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비는 올봄에 내린 비 가운데 제일 반가웠던 비였다. 갑자기 30℃를 오르내리는 기온과 건조한 날씨 탓에 텃밭 작물들이 힘겨워 하던 터에 내린 단비였으니까. 그 덕에 상추, 치커리, 쑥갓 등 잎채소는 자리가 비좁다 아우성이고 토마토와 오이는 하루 새 한 뼘은 자란 듯하다.
이 요란한 텃밭 작물들 사이로 패랭이꽃 하나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제 무리들은 아직 꽃망울만 머금고 있는데 뭐가 그리도 급한지 홀로 피었다. 한창 덩치를 키우고 있는 토마토 사이에 있는 것들인데 위기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따지고 들자면 작년 가을부터 자기들이 자리잡고 있던 곳인데 뒤늦게 굴러 들어온 토마토가 주인 행세를 하려 하고 있는 셈이다. 나로선 토마토가 더 중요하다 할 수 있으나 여름 내내 패랭이꽃 감상하는 것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치열한 경쟁 속으로 접어든 텃밭식물들과 달리 비파는 홀로 느긋하다. 몇 달 무심히 쳐다보고 지낸 사이 열매는 엄지손가락보다 더 굵어졌다. 20여 일 있으면 노랗게 익어가리라. 2,3년 전부터 겨우 맛만 보여주는 수준이더니 올해는 나무 키운 지 7년 만에(아마도 9년생 정도인 것 같다) 비파 열매를 원 없이 먹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를 쳐다보고 있는데 '돌연변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 안 있어 익어갈 열매 사이로 꽃송이 하나가 피었다. 5월에 무슨 비파꽃이 핀다는 말인가?
일 년에 두 번 피는 치자꽃도 낯선데 늦가을에 피어야 할 비파꽃이 여름에 피는 건 정말이지 적응하기 쉽지 않다. 분명 무슨 까닭은 있을 터이나 익어가는 열매 옆에서 새 꽃송이를 피우는 비파 마음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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