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테러…테리 이글턴|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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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테러에 대한 전쟁에서 악이란 단어는 역사적 설명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테러를 설명하고 분석하려는 시도는 그것에 대한 사면으로 간주되며, 상황에 대한 이성적 분석은 테러에 대한 변명으로 간주되고 만다.”
사흘 후면 9·11테러가 발생한 지 꼬박 6년이 된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미국내에서는 아직 당시 테러를 ‘제정신 아닌 사람의 이해못할 광기’로 치부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테러리즘에 대한 근원을 탐색하는 책은 이런 근본주의적 시선 같은 테러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다.
저자 테리 이글턴은 20여년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후 대학 문학개론 강의마다 단골 텍스트로 채택된 ‘문학이론 입문’으로 유명하다.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가인 저자는 신화와 소설, 철학서적 등 방대한 텍스트를 넘나들며 테러의 심층을 파헤친다. 특유의 종횡무진하는 펜은 테러를 정신분석하고 문학비평을 구사하며 때로는 철학적 사유를 펼친다.
저자는 테러의 기원을 신화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최초의 테러리스트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다. 그가 펼치는 향연은 무질서를 부른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일탈과 파괴의 장본인으로 간주된다. 그리스 희곡에서 이런 디오니소스의 파괴행위를 제압하러 나서는 인물이 펜테우스인데 그는 폭력으로 무질서를 진압한다. 펜테우스는 그의 적과 흡사한 방식, 즉 테러로 테러에 맞선다. 저자는 펜테우스를 국가 폭력의 전형으로 지목한다. 펜테우스는 9·11 이후 대테러 전쟁에 나선 미국의 비유로 읽힌다.
저자는 테러를 폭력으로 대항할 것이 아니라 공정한 심판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테러를 극복하는 최선의 길이자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펜테우스 같은 ‘과도한 이성의 오만함’에 뿌리를 둔 근본주의자 방식은 테러의 악순환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칼끝은 다분히 종교적 근본주의자로 향해 있다. 그는 “탈레반 출신이건, 텍사스 출신이건 근본주의자들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영국 정치가 에드문드 버크의 말을 빌려 프랑스 혁명의 테러성을 들춰낸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을 “무서운 위험성을 지닌 기질, 결국 스스로를 오용과 남용으로 몰아가는 자유정신”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그는 혁명의 주동자 자코뱅당의 공포정치를 비판했는데 결국 그들도 ‘오만한 이성’의 포로가 돼 파국을 맞았다. 저자는 또 테러를 불러들이는 자본주의 일방통행을 경계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던 사람들은 이슬람 세계 민중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역사의 종언에 대한 선언이 결국 또다른 역사의 시작을 불러왔을 뿐이다”라는 지적은 울림이 있다. 서정은 옮김. 1만2000원
〈서영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