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모습/세상

문자, 삐삐 그리고 스마트폰

by 내오랜꿈 2016. 2. 2.
728x90
반응형


1. 2005


팅, 알. 


10년 전 지상파 광고를 뜨겁게 달구던 용어들이다. 문자 메시지를 몇 개까지 보낼 수 있다는, 다른 통신사보다 더 많이 보낼 수 있다는 게 마케팅의 핵심이던 시절의 용어다. 지금도 이동통신사 청소년 요금제의 이름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시절, 내 또래의 어른들이 자주 쓰던 말 가운데 하나가 이거였다.


"요새 애들은 문자 아까운 줄 모른다."


없는 말도 만들어가며 80 바이트를 꾸역꾸역 다 채워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던 어른들의 눈에 자기 아이들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 내용은 기가 찰 따름이었다. "집이야?", "응", "뭐 해?", "그냥..."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애들한테는 한 달 500개라는 용량도 부족하기 마련. 보름이 채 지나가기도 전부터 용량을 '늘려 달라, 안 된다'는 애들과 부모들의 실랑이가 시작되는 게 다반사일 수밖에.


불과 10년 전 풍경인데 아주 오랜 옛일 같다.




2. 1995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를 보면 내러티브의 핵심 모티브 가운데 하나가 삐삐다. 삐삐가 없었다면 스토리의 전개를 어떻게 잡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 정도로 삐삐는 영화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삐삐는 휴대폰이 보편화되기 직전,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을 지워준 나름 혁명적인 통신 수단이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길거리의 공중전화박스가 가장 많이 설치 되었던 시절이자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이다. 또한, 이 시절 도심의 커피숍은 "0000 번 호출하신 분?"을 찾는 종업원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호출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볍게 무시할 수도 있었던 시절.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삐삐의 시절이었다.


3. 1985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


사랑이나 인연의 불가피성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에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나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열흘, 한 달 뒤 약속을 미리 잡기도 하고, 밤늦게 친구 집에 전화를 하기도 한다. 통화를 못 하면 친구 어머님께 부탁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 시절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 딸 친구들 이름을 거의 대부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 어머니께 부탁을 하기 위해선 자기 소개를 할 수밖에 없으니 만나 뵈었든 아니든 "어머님, 저 00 친구 00입니다."는 꼭 필요한 멘트였다.


각 단과대학 건물마다 간단한 메모를 꽂을 수 있는 메모판이 있었고, 학교 앞 커피숍이나 주점도 입구에 커다란 메모판은 필수였다. 만날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고,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났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캠퍼스를 찾아가는 건 예삿일이었고, 친구집에 찾아가 친구 어머니가 깎아주는 과일을 얻어먹고 앉아 있다 밤늦게 오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만남이나 소통에 대해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던 시절이었다.




4. 그리고, 지금


십 년 전 아이들에게 "문자 좀 아껴 쓰라."는 잔소리를 늘어놓던 부모들이 그 시절 아이들보다 더 문자 메시지에 매달려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응", "그래", "어디냐?", 잘 사나?" 등의 단문을 주고받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단체00방'을 만들어 몇 시간이고 온갖 잡다한 수다를 늘어놓기도 한다. 어딜 가나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못 한다. 이것 만큼은 애나 어른이나 구분이 없는 시대다. 이른바 스마트폰 시대.


그런데 폰만 스마트한 시대지 사람들까지 모두 다 스마트하게 변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손에 달고 사는 스마트폰으로 한두 번만 찾아보면 알 수 있을 내용인데도 되지도 않을 댓글 다는 사람들부터 방송에 한 번 나오면 무조건 믿어버리는 순진한 사람들까지 천차만별이다. 하긴 자기 머리로 사고하지 못 하는 사람들한테 스마트폰이 아니라 스마트폰 할애비라도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자기 수준을 드러내는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수준까지도 말이다.


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라. 아직 피처폰을 쓰는 사람이 스마트폰 시대를 보며 하는 생각이니 시대에 뒤쳐졌다 생각하고 넘어가시기 바란다. 언제까지 뒤쳐진 시대를 살아갈지는 모르겠다. 쓰고 있는 폰이 3년이 지났는데 아직 생생하기만 하다. 이 폰의 수명이 다 하면 다시 한 번 고민하리라. 3년 전에 했던 것처럼 스마트폰으로 바꿀지 말지를. 그럴 수만 있다면 영원히 고민만 하고 살았으면 싶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