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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바둑의 페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알파고

by 내오랜꿈 2016.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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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에 대해서 우리가 놀라야 할 것은 (인간을 이기는) 인공지능의 뛰어남이 아니라 지금까지 불변이라고 믿어왔던, 인간이 가지고 있던 바둑에 대한 가치체계를 새로이 점검해야 할 필요성을 던져주었다는 데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수는 안 돼!, 악수야!" 라고 생각해왔던 수들을 태연하게 두고 있는 알파고. 그런데 막상 진행되고 보면 판 전체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이상한 수, 악수가 아니라는 것. 사실 알파고에게는 그런 수, 지금까지 인간이 악수라고 여겼던 수조차 자기가 둘 수 있는 수많은 수 중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수를 고른 것이니까. 그리고 또 실제로 이겨 보였으니까. 이세돌과 알파고의 두 번째 대국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오후 2시 40분. 좌하 변화부터 흑이 망하는 수준이라고 해설자들이 떠들고 있지만 바둑은 결코 알파고가 완전히 불리하다고 할 수 없는 형태다. 알파고는 지금도 자기가 이기는 수순을 찾아 두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이세돌은 결코 알파고를 쉽게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해설자들은 이세돌 구단이 유리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는 있지만.


알파고는 바둑의 무한함을, 인간이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바둑 수의 무한함을, 도리어 인간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요즘의 프로기사들은 오청원 같은 기사를 자기들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으로 깔보면서 현대바둑의 업그레이를 강조하곤 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지 않으나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바둑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인간의 오만함을 알파고는 여지없이 부숴버리고 있다. 오늘 2국에서 보이는 알파고의 초반 수순은 마치, "이런 수 생각해 봤어?", 이런 느낌이다. 프로기사들이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바둑에 대한 사고를 새로이 정립해야 할 계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사람들은 알파고가 이겼다는 것에 대해 쓸데없는 비장미, 예컨대 인간 역사가 오늘 이전과 오늘 이후로 나뉜다거나 하는 되지도 않는 비장미를 드러낸다. 또한 이세돌이 실수해서 진 것이지 알파고가 잘 둬서 이긴 게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만의 독특한 '아집'이라고 할 수밖에. 이기고 지는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계기가 주어져도 자신의 사고를 확장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자기합리화에 급급하니까.


알파고는 우리들에게 바둑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굳은 관념, 사고방식을 고치라고 말하고 있다. 1국에서는 이길 수만 있다면 자그마한 실수, 손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보여 주었다면 2국에서는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바둑은 더 생각할 여지가 많은 게임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바둑에 대한 관념을 바꾸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저절로 연상되는 날이다.

(※ 이 글은 3월 10일 오후 2시 45분에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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