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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 이세돌이 이긴다?

by 내오랜꿈 2016.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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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나 IT 관련 전문가들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앞두고 대부분이 '이번에는' 이세돌이 이긴다고 예측했다 한다. 글쎄, 그 판단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에 존중한다. 하지만 그 논리가 빈약하기 그지없다. 이들의 논리나 결론 중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것 한두 가지를 보자.


1) 전문가들 중에 상당수가 '이번에는 알파고가 지겠지만 올해 안에(또는 1~2년 안에) 다시 붙으면 알파고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유는 그 시간 동안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과연 시간이 문제일까?


판후이와 알파고가 대결한 게 2015년 10월 초다. <네이처>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범용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4주 동안 KGS라는 바둑 전문 사이트에서 벌어진 6~9단 유저들의 기보 16만 건에서 나타난 약 3천만 경우의 착점을 학습하면서 바둑을 익힌 뒤 두어진 것이라 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학습시간의 부족 때문이었다면 지난 5개월 동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누가 이기고 지는 승부를 떠나 5개월 동안 학습해서 이기지 못한 걸 갑자기 5개월 더 학습한다고 이긴다고 예측하는 건 너무 단순한 논리가 아닐까?


2) 또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이번에 지더라도 고급의 기보를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 향후 알파고가 프로 정상급을 이길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좀 어이없다.


인터넷에 널린 게 고급기보다. 한국기원 홈페이지나 한국기원 바둑 연감에 보면 수십 년 동안의 프로기사 대국 기보가 있다. 일본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알파고가 이세돌 구단과 두는 것 때문에 실력이 는다는 말인가? 사람이면 몰라도 기계는 특정기사와 둔다고 그 사람의 감성을 흡수할 수는 없다. 오로지 놓여진 기보를 통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을 뿐이다. 알파고의 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특정기사와의 대국보다는 한중일 삼국의 프로기사 기보가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KGS 사이트에도 물론 한중일의 프로기사들이 일부 참여하지만(주로 일본기사들이 많이 참가하고 있다) 아무래도 수준이 좀 떨어진다. 나만 해도 이 사이트에 7단 아이디를 가지고 있다. 이 사이트의 6~9단 유저들의 기보보다는 한중일 프로기사 기보가 훨씬 더 고급기보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알파고가 이번에는 지겠지만 고급 기보를 얻을 수 있으니 그게 다음 번에 이길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주장은 어딘가 공허하다. 아마도 이들의 주장은 알파고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니까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통해서 이세돌 9단이 두는 수법들을 학습하면서 더 강한 프로그램이 된다는 의미일텐데 자가학습이 꼭 인간과 직접 두는 경우 뿐일까? 수천, 수만 판의 최고급 기보를 놔두고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이 알파고의 학습에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들리는 소문에 구글 측에서는 제한시간을 1시간으로 하자고 한국기원에 통보했다고 한다. 이 말은 지난 번 판후이와의 대국 이후 여러 가지 분석 결과 1시간의 제한시간이 알파고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판후이와의 대국에서도 제한시간 1시간의 경우 5전 전승, 30분의 경우 3승 2패였다. 또한 한국 출신 프로기사와의 대국에서도 제한시간 1시간으로 둬서 알파고가 이겼다고 한다. 실명은 안 나오는데 내가 추측하기에는 아마도 미국에서 보급 활동을 하고 있는 김명완 8단이 아닌가 싶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건 1시간이라는 제한시간은 알파고에게는 충분히 실수하지 않을 만한 시간이라고 구글이 판단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1시간은 어딘가 부족한 시간이다. 속기바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수를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시간도 아니다. 아마도 여기서 한국기원이나 이세돌 9단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지난 번 글-인공지능(AI) - 체스에 이어 바둑도 정복하는가?-에서 제한시간에 따른 유불리를 따져 본 건 이런 의미다). 되도록이면 제한시간을 세 시간에 가깝게 할려고 구글 측과 협의하지 않을까 짐작된다. 이 부분만 놓고 봐도 이번 시합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비해 압도적인 실력이라면 구글 측이 제안한 1시간을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제한시간을 늘리려고 협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겉으로 표현되는 전문가들의 자신감 이면에 가리워진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둑은 상대방보다 뛰어난 수를 둬서 이기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상대방보다 실수를 적게 해서 이기는 게임이다. A는 뛰어난 수보다는 무난한 수를 계속 두고 B는 뛰어난 수도 잘 두지만 더러 실수도 둔다고 가정하면 승부는 A가 이길 확률이 많은 게 바둑인 것. 알파고는 계속 무난한 수만 두고 이세돌 9단은 시간에 쫓겨 실수도 둘 수 있다고 가정하면 승부는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알파고는 자신이 실수한 것인지 잘 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다음 수만 두는데 반해 인간은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달으면 그 실수에 얽매이게 된다. 이세돌 9단은 인간이다. 자신의 실수에 얽매이게 되는. 승부는 이런 것에서 갈릴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는 22일 제한시간을 비롯한 모든 일정이 상세하게 발표된다고 하니 그때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구글 측이 제안한 1시간 그대로면 이세돌 9단의 자신감과 구글의 자신감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세 시간이나 두 시간으로 결정한다면 이건 이세돌 9단이나 한국기원에서 강력하게 요청한 것일 테니 '인간'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만큼 알파고는 이미 만만찮은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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