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살바도르 달리 자서전
"작가들은 보통 일생을 다 산 다음에 말년에 가서 회고록을 쓴다. 모든 사람들과 반대로 가는 나는 회고록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그 내용을 사는 것이 더 지적인 것으로 보였다. 산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인생의 반을 다 청산할 줄 알아야 한다. 경험으로 풍성해진 나머지 절반의 인생을 계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뱀이 허물을 벗듯이 과거를 죽여서 벗어버렸다. 이 경우 나의 허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내가 살아온 혁명적 무정형의 삶을 말한다."
(『살바도르 달리 』, 이마고,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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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책의 부제로 달린 이 말만큼 36살 달리의 인생을 정리한 달리 자서전을 한 마디로 압축하는 표현을 찾기란 힘들다.
개인적으로 달리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건 초현실주의 화가라는 것, 따라서 당연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솔직한 말이리라. 그런데도 별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어들고 읽어내려간 이유는 영화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된 『안달루시아의 개』(1929)와 『황금시대』(1931) 때문일 것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과 함께 만든 이 '전위영화'들의 강렬한 인상은 살바도르 달리란 이름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친밀감의 끈을 이어왔기 때문이다(이 자서전에서도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를 찍을 당시의 상황과 스스로 내린 평가를 언급하고 있다).
어쨌거나 달리의 이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달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여러 단편 지식들, 예컨대 부정적인 이미지로서의 광인, 괴짜, 방탕... 긍정적 이미지로서의 천재, 초현실주의 운동의 시각언어화, 무의식을 현대 회화에 도입한 사람 등등의 이미지들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달리의 이 자서전은 여느 보통의 자서전-그게 달리 못지 않은 '괴팍한' 예술가의 자서전이라 할지라도-이 보여주는 침착한 자기응시나 평안한 회고조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달리의 원래 성격이 그러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도발적인 문장과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정념이 쉴새 없이 이어지기에 서술하고 있는 상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파악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작품을 일러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걸작'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자신이 '세계의 배꼽'이라는, 그러니까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몽환적 선언에 이르게 되면 읽고 있는 내가 잘못된 것인지 서술하는 그가 미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확언하건대 그는 결코 미친 것이 아니다. 이게 그의 삶이고 그의 현실인식인 것이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자서전의 도입부에서 태아상태였을 때 어머니 뱃속에서 '보고 겪었던' 것들을 묘사하는 장면 등은 누가 봐도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이다. 하지만 달리는 이 책에서 "비밀로 남아야 할 운명"이었으나 "가감없이 들려줄 이 일화들은 진짜로 진짜이고, 나 자신의 이미지를 이루는 속살, 나의 자화상을 이루는 석회질"(p29)이라면서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말살시켜버리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있다. 곧 단순한 자아도취나 오만이 아니라 그의 작품들의 일관된 경향처럼 그의 삶 자체가 '초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 달리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그의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엘레나(갈라)이다. 러시아 태생의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 엘레나에게서 운명적인 만남을 직감한 달리는 극도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녀야말로 그를 치유해 줄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녀에게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1929년, 파리에서 작품전이 열리는 도중, 홀연히 그곳을 잠적, 사랑의 도피 여행을 떠나게 된다. 달리는 이때 폐쇄된 호텔의 방 속에서 갈라와의 생활을 통해 태아의 요람 속 기쁨을 느낀 것처럼 그 세계를, '거기는 정말 성스러웠다. 그야말로 천국이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달리는 이 일로 인해 아버지로터 의절하자는 편지를 받게 된다. 타인의 아내를 가로챈 아들의 부도덕에 분노한 아버지는 결국 그에게 절연장을 보내기에 이르렀고 달리는 그 충격으로 삭발한 채, 먹다 남은 성게 껍질과 함께 그 살발한 머리카락을 흙 속에 묻어버리게 된다. 이 '매장'은 곧 그를 낳고 기른 아버지와 가정이었던 셈이다. 결국 그는 혈연을 잃은 대신 운명적인 갈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참다운 달리가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 20세기의 가장 특이한 화가로서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의 회의나 고뇌, 압도하는 무의식의 위력 등이 내재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사람. 즉, 그의 작품 속에는 통속적 경험과 상식으로써는 전혀 파악하기 어려운 기묘한 것들로 이루어진,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초현실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를 두고 어떤 비평가들은 병적인 그림, 또는 광인의 그림이라고까지 평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은 당시의 평자들이 달리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었다는 평가가 주종을 이룰만큼 이제 그의 그림을 두고 광인의 그림이라고 평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자서전을 서술하던 1941년의 상황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달리 역시 자신의 자서전을 읽고 나면 독자들이 자신의 그림들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그네에 매달린 미지근한 우유 컵 50개가 왜 달리에게는 나폴레옹의 포동포동한 허벅지와 동일한 것인지, 어떻게 해서 그것이 만인에게 보편적인 진실이 되는지"(p23)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의 확언해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리는 나에게 이해하기 힘든 예술가 중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여러분들은 이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이길 수 없는' 내기를 한 번 시도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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