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감자를 자르고 싹 틔우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파릇한 눈들이 씨감자 조각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햇빛을 제대로 쬐지 못하고 습기를 머금은 상태에서 자라는 흰색의 굵은 눈이 아니라 충분한 햇빛을 보고 자란, 보랏빛이 도는 연두색의 가는 눈이다. 이 상태로 눈을 더 키우기보다는 땅속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자라게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땅 밖으로 새순이 돋아 나왔을 때 냉해의 우려만 없다면. 냉해 피해 여부는 각자의 사는 지역에 맞춰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참고로 이야기 하자면 감자는 원래 냉해에 강한 작물이다. 감자의 원산지는 해발 3,500m 고지인 안데스 산맥의 구릉지대니까.
감자 싹 틔우기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가늘고 파릇파릇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올라오도록 해야 한다. 건드리기만 하면 툭툭 부서지는 희멀건 색깔의 굵은 눈은 잘못 틔운 것이다. 교과서적으로 씨감자 싹 틔우기는 온도 15℃, 습도 85%의 조건에서 하라고 하는데 소규모 자작농에서는 이 조건을 정확하게 맞추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습도 85% 조건은 웃기는 소리다. 습도 85% 조건이라는 건 하루 종일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을 연상하면 된다. 대규모 배양실이나 무균시설을 갖춘 농진청 실험포장에서나 할 수 있는 조건이지 일반 농가에서 이걸 따라 했다가는 씨감자 자른 부위가 썩기 딱 알맞은 습도다. 책도 이론도 무조건 따라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해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싹 틔우기 8일째인 씨감자. 씨감자 눈은 이렇듯 가늘고 파릇파릇하게, 단단하게 올라와야 한다. 햇볕을 제대로 보지 못해 희멀건 색깔로 굵게 나오는 눈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러지는, 잘못된 감자 싹 틔우기다.
씨감자 두 박스를 차에 싣고 들른 밭. 온통 습한 기운이 밭 전체를 덮고 있다. 이상하게도 지난 주부터 봄비가 자주 내린다. 봄비 치고는 양도 제법 많은 편이다. 지금 당장은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마늘이나 양파한테 더없이 고마운 비이기는 하나 각종 작물의 봄 파종을 위해서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내려주는 게 필요할 거 같다. 작년 11월의 가을장마 악몽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봄장마 왔다는 소리 들으면 경기할 거 같다.
▲ 감자 심을 평이랑. 멀칭했던 풀을 걷어내고 평이랑 양쪽 가장자리 30cm 지점에 괭이로 감자 심을 골을 탄다.
오늘 감자를 심을 곳은 작년에 마늘 심으면서 미리 마련해 둔 30M 길이 평이랑 4개다. 감자 농사 짓는 사람들은 이 평이랑에 어떻게 감자를 심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뭐 못 심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평이랑도 가운데 흙을 파내 양쪽으로 쌓으면 훌륭한 감자 두둑이 된다. 이 평이랑은 너비가 120cm다. 양쪽 가장자리에서 30cm 되는 곳을 괭이로 긁어낸 뒤 씨감자를 적당한 간격으로 넣고 이랑 가운데의 흙을 긁어 이쪽저쪽의 씨감자를 덮어 준다. 이렇게 하면 20~25cm 높이의 감자 두둑이 쉽게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관리기는 전혀 쓰지 않는다. 오로지 괭이와 삽, 쇠스랑으로만 만든다. 힘들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 밭 흙이 사질양토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유기물로 멀칭을 해두었던 터라 땅이 보슬보슬하기에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다.
▲ 씨감자 넣기. 절단면의 방향에 상관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넣는다.
씨감자를 넣을 때 절단면을 위로 하느냐 아래로 하느냐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의 방법이 수확량이 더 많다거나 감자가 더 굵어진다는 걸 내세우면서. 그러나 객관적 자료로 증명된 건 하나도 없다. 그저 주장만 있을 뿐이다. 특히나 '자닮' 쪽 사람들이 절단면이 위로 가게 하는 게 수확량이 많다는 걸 퍼트리는 주범들인데 말로만 주장하지 말고 실험 포장에서 증명된 객관적 데이타를 한 번이라도 보여 주었으면 한다. 내가 아는 한 농진청의 그 어떤 감자재배 관련 자료에서도 씨감자 절단면을 놓는 방향을 가지고 언급하는 건 없다. 나는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넣는다. 복불복이다
▲ 씨감자를 넣고 평이랑 가운데의 흙을 양쪽으로 밀어올리면 감자 두둑이 완성된다.
▲ 준비해 둔 이랑이 부족해 급하게 새로운 이랑을 만든다.
미리 준비해 둔 이랑은 4개인데 씨감자 조각들이 두백, 수미 각각 600개가 넘다 보니 준비한 이랑에 다 심고도 제법 많이 남는다. 급하게 마늘 양파가 자라고 있는 이랑 옆의 빈 이랑 두 개를 새로 정비하여 다 심고 나니 6시간 가까이가 소요되었다. 비가 올 듯한 흐린 날씨이기에 비 오기 전에 마무리하느라 거의 쉬지 않고 움직였더니 허리며 손이며 안 아픈 곳이 없다. 그 덕택에 겉모습 만큼은 남 부럽지 않은 감자 두둑이 완성되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일이고 이 다음부터는 감자 스스로 알아서 자라야 한다. 물론 중간에 상태를 보아 가며 제초를 겸해 두둑을 한 번 보강해 줄 수는 있다.
감자는 해마다 자급용으로만 조금 심다가 올해는 판매도 할 겸해서 파종량을 좀 늘였다.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토양소독제는 물론이고 비료나 퇴비도 전혀 넣지 않는다. 비닐 멀칭도 물론 하지 않는다. 곧 수확량을 많게 하거나 굵은 감자를 생산하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은 전혀 할 생각이 없다. 그야말로 자연재배다. 그러니 이 감자를 사 먹을 분들은 무조건 크고 굵은 감자를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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