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보고 듣는 것들/Music

RATM - 이단아들의 노골적 선동

by 내오랜꿈 2009. 9. 12.
728x90
반응형



이단아들의 노골적 선동 

 

서태지.

그의 이름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지형에서 가지는 의미와 그 한계는?

글쎄, 쉽게 논할 주제가 못 되지만 지난 번 서태지 컴백공연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서태지”와 “오빠”를 연호하는 객석 풍경과 하드코어 계열의 강렬한 사운드가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그 어색함이라니...

낯설기로 따지자면 이보다 앞선 2000년 6월, 첫 내한 공연을 가졌던 하드코어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r The Machine:RATM)의 무대도 만만치 않았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붉은 별, 뒤집혀진 성조기, 3집 이름 『더 배틀 오브 로스앤젤레스(The Battle of LosAngeles)』에서 따온 '더 배틀 오브 서울' 등 밴드의 좌파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무대 장식과, 그 아래에서 너무나 자연스레 헤드뱅잉을 하며 하드코어 음악에 흠뻑 취한 젊은이들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하기사 80년대 중반에 대학생활을 한 나에게 "노찾사"와 "꽃다지"의 노래들은 최루탄 맞아가며 눈물로 부르던 노래인데 지금은 노래방에 앉아 솜씨 자랑하는 곡목 가운데 하나로 되어 있으니 이 정도에 새삼스레 놀랄 일도 아니지만...

서태지 컴백의 영향인지 어쨌는지 1년 여가 흐른 지금, 언제 그랬냐는 듯 홍대앞 등 서울의 록카페를 지배하던 테크노는 그 자취를 감추고 대신 하드코어의 세상이 됐다고 한다.

국내에서 이러한 하드코어의 대중화에 서태지가 결정적인 구실을 하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하드코어의 진면목을 보여준 건 단연 "RATM"이다.  자본가의 착취와, 경찰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메시지 때문만이 아니라, 펑크와 메탈 등의 록 사운드에 갱스터랩과 같은 힙합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는 '노골적인(하드코어)' 음악은 선구적이었다.  국내 락 밴드들은 물론 힙합 성향의 가수들 다수가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이들을 우상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사실 현존하는 락밴드 가운데 RATM은 가장 급진적이며 전복적인 밴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무기로 자신들의 사상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RATM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반대로 이들을 증오하는(?) 세력도 만만찮다.  RATM이 공공연하게 적으로 규정한 자본가들과 공권력을 남발하는 제도권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의 앨범에 'parental advisory'(부모의 조언 요망, 곧 미성년자에게 판매할 수 없는 음반이란 뜻이다) 딱지를 붙이고 싶어 안달하는 음반검열조직(공식적인 조직은 아니고 우리 나라로 치면 가칭 '청소년 타락방지를 위한 전국 애국 학부모회' 같은, 미국의 사이비 조직이다), 낙태반대주의자들, 기독교 세력 등은 RATM의 음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8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남부럽지 않은 부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한 이들이 소외계층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며 이들이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을 불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RATM은 자신들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들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사실 그들은 자비를 들여 데모테잎을 만들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신들의 행동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해 왔다고 할 수 있다.  Mumia Abu-Jamal의 석방을 촉구하는 게릴라성 거리공연을 비롯해 온갖 사회운동의 현장마다 팔을 걷어부치고 쫓아다니며 자신들의 명성과 특권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하는 것 역시 하나의 이용전략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인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보기에 RATM 만큼 팍스아메리카나 체제와 문화적 제국주의, 정부의 억압에 항거하는 좌익적 외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까지 묘사되는 1990년대에 들어와 가장 솔직하고 설득력 있는 선언을 Punk, Hip Hop, Thrash를 혼합한 특출한 사운드로 자신들의 색깔을 표출하고 있는 밴드인 것이다.

이런 그들이 밴드 결성 9년째(2000년)에 접어들어 발표한 새 앨범 『레니게이드즈(Renegades:이단아들)』는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작업이자 이들 음악의 기원을 보여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앨범 이름이 뜻하듯이 이들이 생각하기에 주류 팝뮤직계에서 '이단아들'이라고 생각되는 뮤지션들의 곡들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편곡한 것으로 록과 힙합의 '클래식'을 완전히 자기들의 색깔로 바꾼 리메이크 음반이다. 

처음, 라이브 앨범에 보너스로 싣을 2곡을 녹음하러 평소의 애창곡을 준비해 스튜디오에 들어갔으나 이들은 의외로 이 작업에 흥미를 느껴 총 12곡을 녹음해 먼저 이 앨범을 내놓게 됐다.  12곡 가운데 10곡은 아예 자신들이 만든 음악처럼 리메이크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힙합과 락 음악을 하드코어 스타일의 음악으로 재해석해 낸 점이 색다르다.  원곡과는 다른 RATM만의 해석을 내려 마치 신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기 팝"의 「다운 온 더 스트리트」와 "마이너 스레트"의 「인 마이 아이즈」 두 곡 정도가 원곡의 느낌을 유지한다.  이렇듯 음반에 실린 원곡과 그 주인들은 "RATM"의 기호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록에서는 노동계급을 약탈하는 자들에 맞서 싸우는 이를 상징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더 고스트 오브 톰 조드」, 자유무역의 허위를 거부하는 "밥 딜런"의 「매기즈 파암」, 그리고 혁명적인 60년대 말에 나온 "롤링 스톤즈"의 「스트리트 파이팅 맨」을, 힙합에서는 가장 직설적인 랩을 구사하는 갱스터랩 그룹 "EPMD"와 "사이프레스 힐" 등의 노래를 볼 수 있다. 

예전의 앨범 재킷에 비해 이번 재킷의 겉모습은 다소 평범해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분명한 주장이 담겨 있다. 

“나는 돈 위에 메시지를 쓴다”

는 문구로 시작하더니 마지막 쪽에 1달러 지폐에 붉은 글씨로 

“당신은 노예가 아니다”

라고 적고 있다. 


01. Microphone Fiend by Eric B & Rakim 

02. Pistol Grip Pump by Volume 10 
03. Kick Out the Jams by MC 5 
04. Renegades of Funk by Afrika Bambaataa 
05. Beautiful World by Devo 
06. I'm Housin' by EPMD 
07. In My Eyes by Minor Threat 
08. How I Could Just Kill a Man by Cypress Hill 
09. The Ghost of Tom Joad by Bruce Springsteen 
10. Down on the Street by The Stooges 
11. Street Fighting Man by Rolling Stones 
12. Maggie's Farm by Bob Dylan 



written date:2002/09/12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