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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usic

김광석 - 다시 부르기 2

by 내오랜꿈 200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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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서른 즈음에 & 거리에서



김광석. 

나는 김광석을 그의 생전에 예닐곱 번은 본 거 같다. 이건 순전히 '어떤 여자'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여자, 완전히 김광석 '매니아'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전교조" 일한다는 핑계로 나하고의 약속은 툭하면 펑크내거나 한두 시간 기다리게 만드는 건 '기본'이었는데, 김광석 공연 보러가기로 한 날은 한번도 시간 약속 어긴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나보다 김광석이 훨씬 더 중요했었던 거 같다. 뭐, 그랬으니 난 지금 다른 여자와 살고 있겠지만.

주로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걸 관객으로 앉아서 지켜봤지만, 한번은 웃기지도 않게 내 뒤에 줄을 서 있는 어떤 여자에게 말을 거는 그를 코 앞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이거 무슨 줄이에요?"

아마 무슨 줄인지 알았으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만, 순간 주변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던 거 같다. 그 줄은 바로 그의 공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었던 것. 일찍 들어가 앞자리에 앉으려는 열성팬들의 줄....

그게 아마 그가 죽기 3개월전 쯤이었던 것 같다.

4집. 「서른 즈음에」가 들어있는 그 앨범이 발표된 게 94년이었다.

그해, 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다.

내 '거친' 20대를 마감하며, 숱한 고민과 번민을 하던 시기. 맑스, 레닌, 알뛰세를 잠시 접어두고 스피노자, 니체, 프로이트, 푸코, 들뢰즈를 섭렵하던 시기. 영화와 음악에 몰입하여 일주일에 수십 편의 영화를 섭렵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주변 상황과 맞물려 이전부터 즐겨 듣던 『다시부르기 1집』과 4집, 그리고 얼마 뒤에 나온 『다시부르기 2집』을 한동안 끼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한없이 나를 움츠려들게 만들었었다.

음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김광석의 노랫말 하나하나는 내 젊은 날에 대한 '은유'로 다가와 사람을 멍하게 만들곤 했던 것이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너무 아픈 사랑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왜 이러지?"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음반을 틀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애써 다른 음반을 찾곤 했었다. 아마도 내가 안치환 4집 『내가 만일』을 좋아하게 된 것도 김광석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잔잔하게 움츠려들게 만드는 김광석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안치환 4집이 약간 늦게 나왔을 것이다-안치환의 그 록커 같은 힘찬 보컬을 의식적으로라도 더 즐겨 들을려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하여튼 나에게 김광석은 멀리하려 해도 자꾸만 다가오는 그런 존재였던 거 같다. 그나마 최근에 들어와서야 그의 그늘에서 어느 정도 자신있게 벗어난 거 같아 다행스럽다면 다행이라고나 할까....

*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 *

그대, 무엇을 꿈꾸었기에 어느 하늘을 그리워했기에 
아직 다 부르지 못한 노래 남겨 두고 홀로 먼길을 떠나는가.
다시 날이 밝고 모든 것들이 깨어나는데 
그대는 지금 어느 구석진 자리에 쓸쓸히 서서 무얼 바라보고 있는가. 
고운 희망의 별이었는데 아, 형편없이 망가진 인간의 세상에서 
그대의 노래는 깜깜어둠 속에 길을 내는 그런 희망의 별이었는데
그댄 말없이 길을 나서고 
우린 여기 추운 땅에 남아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도대체, 무얼 노래해야 하는 거냐!

알 것 같아....
그대 말하고 싶었던 게 무언지,
그대 온 몸으로 노래하던 그 까닭을,
쉬지 않고 달려온 그 청춘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들려, 들릴 거야.
그대의 기타소리,
대숲의 바람처럼 몸을 돌아나오던 그 하모니카 소리.
우리, 
고단한 삶에 지쳐 비틀거릴 때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소용돌이칠 그대의 노래.

우리들 팍팍한 마음속에 뜨겁게 울려날 그대의 목소리.
....

그대는 그렇게 우리들 탁한 삶의 한켠에 
해맑은 아침으로 따뜻한 햇볕으로 남아 있을 테지.
다시 겨울이 오고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
 
백창우 글 - 김광석 추모앨범 『가객』에서 - 

written date:2002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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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 다시 부르기 2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www.gaseum.co.kr) 
출처 : <웹진 가슴> 2007년 11월 22일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1995/ 킹레코드)
★★★★★ 




Track List : 
1.  바람과 나 
2.  그녀가 처음 울던 날 
3.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4.  잊혀지는 것 
5.  불행아 
6.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7.  내 사람이여 
8.  변해가네 
9.  새장속의 친구 
10.  나의 노래 
11.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25위 
(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연재할 예정이고, 32명의 필자가 참여합니다. 
*별점은 해당 필자의 의견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률적으로 매긴 평점입니다.) 


