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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태환경

개불알풀, 상상력의 빈곤 혹은 과잉

by 내오랜꿈 2016.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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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따갑다. 습관적으로 겨울 외투를 껴입고 나선 휴일 오후의 산책길. 얼마 못 가 여몄던 옷깃을 풀어헤친다. 흔히 쓰는 말로 며칠 사이에 공기가 달라졌다. 사람이 이렇게 느낄 정도면 들녘의 풀들은 이미 오래 전에 느꼈을 터. 벌써 쑥은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 올라와 있고 머위와 배초향(방아)도 새싹을 밀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애써 들여다보아야 눈에 띄는 것들. 눈길 가는 곳마다 청보라빛 자태 뽐내는 이 있으니 바로 개불알풀이다.


개불알풀. 이름 참 '거시기'하다. 우리 식물 이름 중에는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게 이름 앞에 '개'를 붙이는 것이다. 이 경우 '개'는 대부분 '하찮다', '가짜', '거칠다', '비슷하다'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대상 식물과의 비교를 통해 보여지는 어떤 특성을 잡아내 명명하는 것이니 아무리 '개'가 안 좋은 의미로 쓰였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또한 기생여뀌, 애기똥풀 등 그 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잡아내 명명하는 경우도 있고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꽃 등 조금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발휘된 이름도 있다. 개불알풀은 어느 경우일까?



▲ 주변 논밭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큰개불알풀 군락지

▲ 배초향(방아) 새잎. 배초향은 종자가 새로 발아하기도 하지만 묵은 뿌리에서 새순이 돋아나기도 한다.

▲ 머위 꽃대와 새잎


개불알풀은 꽃이 진 뒤 쌍으로 맺히는 열매 모양을 보고 이름 붙인 것인데 일본명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 식물 이름 중에는 일본 식물명을 그대로 번역해서 붙였거나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수록된 이름을 아직 그대로 쓰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은 편이다. 며느리밑씻개, 꿩의다리, 닭의장풀, 소경불알, 끈끈이주걱 등이 대표적인 일본 이름의 잔재인데 그 중에서도 개불알풀이나 소경불알은 아무리 생김새를 보고 유추한 이름이라고는 하나 상상력 빈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개불알풀의 학명은 "Veronica didyma"인데 속명인 '베로니카'는 기독교에서 성녀로 추앙 받는 베로니카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고 종소명인 '디디마'는 쌍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이를 두고 김종인 교수는 개불알풀의 꽃잎을 보고 성녀 베로니카의 손수건에 나타난 광배 속에 빛나는 예수의 얼굴을 연상하는 것에 비하면 일본인들이 명명한 개불알풀은 너무 천박한 이름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차라리 개불알풀의 중국명 파파납(婆婆纳=할미 파, 들일 납)이 좀 더 은유적인 네이밍이 아니냐는 것이다(김종인, 『한국식물생태보감』, p364~365). 아닌 게 아니라 똑같이 성적인 묘사를 시사하고 있지만 개불알풀은 '상상력의 빈곤'에 가깝고 파파납은 '상상력의 과잉'에 가까운 것 같다.



▲ 큰개불알풀의 잎과 꽃. 개불알풀 잎은 큰개불알풀에 비해 잎이 약간 다육이성을 보일 정도로 두꺼운 편이고, 선개불알풀은 줄기가 개불알풀이나 큰개불알풀과는 달리 땅바닥을 기는 게 아니라 곧추서서 자란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각종 '개'가 들어가는 이름이나 개불알풀, 소경불알 등 일본명을 그대로 번역한 이름을 두고 혐오스럽니 어떠니 하는 지적만 하고 있지 아직 그대로 쓰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오래 전부터 이런 식물 이름들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식물분류학자인 이우철 교수에 의하면 북한은 이미 1988년에 펴낸 <식물원색도감>에서 혐오스러운 느낌이 들거나 어감이 좋지 않은 이름은 우리말로 순화해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개'자는 혐오어로 취급하여 '개비자나무→좀비자나무', '개별꽃→들별꽃' 등으로 바꾸었고, '소경불알→민삼아재비', '송장풀→산익모초' 등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는 것(<한겨레신문>, 1992년 05월 16일자). 개불알풀,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이 나오면 혐오스럽니 어떠니 흥분할 게 아니라 일본강점기의 잔재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청산해 내지 못한 남한의 풍토부터 반성할 일이 아닌가 싶다. 나아가 청산하기는커녕 지 애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 만드느라 친일의 흔적조차 새로운 역사트렌드로 만들어내는 이 정권에 분노할 일이다.


▲ <우리주변식물생태도감> 표지.

이맘때면 남녘의 들녘을 점령하는 개불알풀은 엄밀히 말하면 큰개불알풀이다. 우리나라 중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불알풀 종류는 개불알풀, 큰개불알풀, 선개불알풀 등 세 종류라고 한다. 이 중에서 개불알풀은 우리나라 고유종이거나 사전귀화식물 또는 고귀화식물로 분류할 정도로 이 땅에서의 역사가 깊다고 한다. 반면에 큰개불알풀이나 선개불알풀은 비교적 최근 이 땅에 귀화한 식물로 분류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들녘에 보이는 건 대부분 큰개불알풀이고 토종식물에 가까운 개불알풀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 주변식물에 대해 가장 방대한 가짓수를 담고 있다고 평가 받는 강병화 교수의 『우리주변식물생태도감』에도 큰개불알풀과 선개불알풀만 나오지 개불알풀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서식처가 겹치는 이들 종 사이의 자리다툼에서 개불알풀이 큰개불알풀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종류의 차이는 사진의 큰개불알풀을 중심으로 설명하자면 개불알풀은 잎이 큰개불알풀보다 약간 다육이성에 가까울 정도로 두꺼운 편이다. 선개불알풀은 잎 모양은 큰개불알풀과 비슷한데 말 그대로 줄기가 곧추서서 자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너무 흔하기 때문에 또는 인간에게는 쓸모없는 풀이기에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식물이지만 개불알풀 꽃은 밀원식물로 분류될 만큼 향이 뛰어나 벌들을 불러 모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풀조차 논둑 밭둑에 우거진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제초제를 뿌려 제거하고 있다. 지금 남도 해안가 들녘은 한창 취나물과 곤드레나물 씨앗을 뿌리는 시기다. 개불알꽃이 열매를 맺어 논바닥이나 밭에 떨어져 발아하면 제거해야 할 귀찮은 잡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쓸모 있음, 쓸모 없음이 지나치게 인간의 유용성 또는 경제성을 기준으로 매겨질 때 나타나는 폐해는 결국 인간 자신의 몫으로 돌아옴을 우리는 너무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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