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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스티븐 데이비스 지음, 이경하 옮김. 여름언덕(2007)
레게(reggae)란 무엇인가? 흔히들 정의되는 것에 따르면 미국 흑인들의 노예노동으로부터 블루스(Blues)가 생겨났고, 카리브해 자메이카 흑인들의 한과 설움에서 레게(Reggae)가 생겨났다고 한다. 곧 레게는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자메이카에서 일기 시작한 음악 형태로, 원래는 1950년대말 자생적으로 발전한 '멘토(mento)', '스카(ska)' 등의 자메이카 특유의 토속적인 리듬에 미국으로부터 전해진 흑인음악 '리듬 앤 블루스'가 혼합되어 '록스테디(rock steady)'로 변형되었고, 여기에 관악기 소리가 첨가되어 개발된 대중음악의 한 장르인 것이다.
그러나 이 레게음악은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카리브해의 흑인들, 이른바 '아프로 캐러비안'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종교적, 정치적 지향과도 맞닿아 있다. 백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수백 년간 억압과 착취에 시달려온 한과 설움을 딛고 '백인들의 지배를 벗어나 고향이자 약속의 땅인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과 연결되어 있는 것. 이 절실한 꿈, 그러나 결코 이루지 못한 '아프로 캐러비안'들의 염원을 밥 말리, 지미 클리프 등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가수들이 음악 속에 담아낸 것이 레게 음악의 정치적 지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레게의 탄생과 발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신현준, <WORLD MUSIC 속으로>, PP127~152를 참조).
따라서 어떻게 보면 레게의 특징은 음악성보다 저항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귀로 듣기에는 경쾌한 춤곡이지만 그 속에는 출발부터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담고 있는 것. 이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밥 말리는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라며 레게가 억눌리고 차별받는 카리브해 흑인들의 저항음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도 레게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한때 '국민가수'로 불렸던 김건모의 "핑계"가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에도 선풍적인 레게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한국의 레게는 출발부터 '저항성이 거세 당한' 껍데기뿐인 레게였다 할 수 있다. 룰라, 투투가 레게 뮤지션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나마 2000년대에 들어와 바비 킴(Bobby Kim)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이 정통 레게를 소개하고 있는 정도라고나 할까? (최근에 쿤타&뉴올리언스, 윈디시티, 스토니스컹크 등 실력 있는 레게뮤지션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긴 하다)
어쨌든 레게는 밥 말리를 떠나서는 절대 논의될 수 없는 음악이다. 밥 말리에 대해서는 몇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스티븐 데이비스의 <Bob Marley>가 최고의 책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데, 우연찮게도 나에게 역자에게 사인받은 번역본이 있다.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인연인데 밥 말리에 관해 쓴 나의 짧은 글을 보고 역자가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자신의 번역을 평가해달라는 인사말과 함께 보낸 것인데, 사실 번역은 조금 미흡한 것 같다. 시간에 쫓기면서 급하게 작업했다고 하는데, 원작이 워낙 좋은 평가를 받는 책임을 감안하면 출판사나 역자나 조금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작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레게음악은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카리브해의 흑인들, 이른바 '아프로 캐러비안'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종교적, 정치적 지향과도 맞닿아 있다. 백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수백 년간 억압과 착취에 시달려온 한과 설움을 딛고 '백인들의 지배를 벗어나 고향이자 약속의 땅인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과 연결되어 있는 것. 이 절실한 꿈, 그러나 결코 이루지 못한 '아프로 캐러비안'들의 염원을 밥 말리, 지미 클리프 등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가수들이 음악 속에 담아낸 것이 레게 음악의 정치적 지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레게의 탄생과 발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신현준, <WORLD MUSIC 속으로>, PP127~152를 참조).
