서 물에 덴 것 같은 수침상으로 변한다. 언제 토마토 열매로 옮겨갈지 모르니 당분간은 매일매일 지켜보면서 불안불안한 날을 보내야 할 거 같다.
'살아가는 모습 > 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추, 치커리 저온처리 포트 파종 (0) | 2016.07.12 |
---|---|
멧돼지, 감자밭 습격하다 (0) | 2016.07.11 |
파프리카 순지르기와 열매솎기 - 파프리카 이야기 ① (0) | 2016.07.03 |
장맛비 내리는 날의 텃밭 풍경 (0) | 2016.07.01 |
풀밭에서 보물(?) 찾기 - 양파 수확 (0) | 201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