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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잊어야 할 사랑을 잊는 방법에 대하여

by 내오랜꿈 2008.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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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잊어야 할 사랑을 잊는 방법에 대하여


夢中人 - <重慶森林> O.S.T



영화 『중경삼림』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흔한 애정영화와 다른 점은 예정된 만남이나 사랑, 예상되는 결말은 없다는 것이다. 마치 스쳐지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듯한 내러티브와,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이고 속도감 있는 화면, 다인칭적인 나레이션, 비논리적인 편집(논리적 또는 시간적으로 앞 뒤가 안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보면서 한 번 찾아보시도록. 이 글을 자세히 읽고 보면 혹 찾을 수 있을지도...) 등 전작 『동사서독』에서 완성된(?) 왕자웨이만의 색채가 흠뻑 묻어나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네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중경의 밤거리를 유령처럼 스쳐지나가는 두 명의 실연한 경찰과 두 명의 여자. 이들은 도시의 허공에 떠 있는, 외롭고 헛된 기다림의 사랑 속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신의 고독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열려 있는 그들의 스쳐지나감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복경찰 금성무는 스쳐지나간 여자 임청하와 정확히 57시간 뒤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금성무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또 한 여자 왕정문과 스쳐지나간다. 그녀는 정확히 6시간 뒤에 다른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남은 남자 양조위는 실연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워내는 왕정문으로부터 또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① 사랑의 유효기간, 그것은 기한지난 통조림 같은 것! : '정신적 고독의 깊이'



밤이 되면 다시 낯설어지는 도시, 이민자 노동과 마약 거래가 얽혀 있는 중경의 밤거리. 그곳에서 만난 경찰과 마약 밀매를 하는 금발 여인의 사랑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고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 고독을 위로하는 방법이 사랑 말고 또 어디 있으랴.


'데미무어'를 닮은 그녀로부터 '부루스 윌리스'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연당한 경찰 금성무,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날 기한을 정해두고 그날 기한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하루 하나씩 모은다.


① 우연인지는 몰라도 『타락천사』의 하지무(금성무) 역시 5살 때 기한지난 통조림을 먹은 뒤 말을 잃어버리는 인물로 나온다. 그렇다면 왕자웨이에게 통조림이 상징하는 건 무엇일까? Berenice Reynaud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통조림에 대한 생각은 현실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 대부분의 장면은 밤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촬영에 적합한 장소는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에서는 무엇을 살 수 있겠는가? 온통 통조림이다. 착상은 그것 때문이다. 한편 내가 아이러니라고 생각한 것은 음식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통조림이 유통기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선함조차 무효일 수 있다." 『까이예 뒤 시네마』, 『시네필』15호, p2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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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5월 1일, 금성무의 생일이자 4월의 파인애플 통조림은 모습을 감추어야 되는 날. 그날 금성무는 쓸모없게 되어버린 통조림을 모두 먹어치우고 술을 마시며 그 바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한다. 그때 들어온 여자 임청하. 그녀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한시도 마음놓을 수 없는 마약 밀매상이다.

그녀에게 중경은 금발 가발을 쓰고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며 비가 오지 않는 데도 레인코트를 입고 다니는, '언제 태양이 뜰지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도시이다. 둘은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금성무는 쉬고싶다는 임청하를 호텔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이지 푹 쉰다. 지친 그녀의 밤을 지켜준 그는 그녀의 피곤을 반영하는 더러워진 구두를 깨끗이 닦아 놓은 후 떠난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 아침 삐삐를 통해 생일축하 메시지를 받는다. 짧은 하룻밤의 만남이었지만, 그녀는 그에게 만 년이 지나도 잊고 싶지 않은 사랑을 심어주었다.


② 그=그녀의 흔적과 대화하는 방법 : 타인과의 의사소통의 욕망


혼잡한 중경거리를 순찰하는 경찰 양조위, 그는 항상 같은 시간에 패스트푸드점에 나타난다. 애인에게 줄 샐러드를 사기 위해. 그러나 그가 사랑하던 스튜어디스는 열쇠와 함께 이별의 편지를 패스트푸드점에 두고 떠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여자 왕정문. 그녀는 가게에 있을 때면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크게 틀어 놓는다. 양조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그의 애인이 가게에 맡기고 간 이별의 편지를 보게 된다.

