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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ovie

『열혈남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내오랜꿈 2008.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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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웨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열혈남아』. 그는 이 첫번째 영화로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표면적으로는 홍콩 상업영화에서 강요된 규칙에 순응하면서 왕자웨이는 오우삼이 내놓은 마피아적인 영웅과는 정반대의 영웅을 뛰어나게 제시한다. 그의 주인공은 부드러운 티셔츠를 입은 난폭하고 성적인 건달로, 당치않은 사랑 그것 때문에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영웅'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고독한 영웅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열혈남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수십 대의 비디오 브라운관과 명멸하는 네온으로 홍콩이라는 도시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드러내며 무표정하게 영화는 시작된다. 여기에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뒷골목의 '쓰레기 인생' 소화(유덕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주위 사람들, 곧 앞뒤 못가리는 고향 후배이자 부하인 창파(장학우), 도회를 견디지 못하는 시골 여인 아화(장만옥), 허세와 비열함이 주무기인 깡패 두목 토니(만자량). 이들 모두 어딘가 모자라고 삐거덕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거칠고 음습한 도시의 뒷골목 그리고 황량한 홍콩 변두리를 넘나들며 카메라는 이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좌절과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영화의 도입부를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거나 인물들의 캐릭터와 시각적 분위기를 마틴 스콜세지의『비열한 거리』를 그대로 패러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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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잠자고 있는 소화에게 숙모가 전화를 거는 장면, 아화를 소화의 방에 머물도록 부탁하는 장면, 아화가 소화의 방에 찾아오는 장면, 소화의 방에서 잠자고 있는 소화를 대신해 아화가 창파의 전화를 받는 장면, 소화와 아화가 식사하는 장면 등 초반 도입부는 『천국보다 낯선』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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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카메라는 시종일관 소화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언제나 사고만 치고 다니는 창파의 일을 수습하면서 아화에게 싹트는 사랑의 감정을 대비시키는 것으로 영화의 흐름은 골격을 잡아가게 된다. 비록 깡패라는 쓰레기 인생이지만 그 세계의 '합리적인' 법칙―인정사정 없이 비열해야 하고,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해야 하는―을 거부하기에 언제나 궁핍하다. 창파의 동생 결혼식 피로연도 제대로 못해줄 만큼. 이 '합리성'에 대한 거부는 언제나 '합리적인' 또다른 깡패두목 토니와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이 와중에서 아화를 향한 고통스런 사랑은 시작된다. 하지만 기다림에 지친 아화에게는 다른 남자가 있다. 부둣가에서 너무나 힘들게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놓여져 있는 거리를 보게 된다. 그게 영원한 헤어짐이 될 수도 있는 순간, 두 사람은 기약없는 내일에 희망을 걸며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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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소화가 아화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부터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여는 장면 사이에는 두 사람의 재회와 그것의 운명을 말하는 듯한 주제곡 "稱是我胸口泳遠的痛"―당신은 내 마음의 영원한 아픔이 애잔하게 흐른다.

"바람부는 밤거리에 나홀로 서서 외로이 바람과 구름에 귀기울인다. 내일 일은 염려 말자. 과거는 잊자. 사랑은 영원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고통! 남풍이 북쪽의 구름을 밀어내듯 정열은 내 가슴을 불 붙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고통! 어제의 꿈일 뿐. 차라리 내일에 희망을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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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살아온 아화가 소화에게 묻는다.

“왜 이제야 오셨어요. 하루만 늦게 왔어도 그 남자(의사)와 결혼했을 거예요.”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난 아무 것도 약속해줄 수 없어.”

짧은 시간이지만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 합리적이지 못한 소화를 합리적인 세계가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만무하다. 토니에게 잡혀 죽어가는 창파를 구해내기 위해 아화를 떠나온다. 그리고 그가 부닥쳐야 할 운명, 곧 이 (깡패)세계의 '합리성'에 길들여지길 강요받는다. 거부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무자비한 폭력. 그리고 허무한 종말…


이러한 비정함에 비추어볼 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소 의외스럽기까지 하다. 죽은 줄 알았던 유덕화는 반쯤 식물인간이 된 채 교도소에 들어와 있고, 면회 온 장만옥이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유덕화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보는 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뜻밖의 이 낙관적인 결말을 통해 왕가위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만약 주인공들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홍콩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한다면, 홍콩의 관객들은 유덕화의 살아남과 장만옥의 기다림에서 무엇을 읽을까? 영화의 중간에 삽입되는, 편지를 읽는 장만옥의 따뜻한 목소리가 그들의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까?

『열혈남아』가 개봉되자 홍콩의 평론가들과 영화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영화를 “홍콩 영화의 미래”라고 추켜세웠으며, 출연했던 배우마다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술회했다고 한다. 굳이 이런 평가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열혈남아』는 이때까지 우리에게 소개되었던 홍콩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거기에는 오우삼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도, 서극의 현란한 SFX도, 성룡의 유모어와 스턴트도, 주윤발의 카리스마도, 장국영의 솜사탕도 없다. 흥행요소를 겨우 찾는다면 유덕화의 존재 정도인데, 그나마 『지존무상』으로 유덕화의 주가가 치솟기 전에 개봉되었으니 대부분의 관객에게는 하등 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영화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열혈남아』에는 이러한 없음을 뛰어넘는 풍부함을 그 안에 감추고 있다.

왕자웨이위 감독은 영화 전체의 시각적 기조를 다큐멘터리에 근접하는 투박한 사실주의에 두고 있다. 형광등 불빛을 그대로 주조명으로 사용한 실내 장면은 인물들의 얼굴을 창백한 푸른 빛으로 채색하고, 완만한 리듬으로 끌고가던 카메라는 뜻하지 않았던 순간에 격렬하게 움직이며 간간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터뜨린다. 그것은 마치 짓밟히고 찢겨진 삶에 익숙해진 등장 인물의 내면에 잠재한 파괴성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그게 비록 절망의 끝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또한 다른 영화보다 월등 뛰어난 연기를 보이는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만자량의 앙상블 액팅, 홍콩의 중심가와 변두리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잡아낸 영상 그리고 냉정함 속에서도 서정을 잃지 않은 연출에 이 영화의 뛰어남이 있다.

그리고 “세기말의 도시에도 희망은 있다”고 속삭이는 듯한 감독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홍콩반환' 이후의 홍콩영화가 그리 쉽게 자신의 땅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예감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written date:1996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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