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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편』의 신화적 이미지와 혁명에 대한 상상

by 내오랜꿈 2009.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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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편』의 신화적 이미지와 혁명에 대한 상상

1.19세기 헝가리 농민 혁명, 그리고 몇 갈래 흐름


1.1. 미끌로시 얀초(Miklos Jancso, 1921∼)의 후기 영화를 대표하고 거의 대부분의 평론가들로부터 대표작 평가를 받는 『붉은 시편』(1972, 깐느영화제 감독상)은 19세기 헝가리 농민혁명(1890)을 그리고 있지만 역사의 구체성은 발레와 같은 몸짓 속에 추상회화처럼 숨어 있다. 얀초 영화가 흔히 그러 하듯이 영웅적인 혁명투사를 보여주지도 않고 알기 쉬운 줄거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영화에서는 심지어 인물의 이름조차도 등장하기 않거나 큰 의미작용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인물은 이미지화되어 있고 이미지에 의한 애매한 의미작용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이 애매함이야말로, 얀초의 작가적 개성이고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상미학의 창조였고, 헝가리를 얀초의 나라라고 감히 부를 수 있게 했다.

영상기호학을 개척한 롤랑 바르뜨의 말을 빌자면 이 의미, 즉 영화적인 애매함이란 기호학적 규칙들로는 정의할 수 없는 '무딘 의미'(sens abtus)이다. 무딘 의미는 자연스럽게 포착되기를 거부하는 의미, 번역불가능한 의미, 그러기에 오히려 이미지가 주는 쾌락, 즉 미감을 경험할 수 있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이 무딘 의미를 탈코드적인 사유를 촉발한다. 물론 이 무딘 의미는 영상기호의 일반적 의미이지만 그것을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우리에게 경험케 하는 영화가 『붉은 시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붉은 이란 혁명적인 형용사를 쓴 '시편'이란 제목은 더없이 적절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얀초는 이전의 사회주의 미학이 추구했던 선명한 지시적 의미의 실천이라는 영화미학을 개신한 맑시스트 영화작가라 할 수 있다. 어느 대담에서 그가 말했던 "밝은 색채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전의 사회주의 미학이 지녔던 경직된 미학원리에 대한 반론이었던 셈이다. 1968년 헝가리 영화잡지 영화문화와 나눈 대담에서 루카치는 "입센이나 체홉이 소설로 그랬듯이 얀초는 영화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올바른 답을 전해줄 수 있는 뛰어난 감독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사회주의 영화미학을 개신한 얀초에 대한 당대 최고의 비평가가 바치는 헌사일 수 있다.    

1.2. 『붉은 시편』의 혁명을 채우는 몇 갈래의 선분들은 구체적 개인을 통해 도드라지지 않고 몇 개의 굵은 줄기로 흐르고 있다.(영웅주의의 배제) 따라서 이 영화에서 헝가리 농민혁명의 구체성과 이론을 읽어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실수. 중요한 것은 어느 시공에서나 있을 수 있는 혁명의 다양한 흐름들이 만나고 결절되고 풀려나가는 역동적인 흐름, 그 욕동들을 읽어 내는 일.(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것이 카메라와 인물들의 끊임없는 움직임, 이는 얀초영상의 핵심적 미학, 한시도 정지하지 않는다. 이는 집단의 연대감이나 집단 내부의 갈등을 표현하는 것, 그야말로 끊임없는 욕망의 다양한 흐름을 보여주려는 것.) 그러므로 이 영화가 인물들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은 사회주의와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이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포인트 : 몇 갈래의 흐름과 흐름들의 충돌과 연대.

1)농민의 흐름 - 헝가리 민속음악과 일체가 된 흐름, 혁명하는 흐름과 회개하는 흐름
2)지식인의 흐름 - 친농민적 흐름과 반농민적, 친교회적 흐름
3)군인의 흐름 - 총을 버리는 군인과 총을 쏘는 군인 사이
4)사제의 흐름 - 그리스 정교의 옛 사제와 새로운 사제 사이(변함없이 경직된 선분)


2. 이미지의 계열과 이미지의 충돌, 그 의미의 생성

2.1. 혁명의 장을 만들어 가는 여러 갈래의 흐름들은 서로 충돌하는데 영화에서 그것은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우선 혁명의 흐름과 반혁명의 흐름의 충돌, 이 흐름은 두 이미지의 충돌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군중들의 집단무와 같은 움직임으로 드러남. 원과 직선의 충돌.

