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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飛正傳 : Days of Being Wild』― '욕망의 탈주'를 향한 몸짓

by 내오랜꿈 2008.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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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飛正傳 : Days of Being Wild』― '욕망의 탈주'를 향한 몸짓


Losindios Tabaharas - Maria Elena 


홍콩영화, 장국영, 유덕화라는 스타의 이미지만으로 예단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아비정전』은 오늘의 홍콩을 이루고 있는 두 그룹의 사람들, 곧 이민자-중국 대륙에서 온 사람이건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온 사람이건 간에-들과 홍콩출신들 사이의 관계들로 인해 이 두 그룹의 인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왕자웨이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6명의 인물들로 시작했다. 장국영이 연기하는 인물과 그의 양어머니, 그의 친구, 두 명의 소녀와 경찰이다. (…) 발상은 서로 다른 출신의 두 그룹의 인물들 이야기 정도였다. 첫번째 그룹에는 주인공의 양어머니가 있는데, 상하이에서 온 이민자이다. 양아들(장국영)은 필리핀 출신이다. 다른 인물들에 대해 말하자면, 유덕화가 연기하는 경찰처럼 홍콩 출신이다. 장만옥이 맡은 인물은 홍콩에서 살지만 마카오 출신이기 때문에 중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본적인 발상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들로 인해 이 두 그룹의 인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다.

60년대에 홍콩 주민들과 이민자들이 섞여 사는 것은 아직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두 파트로 되어 있었다. 1960년에 시작하는 첫 이야기와 1966년에 시작하는 두 번째 이야기인데, 이 두 이야기는 일종의 느슨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의 動因은 장국영이 연기하는 인물인데, 첫번째 이야기의 마지막에 죽는다(그러나 그의 존재와 행동의 결과들은 두번째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다)."(Berenice Reynaud, 「왕자웨이 감독과의 대화」, 『까이예 뒤 시네마』1995년 4월호, 『시네필』15호, p23에서 재인용. 그러나 두번째 이야기는 『아비정전』의 흥행 실패로 결국 영화화되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아비(장국영)는 무위도식하는 인물이다. 자신을 버린 친부모를 만나야 한다는 욕망만을 간직한 채. 그 욕망이란 사실 '근대적 가족의 재구성'에 관한 갈망이다. 그가 인정하는 유일한 코드화인 셈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분열자의 전형으로 상징되는 그에게 다양한 욕망의 흐름을 하나의 중심에 묶어두고자 하는, 곧 기존의 질서에 포섭된 규범화된 주체로 재생산되는 걸 기대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것-단 한번만이라도 친부모를 만나고자 하는-조차 거부되는 현실.

이제 그는 선택해야 한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규범적 개체'가 되든지, 아니면 그로부터 '탈주' 하든지. 망설일 이유가 없다.

드디어 탈주의 시간! 코드화된 배열과 삶으로부터의 탈주, 그 모든 환상과 유혹으로부터의 탈주. 하지만 이 탈주는 단순한 거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분열증적인 탈주는 벼랑 위를 달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 위험에 대해 삶 전체를 거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탈주'는 삶과 죽음 사이의 그 위태로운 선을 질주하는 것이고, 정상과 광기 사이의, 코드화된 삶과 삶에서 배제되는 광기 사이의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벼랑 위를 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선 불가능한 질주다."(이진경,『'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7편의 영화』, 새길, p29.)

빈털터리이면서 암거래를 시도하는 아비, 돌아오는 폭력, 휩쓸리는 유덕화, 그리고 '탈주'. 한없이 달리기만 하는 기차와 끝없는 밀림, 그리고 무(또는 무지)의 상징인 터널. 밀림 속을 달리는 기차 만큼 탈주의 상징에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그러나 역시 탈주라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칼에 찔린 고통에 신음하는 유덕화, 총에 맞아 죽어가는 아비. 그들에겐 숨을 쉬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든 고통이다. 흐르는 피를 손으로 움켜쥔 채 아비는 '발없는 새'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가로막는 유덕화, 화를 내며 말한다.

"난 너와 달라.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어. 네가 언제 날아보기나 했어. 날 수 있으면 날아봐."

꺼져가는 의식을 가다듬으며 아비는 말한다.

"언젠가는! 그때는 아는 척 하지 마."

멍하니 보고 있던 유덕화가 묻는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에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해?"

