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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마인드> - 천재의 광기조차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로버트 아우만과 토마스 셸링. 모두 '게임이론' 연구자이다. 아우만은 게임이론의 모태이자 시발점이 되었던 '비협조적 게임이론'의 틀을 넘어서 '협조적 게임이론'과 이를 통한 '일반균형이론' 분야에 공헌한 점이, 셸링은 게임이론을 정치, 사회, 전쟁 등으로 확장시킨 공로가 인정된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게임이론 연구자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 존 F. 내시를 비롯한 3명의 경제학자들에게 이미 수상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론'. 생소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면, 포커나 고스톱 등의 도박판에서 우리는 이미 이 이론을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기에. 이 게임이론의 창시자인 존 F. 내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바로 <뷰티풀 마인드>다.
예컨대 4명의 남학생 모두가 퀸카 한 명에게 목을 맨다면, 운좋게 퀸카를 차지하는 남학생이 있을진 몰라도 나머지 3명의 여학생이 삐져서 가버린다면 3명의 남학생은 먼산만 쳐다봐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퀸카를 차지할 수 있는 남학생은 하나이므로 퀸카를 잡기 위해 서로 치고받을 게 아니라 3명의 남학생이 퀸카를 제외한 3명의 여학생을 사이 좋게 나눠서 파트너를 맺는다면 그 세 여학생도 기분 좋고 퀸카도 나머지 한 명과 파트너를 맺을 수 있지 않느냐, 란 논리인 것이다 . 다시 말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형태로 타협하자는 말이다. 아, 물론 4명의 남학생 중 그 누구도 퀸카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니, 이 타협이 말처럼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이러한 '게임이론'이란 원래 체스나 포커 등과 같은 게임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게임에서 선수들은 상대선수가 어떤 수를 쓸 것인가에 대해 미리 예측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게임을 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전략적인 상호활동이 경제상황의 많은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연구되어 온 것이다. 오늘날 게임이론은 경제 문제들을 분석하는 주도적인 도구가 되었고, 특히 게임이론의 한 분야로서 구속적인 협력을 배제하는 '비협조적 게임이론'은 경제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즉, 이 이론은 평형의 개념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해서 (여러 경제주체들의) 전략적인 상호활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명색 경제학을 전공한 나조차도 어려운 말들 뿐이니 전문적인 용어가 아니라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보자.
국제유가의 하락 때문에 고민하던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원유의 50% 감산을 결의한다고 발표하면 그날로 유가는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그 오르는 폭이 50%만 오르는 게 아니라 대체적으로 200% 이상 폭등하는 게 세계경제의 현실이다. 그로 인해 OPEC 회원국들은 50% 감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두 배나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데 팔 수 있는 물량에는 애초에 합의한 쿼터에 따른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익을 눈앞에 두고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다보면 OPEC 회원국들 중 일부는 반드시 규칙을 어기고 몰래 쿼터 이상으로 원유를 생산하여 국제 현물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 현실적 결과는? 당연히 다른 회원국들도 모른 체하고 판매량을 늘릴 것이고, 그러다보면 가격은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 유가가 폭등했다가도 금새 다시 제자리로 떨어지는 이면에는 이런 OPEC 회원국들간의 구속적인 협력 (합의)을 배제하는 '비협조적 게임이론'의 근간이 숨어있는 것이다.
곧, 결과를 뻔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회원국들이 자신에게 최선인 전략을 택하면서 생겨나는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게임의 상황에서 게임 참가자들이 최선의 전략을 찾는 과정은 게임이론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다. 이렇게 각 참가자들이 상대방의 전략을 주어진 것으로 보고(다른 나라들은 쿼터를 지킬 것이다! ) 자신에게 최선인 전략(몰래 증산하여 현물시장에 내다 판다! )을 선택해서 만들어진 결과(결국 유가는 다시 옛날 수준으로 떨어진다! )를 게임이론에서는 "내시균형(Nash Equilibrium)"이라고 한다.
OPEC의 예에서 내시균형은 원유가격이 내려가고 공조가 무너진 데 대해 OPEC 국가간에 상호비방이 오가는 것을 우리는 국제뉴스를 통해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따라서 내시균형이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내시균형'을 만들어낸 이가 바로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존 F. 내시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내시의 모습은 실제의 내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내시는 천재의 광기를 이기지 못하는 정신분열자의 모습으로 일관되게 그려지고 있으나, 실제의 내시는 그런 정신병력 뿐만 아니라 섹스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하고 자신의 첫 아들은 어린 시절을 고아원을 전전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94년도의 그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그 자신의 이론보다는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실 경제에 적용시킨 사람들의 공로가 더 크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어쨌거나 영화의 제목 "A beautiful mind"는 내가 보기에 이런 내시를 40여 년간 보살펴온 그의 아내(이자 동료인) 앨리샤의 그 '아름다운 마음'을 지칭하는 것 같다. 아마도 천재는 정신분열자이었어도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었다면, 그 이면에는 엘리샤 같은 '아름다운 마음'이 있어야만 했던 건 아닐런지...
written date:2005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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