영화에서 농민봉기의 혁명적 흐름은 항상 원무의 형태로 표현된다. 그것은 헝가리 민속음악의 선율 위에서 연대와 꼬뮨의 상징으로 역동한다. 상대적으로 반혁명의 흐름인 군인들은 직선의 형태로 표현된다. 군인들은 말을 타고 군중들의 주위를 돌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말타기는 원을 그리지 않고 두 지점 사이를 오가는 직선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경직된 흐름과 유연한 흐름을 표현한다. 유연한 흐름이 혁명의 흐름이고 모든 것을 감싸안고 흐르는 혁명과 꼬뮨의 흐름이라면 경직된 흐름은 그 흐름들을 곳곳에서 절단하는 흐름이고 절단하여 포획하는 흐름이다.

두 흐름의 충돌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영화의 종반부에 배치되어 있는 혁명의 가장 극적 지점이다. 마치 군인들이 양편에 도열한 가운데 운동회를 하듯이 농민들과 농민들에 동조한 군인 지식인 등의 흐름이 사각의 직선 안에서 원형으로 하나가 된다. 그 흐름에 도열한 직선들도 일시적으로 마치 그 에너지의 역동 속으로 빨려들 듯이 혁명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나 직선의 흐름은 이미 제복으로 상징되는 신체화된 직선이다. 일시적으로 합류한 흐름은 한 줄기 나팔소리에 일시에 직선으로 재생산되고 그들의 총알은 혁명을 향해 날아간다. 원의 풀어짐. 죽음.

2.2. 세 갈래의 색채, 세 갈래의 흐름 - 『붉은 시편』에 두드러진 이미지 중의 또다른 하나가 영화의 제목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색감의 흐름이다. 흰색과 검은 색, 그리고 붉은 색의 흐름. 영화는 이 세 갈래의 색감을 중심으로 이미지의 화음과 불협화음을 빚어낸다.

먼저 흰색은 전통적인 이미지대로 평화를 함축한다. 그것은 몇 개의 변주로 드러나는데 또다른 평화의 상징인 흰 비둘기, 흰 옷을 입은 여자들(특히, 이 세 여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등. 흰색은 사실 평화라는 관습화된 상징 그 이전에, 아무런 색도 없는 것. 무엇으로도 변이될 수 있는 무정형, 혹은 카오스의 색감. 그것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가고 싶은 욕망의 흐름과 관련이 되어 있다. 말하자면 끊임없이 분출하려고 하는 분자적인 흐름. 따라서 이 흐름은 붉은 색감을 결합되면서 혁명의 흐름이 되기도 하지만 다시 검은 색감에 포획되면서 몰적 흐름으로 전이되기도 한다.(진압군 앞에서 회개하는 농민들) 

다음은 검은색. 검은 색은 검은 색 계통의 제복, 군인들의 흐름을 상징한다. 경직된 선분, 몰적 흐름. 평화의 반대편에 있는 것. 검은 색은 모든 빛(색)을 흡수한 색감이다. 모든 것을 포획하려는 권력의 흐름, 혁명마저도 회유와 협박을 통해 재영토화하려는 흐름을 상징한다. 군인에게 총을 쥐여주고 그 총을 버리는 탈주의 흐름을 제거를 통해 재영토화하는 흐름. 영화의 화면은 전반적으로 낮장면을 보여주고 있으나 군인들이 등장하는 몇 장면에서는 어두운 밤의 색조로 처리된다. 이는 영화에서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검은색-밤-폭력의 내습을 부조해낸다.

마지막으로 붉은색의 흐름. 이것이 혁명의 흐름, 탈주의 선분을 말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붉은색은 셋으로 변주되는데 하나는 붉은 리본(띠), 피, 그리고 붉은 옷이다. 이 붉은색은 검은색에 맞서면서 흰색을 혁명의 대열로 이끌어내는 색감이다. 흰옷 위에 달린 붉은 리본! 붉은색은 흔히 피와 동일시되는데, 그것은 혁명의 은유인 셈인데, 영화에서는 총에 맞은 손에 흐르는 피가 붉은 리본으로 전이되는 환상적 장면을 통해 성취된다. 이 피야말로 혁명의 화환인 것, 얀초의 혁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낙관적 신뢰가 샘물처럼 솟아나는 부분.(얀초가 이 영화를 만들 즈음 국내 정치상황은 불안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도 있었지만, 낙관주의 자체를 폐기하지는 않았다.)