아비는 대답한다.

"기억할 건 잊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이 무의식의 코드! 그 처절한 탈주의 순간에도 탈주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회귀하려는, 곧 획일화된 코드화를 지향하는 '편집증'은 유감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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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굳이 '편집증'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사랑의 불변성/영원성이라는 허울뿐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사랑의 영원성'이라는 테마는 하나의 사랑, 한 사람에 대한 사랑, 하나의 대상에 대한 사랑의 영원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채워지지 못한 '욕망'으로서의 사랑에 대한 갈증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러기에 그것은 채워도, 채워도 가득 차지 않는 끝없는 욕망의 늪인 것이다.

사랑이 서로에 대한 구속을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닐진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화두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이미 그것은 하나의 초코드화된, 종교화된 교리에 불과하다. 변치 않는 사랑,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생각해보라. 믿지 않으면, 사탄이요 악마가 되는 사랑! 복종하지 않으면, 반체제요 불순분자가 되는 사랑! 이런 게 사랑이라면 그것은 모든 욕망을 하나로 코드화하려는 편집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현세의 오래된 만화 가운데 『지옥의 링』이란 게 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기억에 의존하기에 정확한지는 장담 못 하지만).

"사랑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런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신과의 사랑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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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힘겨운 숨을 몰아 쉬며 말한다.

"하지만 다시 그녀를 만나면 난 잊었다고 전해줘."

탈주의 위험과 고통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묘사할 방법이 또 있을까? 기차 바깥은 온통 밀림이다. 탈주의 공간은 목적지와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코드화된 삶과 탈주 사이의 거리 만큼이나 멀리....

이렇듯 탈주는 단지 거부하고 해체하는 데서, 그리고 새로운 질서와 배열을 만들어낸다고 끝나지 않는다. 언제든지 모습을 드러내는 이 무의식의 코드를 지워버리지 않는다면, 그 고통스런 파괴-목숨까지 거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무의식화된 권력을 지우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것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거부되고 해체된 자리는 동일한 것이 반복되어 들어설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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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이런 의미에서 이진경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혁명', 그것은 단지 국가권력을 해체하고 새로운 것을 대체하는 것만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새로운 공간에서 활보하고,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들이 동일한 것을 재건할 수 있을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지 않을까?" 이진경, 앞의 책,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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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도시 홍콩의 비극을 소재로 유미주의적인 영상을 보여준 영화 『아비정전』은 1990년 10월에 상영되었으나 흥행에는 대참패를 기록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추상적인 대화가 많아 보는데 다소 긴장이 필요한 이 영화에 관객들은 『열혈남아』와 같은 열광을 보내주지 않았던 것. 그러나, 지나치게 계산된 카메라 워킹으로 답답한 감은 있지만 영화기술적인 면에서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에 의해 최근 10년동안 홍콩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로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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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왕자웨이 영화의 연대기에 있어서도 이 영화는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 『열혈남아』가 전형적인 주류 홍콩영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면, 『아비정전』에서는 이후 왕자웨이 영화의 주요 모티브라 할 수 있는 '엇갈린 시간, 엇갈린 인연'이라는 문제틀이 부각된다. 장국영과 장만옥, 장만옥과 유덕화, 장학우와 유가령의 관계설정이 그러한데 특히 유덕화와 장만옥의 관계는 『동사서독』이나 『중경삼림』의 그것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장국영으로부터 버림받은 장만옥과 노모의 부양을 위해 선원이 되지 못하고 경찰이 된 유덕화의 만남은 처음부터 엇갈릴 운명이었을까? 매일밤 순찰할 때마다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장만옥의 전화를 기다리는 유덕화⇔버림받은 상처를 잊고 유덕화에게로 가기 위한 잊혀짐의 시간이 필요한 장만옥. 노모의 죽음으로 더이상 홍콩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기에 사랑을 뒤로 한 채 선원이 되어 떠나가는 유덕화⇔상처를 딛고 새로운 사랑을 위해 전화를 거는 장만옥.

그러나 화면 속 공중전화박스 앞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개인적으로 『아비정전』의 스토리 메이커인 장국영이라는 인물보다 장만옥과 유덕화가 인상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엇갈린 인연과 엇갈린 시간이 빚어내는 인간사의 회한의 이야기는 『동사서독』에서 극대화된다.

1996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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