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농번기가 따로 없지만 옛날엔 곡우가 지나야 본격적인 농사철이라 그랬다. 남부지방이야 곡우 전에도 더러 씨앗을 파종하지만 지역에 따라 5월초까지도 서리가 내리곤 하는 중부내륙지방은 4월 하순은 되어야 씨앗을 파종할 수 있었던 것. '춘래불사춘'의 심경은 아니더라도 봄은 왔건만 제대로 된 농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이 즈음에 할 일이 있으니 바로 갖가지 봄나물을 갈무리하는 일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것들이다. 쑥, 취나물, 고사리를 비롯해 두릅, 엄나무, 옻나무의 햇순을 채취하는 일까지 4월의 시골살이는 산야를 헤매고 다니느라 바쁘다.
▲ 머위(왼쪽), 엄나무순(오른쪽) 된장 무침
▲ 우엉과 머위 쌈
▲ 엄나무순과 두릅나무순
▲ 돌나물
▲ 가시오갈피나무순
▲ 톳 두부 무침
바쁘게 돌아다닌 만큼 당연히 먹거리는 풍성해진다. 때마침 텃밭의 푸성귀가 동난 철이기에 봄채소가 상에 오를 때까지 자연에서 얻은 푸성귀로 대신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 우엉과 머위는 살짝 데쳐서 쌈으로 먹어도 되고 된장으로 무쳐 나물로 먹어도 좋다. 두릅과 엄나무, 가시오갈피 순은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고 돌나물은 생으로 먹는다. 톳은 데치면 초록색으로 변하는데 물기를 뺀 두부를 넣어 어간장으로 맛을 내면 톳·두부 무침이 된다. 여기에 텃밭에서 뽑아온 잎마늘을 더하면 다른 반찬이 더 필요없는 한 끼 식사다.
그래도 맨날 푸성귀만 먹느라 허전하다고 생각되면 전을 하나 부친다. 가시오갈피나무나 두릅나무, 엄나무 순을 계란물만 입혀 부쳐내면 막걸리 안주도 되고 푸성귀에 심심하던 입맛도 달래줄 수 있다. 때로는 엄나무 순이나 머위 같은 것들로 1년 먹을 장아찌를 담그기도 하지만 경험상 제철에 나는 것들은 그때그때 먹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장아찌 담궈 봐야 몇 번 먹지도 않고 남 주는 게 더 많기도 하고 생으로 먹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덜하기 때문이다. 해서 지금은 제철 푸성귀들을 부지런히 먹는 게 일이다.
자연은 늘 이렇게 현명하다. 농사일로 바쁘기 전에 자신이 준 선물을 챙겨가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챙길 수 있는 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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