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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Book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교양'으로서의 예술의 사회사

by 내오랜꿈 2007.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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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서의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누가 나에게 꼭 읽어야 할 책 한 권만 소개해 달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권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부터 20세기 영화예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를 철저한 사회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보잘 것 없는 내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 책들은 좀더 '왼편'에 기울어진 책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 책 만큼 틈틈이, 자주 손에 접하게 되는 책은 드물다. 한 번 읽고 서가에 모셔놓는 책이 아니라 글을 쓸 때나 다른 책을 읽다가도 다시 꺼내 들춰보게 되는 책인 것이다. '현대편', '고대 중세편', '근세편(상/하)'으로 나누어 번역되어 있는데, 순서 상관없이 어느 편의 어느 장이라도 독자적으로 읽을 수 있다.

"모든 예술은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져 있지만 예술의 모든 측면이 사회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하우저 자신의 표현처럼 예술작품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이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신념과 그러면서도 예술이라는 인간행위가 지닌 독자성과 복잡성에 대한 인정 또한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의 경우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은 고독한 천재의 영혼의 산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의 천박한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1,000만 관객 운운하는 '영화의 시대'인 요즘에는 '문화'나 '예술'을 일상의 삶이나 정치, 경제와 같은 사회 전반의 영역들과 연결시키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상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나 예술은 아주 '고상한' 무엇이고 그것에 대한 이해도 일부 전문가들의 몫이라 치부되곤 했다. 더구나 문화나 예술을 하우저의 관점처럼 거대한 사회사의 일부로 바라보는 건 예술에 대한 불경 정도가 아니라 '정신의 위대함을 물질적 요인들로 환원시키는 빨갱이들의 사상'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우저는 선사시대의 자연주의적 예술에서부터 20세기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화에 이르기까지 제목 그대로 '예술사'가 아니라 '예술의 사회사'라는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시킨다. 따라서 이 책은 우선 풍부한 지식 창고라는 점에서 훌륭한 교양서라 할 수 있다. 전체를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소설가를 평가하는 대목을 살펴보자. 보편성으로 위장한 근대 예술양식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의 긴밀한 연관 등에 대한 분석은 다소 진부하면서도 여전히 교훈적이다.

하우저는 발자끄, 루소, 스탕달, 디킨즈, 톨스토이, 토스토예프스키 등 유명한 작가들을 다 오늘에 되살려 앉혀 놓고, '사실'과 그 복잡하고 풍부한 연관으로서의 '역사'를 그들이 어떻게 반영하고 표현하고 꿰뚫어 봤는지, 아울러 이를 통해 그들이 어떤 일신의 영화를 누렸고 어떤 계급의 이익을 대변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낀 개인적 고뇌와 번민은 무엇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건 '사실'에 대해 각 작가들이 취한 자세와 관점의 차이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해낸 어느 작가는 그 계급적, 정서적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대의 진보를 선명하게 구현해내고, 정치적·이념적으로 급진적이었던 또다른 작가는 그 반대편에 서게 되고...

또한 소설의 독자들이 대중과 지식인층으로 갈리면서 대중에 영합해 오히려 사실을 왜곡한 작가가 있고, 비록 소수 지식인을 겨냥한 것이지만 그 시대의 대중에게 한발 앞선 비젼을 보여준 경우도 있고...

널리 읽힌다는 것과 유익하다는 것, 유익하다는 것과 올바르다는 것, 이념적으로 옳다는 것과 사실을 제대로 들여다본다는 것, 사실을 반영한다는 것과 본질을 꿰뚫는 것 등이 서로 일치하기보다 불일치하고 화합하기보다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복잡하게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다.

우리가 문화나 예술작품의 이해를 목적으로 찾게 되는 수많은 것들을 보면서 꼭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우저의 이런 사회사적 관점이 아닐까? 때문에 뭔가 내용있는 읽을 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해드리고 싶다. 그 분량과 내용의 깊이가 만만친 않지만 그것을 헤쳐나가는 기쁨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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