세 색감이 만나며 몇 개의 접점, 그 접변 - 1)최초에는 교회를 옹호하다 혁명의 흐름에 의해 변이되는 지식인으로 상징되는 인물의 회개와 붉은 리본이 달린 흰 옷으로 갈아입기, 2)반혁명적인 군인되기를 거부하다 사살된 인물의 흰옷으로 재생하기, 그리고 그의 혁명 실패 후 흐르는 피의 강물에 흰옷을 입을 채 무릎꿇고 입맞추기, 3)영화의 에필로그에 보이는 벗겨진, 혹은 나뒹구는 흰옷 위에 뿌려진 피, 그 위에 꽂힌 검은 총검의 상징, 4)어둠 속에서 총을 들고 일어서는 붉은 옷의 여인(←흰옷), 5)영화의 엔딩-검은 어둠을 배경으로 검은 총에 매달린 붉은 띠. 
  
2.3. 나체와 제복 - 의미의 추상성과 롱테이크(*에이젼슈쩨인은 쇼트와 쇼트를 충돌시키는 몽타쥬를 통해 변증법적인 영화미학을 창조했지만 얀초는 충돌시키기 보다는 쇼트들을 서로 문질러 혼돈을 만들어냄으로써 변증법을 무화시키고 변증법의 자리에 직관적인 감성, 신체에 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감각을 창조)가 주는 감당할 수 없는 힘 때문에 지루한 영화에서 우리의 시선을 어지럽히는 나체, 여성의 나신의 의미는 고민스러운 지점. 이것은 분석적 언어로는 다 잘라낼 수 없는 여러 가지 함의를 지닌 것인데 하나의 해석가능한 실마리는 세 여자가 옷을 벗었을 때 총을 버리고 그들을 향해 달려가던 군인들. 이는 분명 어떤 욕망의 흐름을 말하는 것인데 이 흐름이 제복으로 상징되는 군인들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포획해 들인 것이다. 이 장면은 이렇게 연결된다. 달려가는 군인들-에워싸는 군인들-도망치는 군인들-어깨를 끼고 나아가는 농민들. 그렇다면 그 사이에 배치된 나신이 의미하는 바는 비교적 분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나신은 제복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면서 모조리 포획해들일 수 없는 인간의 慾動을 상징한다. 이 나신은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제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를 하는 것이면서, 혁명적인 흐름 속에 있고 그 전면에 있고 그 외부에 있는 것이다.  

채찍과 총, 그리고 말탄 사람과 대지에 선 사람 - 혁명이 고조된 지점에서 농민들은 채찍을 가지고 말을 탄 병사들을 몰아간다. 채찍의 흐름에 총을 둔 군인들이 밀려난다. 여기서 군인들의 총의 반대편에서 총에 맞서는 채찍은 농민들의 힘이고 헝가리 전통문화의 힘일 수도 있다. 채찍을 든 사람은 대지에 발을 디디고 있고 총을 든 사람들은 대지를 짓누르는 말안장 위에 앉아 있다. 이 역시 영화 속의 혁명과 반혁명의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상징의 하나이다. 채찍과 총, 채찍은 총을 이길 수 없다. 혁명의 와중에 '경제원리'를 강조하던 지주는 죽지만 지주의 부인은 여전히 남아 혁명이 실패한 후 다시 등장하여 농민과 군대와 사제를 재영토화한다. 

2.5.음악 : 국가-민요(혁명가)의 대립, 공식적 음악과 비공식적 음악의 충돌.


3. 신화적 이미지의 내재성, 이미지의 시학

3.1. 『붉은 시편』의 '시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읽기의 코드가 하나있는데 그것은 세 여자, 나신으로 등장하는 세 여자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이 세 여자는 영화의 장면 여러 곳에 등장하는데 우선 하나는 앞에서 말한 바 있는 나신되기이다. 혁명을 잠재우기 위해 몰려온 군인들, 그들 사이에서 다섯 여자가 대열을 지으며 무용의 동작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을 바라보고선 군중-군인/농민들. 그들 앞에서 양편의 두 여자의 시중을 받는 듯한 몸짓으로 가운데 세 여자는 누드가 된다. 또다른 장면은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려운 부분인데 혁명의 전야와도 같은 축제 속에서 나신의 세 여자가 마을 앞에 난 대로를 향해 달려나가고 군중이 그녀들을 둘러싸고 군무를 춘다. 그 장면이 흐린 장면으로 원경을 이루면서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은 또다른 원무이다. 농민의 원무는 함께 원무를 추던 어떤 여자들 셋을 다시 큰 목욕통 속으로 넣은 후 다시 제의적 원무(일종의 혁명의 정결의식 같은 것)를 벌이는데 이 세 여자들은 뜻밖에도 나신으로 대로를 달려 나갔던 그 여자들과 동일인물들이다. 원경과 근경의 裸女들의 동일성! 이 은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나녀들은 누구인가?

