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모습/생각

알파고, 너무나 인간적인 인공지능?

by 내오랜꿈 2016. 3. 9.
728x90
반응형



아침에 운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라디오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온다. MBC <여성시대>를 진행하는 서경석 씨가 오프닝 멘트를 하면서 내 이름을 언급하고 있는 것. "뭐지?", 하며 귀 기울이니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 이야기다.


2월 말쯤이었나? <여성시대>의 고정 칼럼 비슷한 코너에서 알파고를 언급하며 인공지능이니 바둑전용프로그램이니 하며 이세돌 구단과의 바둑 대국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알파고를 일러 바둑전용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니'로 접속해서 "알파고는 바둑전용프로그램이 아니다. 범용프로그램이다. 범용프로그램이 '딥러닝'이라는 인공지능 학습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바둑을 배워서 두는 것이다"는 요지의 글을 남겼었다. 글 말미에 "진행자가 흘리듯 말하는 것도 아니고 칼럼성 글이라면 피디가 이 정도는 확인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다소 까칠한 멘트도 남겼었다. 그랬는데 피디 입장에서는 내가 남긴 글이 좀 아팠던지 오늘 <여성시대> 오프닝 멘트로 내가 남겼던 글을 인용하면서 오늘 있을 이세돌 구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남긴 글인데 실명을 거론하며 인용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좀 놀랬다. 어디 글 남길 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거나 어제 오늘 방송에서는 온통 알파고와 이세돌 구단의 바둑 대국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과연 이 정도로 바둑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만 국한한다면 내 기억에 1989년, 조훈현 구단이 섭위평 구단을 꺾고 잉창치배 초대 우승을 차지했을 때 한동안 방송가가 바둑 이야기로 들썩였던 적이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세계 전체로 보자면 단연코 알파고 이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왜들 이렇게 관심이 많아졌을까? 아마도 이 폭발적인 관심은 인공지능(AI) 때문이지 바둑 그 자체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이번 시합을 너무 쉽게 인간 대 기계의 싸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립을 다룬 영화, 예컨대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트』 시리즈처럼 인간과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인공지능이 활개 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염려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여기에는 사람들의 무지 혹은 착각이 개입돼 있다. 우리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다룬 영화 속에서 보는 인공지능의 모습은(『A.I.』의 '착한' 인공지능 데이비드도 마찬가지지만) 흔히 말하는 '강한 인공지능'이다. 어떤 문제 앞에 부닥쳤을 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강한 인공지능이냐 약한 인공지능이냐를 구분한다. 이 강한 인공지능, 곧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앞세워 인간과 대립하는 세계를 그린 영화들처럼, 마치 알파고가 강한 인공지능인 것처럼 생각하는 데서 오는 관심 내지 걱정이 이번 대결에 보여주는 과잉반응의 근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알파고는 '자아'나 '자유의지'로 작동하는 강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상의 인공지능일 뿐이다. 흔히 말하는 약한 인공지능인 것이다. 이런 약한 인공지능은 어떤 경우에도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리는 영화에서와 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약한 인공지능의 지능은 결국 인간의 지능에 의해 설계된 규칙대로 움직일 뿐이기 때문이다. 알파고 역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고는 하나 인간이 설계한 규칙을 따라 학습할 뿐인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를 두고 인간과 기계의 싸움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넌센스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에 도달할 디스토피아는 <메트릭스>라기보다는 <아일랜드>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가지는 것보다는 인간의 복제물이 자유의지를 가지는 게 더 실현가능한 미래 아닐까? 윤리적인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고.


그나저나 알파고는 좀 이상한 바둑프로그램이다. 연산능력을 앞세우는 바둑 프로그램은 부분전에서의 수읽기가 강점이다.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많은 초반에는 완전한 수읽기가 불가능하므로 다소 엉뚱한 수를 두더라도 판이 좁아지는 중반전 이후의 부분전이나 끝내기에서는 실수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금 이세돌 구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는 알파고는 초반의 경우 놀라울 정도의 직관력과 판단력으로 이세돌 구단을 궁지로 몰아넣다가 좌하귀 정석 과정에서 엄청난 손해수를 두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경우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 곳이라 컴퓨터 프로그램이 실수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확실히 알파고는 무작정 연산능력만 앞세우는 바둑전용프로그램이 아니라 모양을 보고 감각과 직관에 의해 수를 찾아내기도 하는, 인간적인 프로그램인 것 같다. 알파고의 약점이자 강점이 첫판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또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 같은데 알파고는 애초에 상대방을 압도적으로 이기기 위해 프로그래밍 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판후이와 둔 대국을 분석하면서 대부분의 프로기사들이 알파고의 기력을 의심하는 수들을 많이 지적하곤 했다. 반면에 알파고의 뛰어난 수들에 놀라기도 한다. 이 의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수를 두도록 설계된 게 아니라 상대방을 반집이라도 이길 수 있을 만큼만 두어나가도록 프로그래밍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지금 두고 있는 1국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후반에 알파고가 끊임없이 실수를 하고 있는데도 바둑은 이세돌 구단이 이겼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느냐만 엉터리 수를 두든 말든 진짜 이길 수 있도록만 설계된 건 아닐까?


이 바둑을 알파고가 이긴다면 이세돌 구단이 한 판이라도 이기면 다행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손해수와 엉터리(?)수를 두고서도 미세하다면 그건 알파고의 또다른 능력(=누구와 두든 이길 수 있도록만 설계된)이라고 봐야 할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