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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지은 자는 죽여도 되는가?" 비오는 일요일, 혼자서 차를 몰아 여수로 오는 길은 힘겹기 그지 없었다. 전날 부산 친구들 모임 때문에 해운대 모처에서 마신 술들이 자신들의 생명이 다해감을 시기하는 듯 내 머리를 쪼아댔기 때문이다. 한국콘도 옆에 있던 흐름한 <할매대구탕집>이 달맞이길 중간쯤의 신식건물로 옮겨 <시원한 대구탕집>이란 상호로 확장개업한 터라 줄서지 않고서도 대구탕 한 그릇을 먹은 덕분에 그마나 속은 조금 편안했던 게 그나마 오전 일찍 여수로 출발할 수 있었던 힘이 됐다. 한시도 빈틈을 주지 않는 빗속을 달려 도착한 여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비디오를 빌리기로 했다. TV를 켜봐야 온통 올림픽 중계하느라 야단일 것이고, 나 같이 스포츠가 국력인듯 설쳐대는 꼬라지를 못보는 입장에서는 차라리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테니 말이다. <데이비드 게일>, <도그빌>, <몬스터>, <킬빌II>. 이렇게 4편의 영화를 선택했다. 유감스럽게도 <도그빌>은 3시간짜리 영화라 상/하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 같이 머리 아픈 상태에서 보기에는 만만치 않은 영화들인데, 특히 <도그빌>은 라스폰트리에라는 이름을 실감케 하는 영화다. 오늘 잠깐 언급하고픈 건 <데이비드 게일 >이다. 알란 파커라는 명성을 믿었기에 봐야지, 봐야지 하며 미루었던 게 벌써 1년이 지나버렸다. '사형제도 폐지'라는 주제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간, 아주 단순한 구조의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알란 파커는 스스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영화로서, 신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해서 주연배우도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케빈 스페이시와 케이트 윈슬렛을 썼다고 한다. 영화도 신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아니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 도박을 하는 내용이 기본 줄거리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메시지는 나에게 그리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강렬함은 <데드맨 워킹>에 못 미치고, 정치적으로도 어딘가 어슬픈 구석이 많다. 사형제도 반대라는 의미는 인간의 목숨을 죄의 유무를 논거로 '살해'하는 것에 대한 포괄적 반대일 텐데, 죄를 짓지 않은 무고한 목숨이 사형제도 때문에 희생될 수도 있다는 낮은 차원으로 접근하려고 한 시도 자체가 문제인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면 영화 안에서 데이비드 게일과 주지사가 논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듯 명백한 죄를 지은 범죄자는 사형에 처해도 괜찮다는 반대편의 논거 역시 충분히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제대로 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영화라면(감독 스스로 그렇게 주장했기에 하는 말이다) "죄 지은 자는 사형에 처해도 좋은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영화의 스토리가 이러한 주장 속에서 '배치된' 하나의 소주제였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 무고한 희생의 가능성이라는 점 또한 보다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는 문제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 이것이 이 영화에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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