『붉은 시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희생』이니 『솔라리스』를 비롯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기독교적인 이미지들이다. 십자가 위에 올라가 있는 비둘기의 이미지가 그렇고 손바닥을 쏘는 총과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는 삽자가의 예수상적인 이미지가 그렇다. 이런 흐름 위에서 세 여자의 이미지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상당히 샤마니즘적인 요소가 있지만 세 여자는 동정녀라는 신화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키스를 통해 총에 맞은 군인을 살리는 장면이 그렇고 목욕통 속에서 농민들이 세 여자를 세례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리고 특히나 원경과 근경에서 동일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세 여자의 모습은 달리 읽어낼 도리가 없다.(어디에나 내재하는 신의 현존) 세 여자는 기독교의 삼위신, 십자가 위의 세 죄인과도 의미상 연결되는 세 女神이다. 혁명을 이끄는 여신이고 혁명과 함께 하다가 혁명과 함께 쓰러지는 여신들, 농민의 혁명적 흐름 속에 내재한 희망의 에너지같은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 原여신들은 교회와 사제로 상징되는 권력에 포획된 사제와 보편종교(권력의 담론으로 전이된 종교) 이전에 존재하는 종교의 흐름, 카오스적이고 샤마니즘적인 흐름이다. 영화에서 드러나듯이 사제는 권력의 편에서 빵 때문에 죄짓는 이들이 있다고 혁명을 비난하고 추기경이라는 권력의 경직된 독사의 선분을 내세워 "대중운동은 위험합니다"라고 앵무새처럼 주기도문을 외운다. 물론 이 사제의 흐름은 농민들에 의해 불로 심판되지만 새로 부임한 사제는 다시 성수를 뿌리며 권력과 지주의 동반자가 되어 권력의 재영토화의 이데올로기적 기구가 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른 바 원종교는 어느 경우나 탈주의 흐름이지만 그 원종교는 사제와 교회라는 정착적 선분 속에서 즉시 권력에 포획되고 권력의 선교사가 된다. 이것이 종교의 아이러니이다. 아이러니가 생산하는 비극적 지점이다. 그러므로 세 여신은 사제의 욕망이 포획하지 못한 아니 오히려 혁명적 흐름이 자기화한, 아니 원 흐름으로 끌어낸, 사제가 왜곡한 福地를 복원한 유토피아이고 혁명 이전에도 혁명의 내부에도 혁명 이후에도 항상-이미 존재하고 있던 에너지이다. 따라서 이 흐름 속에서는 "주님의 왕국이 사회주의 세상이 될 수" 있다. 현실에서 주님의 왕국은 사회주의 혁명과 배치되지만. 대지의 열매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 

3.2. 여기에서 우리는 저 농민혁명을 가능케했던 힘에 대해,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혁명의 에너지에 대해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혁명의 힘은 언제나 외부에 있다. 그러나 그 외부는 안에 있는 바깥이다. 안에서 바깥을 사유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 안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보충물로서의 바깥. 이 양가적 개념을 통해 서양 형이상학의 이분법적 사유를 극복하려고 한 인물이 데리다이고 들뢰즈이지만, 선불교식으로 김시습식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자면 이 바깥은 正位에도 있지 아니하고 偏位에도 있지 아니하고 정위와 편위 사이에서 끊임없이 운동하며 출렁거리는 無位의 에너지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신체화한 것이 무위인이라는 혁명적 주체, 노마드적 주체(내부에 여신을 품고 사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혁명적 에너지는 거기서 흘러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세 여신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를 느낀다. 세 여신은 그것이 신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의 외부에 있는 것이지만 여신은 항상-이미 농민들의 내부에서 그들을 혁명으로 선도하고 그들과 먹고 마시고 춤을 추고, 심지어는 그들과 함께 죽는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내부에 있는 존재이다. 세 여신이 없이 혁명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 여신은 혁명을 동기이고 필수적 구성요소. "우린 승리하리라."라는 혁명의 노래는 그들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외부인 여신들이 부르는 노래에 다름 아니다. (*참고:이는 홍길동전의 저 율도국 역시 마찬가지. 세 여신과 율도국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홍길동을 이끌었던 힘은 율도국에 있었다. 율도국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율도국이 홍길동을 항상-이미 견인하지 않았다면 홍길동의 탈주선은 불가능했을 것. 포획으로부터 벗어나는 힘은 외부로부터 온 것인데 그 외부란 이미-항상 현실에 끊임없이 관여하고 현실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재하는 외부. 홍길동은 무위인!)