찰나적인 사랑만이 가능한 이 도시에서 두 사람은 긴 모색의 시간을 갖는다. 왕정문은 양조위가 없을 때면 그의 집으로 숨어들어가 남아있는 여자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자신의 집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이상하게 느끼면서도 양조위는 애써 감정을 숨긴 채 떠나간 여인의 흔적과 대화하며 마냥 그녀를 기다린다.

이 희망없는 시간을 돌파할 방법을 그들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소품인 「California Dreaming」만이 역설적으로 그들의 감정을 묶어줄 뿐이다. 드디어 첫 데이트 하는 날, 그러나 기다리던 왕정문은 오지 않고 이별(?)의 편지만 또다시 그의 손에 남겨진다.

그리고, 1년 뒤 패스트푸드점을 인수한 양조위를 스튜어디스가 된 왕정문이 다시 찾아온다. 이 1년의 유예기간과 다시 만남.

이로써 왕자웨이의 희망은 과연 제자리를 찾은 것일까?


③ ①+② : '희망의 알레고리'를 찾기 위하여




왕자웨이가 중경이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구조적인 어떤 공간이 아니라 시각적이고 심리적인, 한마디로 감각적인 것이다. 중경의 이미지

② 왕자웨이가 말하는 중경이라는 도시의 이미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중경은 매우 여러 가지의 문화가 섞여 있고, 각종 국적을 지닌 수많은 삶들이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다. 이 도시는 내게 바로 미시적인 세계였고, 도시의 '메타포'로서 아주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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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번째 이야기를 더욱 인상깊게 간직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아마도 그건 두번째 이야기가 일탈을 꿈꾸는, 그리하여 의사소통의 부재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중경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에 더욱 어울리는 영화속 이야기는 사실 첫번째 이야기다. 왕자웨이는 앞에서 인용한 적이 있는 『까이예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사서독』은 내가『아비정전』에서 막연하게 본 것에 대한 일종의 결과물이었다. 주인공들은 고독의 실연에 처해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만족하지 못한 채 이러저러한 형태의 만족을 추구한다. 그런데『중경삼림』은 단절을 보여 준다. 그로 인해 인물들은 그들의 고독을 인정하게 되어 더욱 자립적이고 독립적이 된다. 그들은 그들의 탐색 과정에서 절망의 모습이 아닌 유희의 한 형태를 본다"


왕자웨이의 전작들, 『열혈남아』나 『아비정전』은 부유하는 도시의 인물들, 고독, 절망, 실패가 예정된 사랑 따위-『아비정전』의 장만옥, 유가령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라-를 어둡고 창백한 색조로 담았었다. 『중경삼림』의 주인공들 역시 도시의 허공에 부유하는, 외롭고 고독하며 여기서의 사랑도 헛된 기다림 속에서만 들어 있다.

그러나 왕자웨이 감독의 말처럼 적어도 이 영화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고독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는 여전히 고독할 것이며 어떤 이는 사랑을 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란 것도 결국은 헤어짐을 전제로 하는 것(?)일 바엔 어느 누가 그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중경이라는 도시, 그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의) 이미지는 첫번째 이야기에서 더욱 절실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두번째 이야기는 하나의 메타담론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서로 다른 '캘리포니아'(≒홍콩의 미래?)를 찾아 헤어졌던 두 남녀는 한 사람은 패스트푸드점을 인수하여, 또 한 사람은 스튜어디스가 되어 다시 만난다. 그들은 더이상 도시를 떠도는, 노마드적 유랑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각자의 정착지를 찾은 셈이다. 한 사람은 영원히 붙박이로, 한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반노마드적 정착민으로. 이것이 1997년이라는 악몽(?)에 시달리는, 그래서 모두들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홍콩에 남겠다는 왕자웨이의 선언인지 또다른 탈주의 모색을 위한 희망의 알레고리인지는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러나 『중경삼림』을 모두가 이렇게 심각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영화의 재미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너무나 감각적인 영화라는 데 있다. 실연한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 『중경삼림』은 보고 나면 미소가 흐르는 만족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다. 그 만족은 언젠가 한번쯤 꼭 만날 것 같은, 사랑에 대한 '작은 희망'의 모습일 수도 있고, 삭막한 도시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에 대한 '작은 위안'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오늘, 내가 스쳐지나갔던 사람은 누구일까!



written date:1996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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