음악사적으로 보면, 1968년 한대수 이래의 ‘모던포크’는 장르로서의 중요성보다는 ‘음악창작에 대한 인식’과 ‘메시지 표현 양식’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즉, 대중음악에서 아티스트의 탄생을 의미하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인텔리들이 대중음악 영역에 정식으로 들어옴으로써 대중음악을 단순한 ‘딴따라판’ 이상으로 자리매김 시켰으며, 70년대 초반 청년문화의 중심으로 대중음악을 편입시켰다. 60년대 영미권의 록과 포크를 들었던 당시 대학생들에게 모던포크는 낯설지 않은 음악형태였을 뿐만 아니라 자의식 강한 그들이 한국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날릴 수 있는 매개체로써도 적당했다. 왜냐하면 선동적인 록과 달리 포크는 기본적으로 ‘메시지’의 음악이었고, 그래서 음악창작은 필수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박정희정권의 청년문화 탄압에 따라 모던포크는 기운을 잃어갔고, 한대수, 김민기를 비롯한 중요한 창작자들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면서부터 더 이상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그 마지막은 한대수가 2집 [고무신]을 발표했던 1975년 무렵이다. 

이후 모던포크의 계보는 오히려 대중음악씬이 아니라 70년대 말의 ‘메아리’와 같은 대학 내의 노래동아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메아리가 단순히 실연 중심의 노래패가 아니라 ‘창작자 집단’이란 정체성을 확고히 한데 비해서 이후로는 그런 정체성을 가진 곳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던포크가 대학 내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무신] 이후 모던포크의 계보는 민중음악 진영 내의 메아리-노래를 찾는 사람들/새벽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고, 예외적으로 활동한 인물이 정태춘, 조동진, 김두수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에 들어 ‘모던포크’의 적자임을 자부한 이가 김광석이고, 그 핵심적인 작품이 바로 김광석 4집(1994)과 함께 [다시 부르기 2]였다. 

김광석은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1988년 동물원 1집을 정식 데뷔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동물원 2집까지 참여를 하고, 1989년 솔로 데뷔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찾은 것은 <나의 노래>가 담긴 1992년 3집부터이고, 베스트앨범 형식으로 발표한 [다시 부르기 1](1993)부터는 작품성과 상업성 둘 다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 부르기 1]을 동물원과 자신의 앨범에서 뽑아낸 노래들과 한 때 활동하던 민중음악진영에서 김현성, 한동헌, 문대현의 노래들로 구성하면서 ‘자전적인 베스트앨범’으로 만들었던 반면에 [다시 부르기 2]는 자신이 스스로 선정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곡 모음집’이다. 그리고 모던포크를 떠나서 그가 선정한 중요한 음악창작자들에 대한 트리뷰트앨범이었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의철의 <불행아>와 같은 초기 모던포크 뮤지션들의 노래들이 담겼고, 백창우의 <내 사람이여>, 한동헌의 <나의 노래>와 같은 민중음악 선배들의 노래들이 있고, 김창기의 <잊혀지는 것><변해가네>, 유준열의 <새장속의 친구>와 같은 당대 주목할만한 창작자들의 노래들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앨범의 대미는 자신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로 끝맺는다.

대부분의 세션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동익밴드가 맡아서 90년대 국내 세션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편곡자 조동익은 원곡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노래들을 참신한 김광석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리메이크 앨범으로서는 드물게 대다수 수록곡이 원곡을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했고, 이는 자신의 노래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노래와 삶, 기쁨과 슬픔 그리고 자유와 외로움이 진득하게 녹아든 이 음반은 실질적으로 그의 유작이라서 더욱 애틋하다. 

바이오그라피


밴드멤버

세션 : 김광석(v, har), 조동익(b), 함춘호(g), 박용준(key), 김영석(d) 

디스코그라피 


1집 (1989/서울음반) 
2집 (1991/문화레코드) 
3집 (1992/서울음반) 
다시 부르기 1 (1993/킹레코드) 
4집 (1994/킹레코드) 
[다시 부르기 2] (1995/킹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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