우리에겐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낡은 질문이 있다.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신화의 의미작용이란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것을 강제적으로 명시하며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도록 돕는 동시에 우리에게 그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힘과 같은 것이다. 바르트는 이 신화적 의미작용의 문제에 대해 프랑스 삼색기에 거수경례를 올리는 흑인 프랑스군인의 사진을 신화적 이미지로 제시한 바 있다. 이는 물론 신화의 의미작용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즉 제국주의 적인 의미작용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신화는 논증없는 의미의 직감적 강요를 통해 그 힘을 긍정적인 지점으로 돌려 놓기도 한다. 붉은 시편이 보여주는 세 여신의 이미지에 담긴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는지. 혁명을 이끄는 유토피아, 신화(성)! 

얀초는 지극히 추상적인 이미지의 시학을 보여주는 『붉은 시편』을 통해 바로 이 지점을 노렸던 것. 이 추상적인 것, 신화적인 이미지야말로 혁명의 무한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 명시적이지 않은 것, 그는 우리의 사유와 의식을 촉구하지 않고 저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감각을 직접적으로 난타하여 우리의 무의식에 어떤 주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신체화된 이미지야말로 한순간 혁명적 흐름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왜 영화의 제목은 『붉은 '시편'』인가?


4.『붉은 시편』의 붉은 시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사제복을 입은 '코믹한' 군인의 회개제의를 통해, 그리고는 새로운 사제를 통해 붉은 시편의 붉은 시는 지워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영화적 시간의 역전(전체적으로 시간이 겹쳐지고 생사가 혼재되어 있지만)이 있는데 그것은, 이 붉은 시 지우기는 물리적 시간으로는 혁명 이후에 있는 것이지만 영화적 시간에서는 실패한 혁명의 나뒹구는 시체 앞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적 시간의 역전을 위해 얀초는 죽은 혁명농민들을 흰옷을 입혀 살려내어, 그리고 마치 뒤로 돌리는 영사기처럼 뒷걸음칠치는 동작으로 통해 빚어낸다. 이 역전을 통해 실패의 비극은 혁명의 역동성과 낙관으로 전환된다. 엔딩의 붉은 띠를 달고 들려진 총은 낙관의 힘을 상징한다. 죽은 여인은 붉은 옷을 입고 부활해 다시 혁명의 총을 쏜다. 다시 탈주를 감행한다. 비평가들이 얀초의 후기 영화를 두고 낙관적 기조를 운위하는 것도 이런 점을 두고 말한 것은 아닐런지.

얀초는 이상적인 혁명의 가능성을 믿는 맑시스트였다. 『붉은 시편』의 침묵의 언어 속에 가끔씩 낙엽 위에 부신 햇살처럼 드러나는 대사들은 좋은 사례 : "노인이 길을 가다 씨를 주워 심는다면 그 열매를 따는 것은 노인이 아닐 것이다. 그 후손이 열매는 딸 것이다. 우리는 후손을 위해 그 열매를 심는 것이다." 얀초는, 88올림픽을 기념하는 문화행사의 하나로 기획된 KBS 드라마를 찍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는 어느 영화과 대학생들과 가진 비공개 대화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지난 시기 우리 선배들은 현실에 지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고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참을성있게 웃으며 혁명하자." 붉은 시편이 보여주는 혁명의 낙관성, 긍정의 철학을 담은 말이다. 우리에게는 의미심장한.

여기서 다시, 배신자를 칼로 찌르고 군인의 총에 스러진, 저 음유시인의 노래를 들어보자.

"진정한 종말이 올 때까지 계속 가리라. 바위는 강하고 버터는 부드럽지. 그러나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완전히 끝날 때까지, 바위는 강하고 버터는 부드럽지 ……."


* 수유연구실 강좌 : <필로시네마 : 영화로 탈주하기 2. 6강> 1999년 11월 12일, 강사 : 조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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