따라서 어떻게 보면 레게의 특징은 음악성보다 저항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귀로 듣기에는 경쾌한 춤곡이지만 그 속에는 출발부터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담고 있는 것. 이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밥 말리는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라며 레게가 억눌리고 차별받는 카리브해 흑인들의 저항음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도 레게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한때 '국민가수'로 불렸던 김건모의 "핑계"가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에도 선풍적인 레게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한국의 레게는 출발부터 '저항성이 거세 당한' 껍데기뿐인 레게였다 할 수 있다. 룰라, 투투가 레게 뮤지션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나마 2000년대에 들어와 바비 킴(Bobby Kim)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이 정통 레게를 소개하고 있는 정도라고나 할까? (최근에 쿤타&뉴올리언스, 윈디시티, 스토니스컹크 등 실력 있는 레게뮤지션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긴 하다)
어쨌든 레게는 밥 말리를 떠나서는 절대 논의될 수 없는 음악이다. 밥 말리에 대해서는 몇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스티븐 데이비스의 <Bob Marley>가 최고의 책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데, 우연찮게도 나에게 역자에게 사인받은 번역본이 있다.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인연인데 밥 말리에 관해 쓴 나의 짧은 글을 보고 역자가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자신의 번역을 평가해달라는 인사말과 함께 보낸 것인데, 사실 번역은 조금 미흡한 것 같다. 시간에 쫓기면서 급하게 작업했다고 하는데, 원작이 워낙 좋은 평가를 받는 책임을 감안하면 출판사나 역자나 조금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작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링크시킨 곡은 "No Woman, No Cry". 밥 말리 최고의 노래이면서 레게의 정점이라고 하는 노래다. 이 "No Woman, No Cry"는 여러 버젼이 있는데, <LEGEND> album virsion과 "Live" album virsion이 대표적이다. <LEGEND> album virsion은 원래 1974년에 발표한 오리지널 밸범인 <NATTY Dread>에 수록된 곡으로 심플한 느낌이다. "Live" Album Virsion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링크시킨 버젼은 1979년 7월 21일, 보스턴의 하버드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Amandla Festival"에서의 공연실황이다. 앨범 버전과 비교해보면 뭔가 비장한 분위기가 흐르는, 슬로우 리듬의 애절함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모르고 들으면 전혀 다른 노래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이다.
아래 밥 말리의 짧은 생애를 정리한 글은 팬홈피(http://www.bobmarley.zc.bz)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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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백인 아버지와 10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메이카 트렌치타운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밥 말리는 플래티넘을 기록한 뮤지션 그리고 레게의 최고스타가 되었다. 또한 그의 음악을 더욱 빛나게 했던 평화, 정의, 자유, 형제애를 부르짖은 저항정신으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다.
밥 말리는 Bunny Livingston, Peter McIntosh(후에 각각 Bunny Wailer, Peter Tosh로 알려짐)와 함께 16세에 가수로서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Drifters, Impressions, Sam Cooke, 컨트리싱어 Jim Reeves와 당시 자메이카의 토속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62년에 그는 Wailing Rudeboys로 알려진 Teenagers와 함께 첫번째 음반인 "Judge Not"을 발표했다. 이후, 팀명으로 Wailers를 채택하고 정치적인 내용을 담은 평범하지 않은 곡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어 자메이카에 서서히 퍼지고 있던 'SKA'비트의 음악을 시도했고, 그래서 "rude boy music"으로 불리기도 했다.
1966년에 밥 말리는 Rita Anderson과 결혼하여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자메이카에서 Rastafarian신앙 (자메이카의 흑인들이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신앙화된 일종의 종교로써 현재 아프리카의 많은 이들이 믿고 있기도 하다.)의 급속한 성장이 그로 하여금 다시 자메이카로 돌아오게 하였다.
SKA, rude boy music과 더욱 발전한 형태인 "rock steady"로 그의 곡들은 더욱 갈고 다듬어졌다. 그러나 1973년 이전까지는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가 Island Record에서 그의 첫 음반을 만들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결과, "Stir It Up"과 Peter Tosh의 "Stop That Train"이 포함된 "Catch a Fire"를 발표하여 전세계인들에게 처음으로 레게를 소개하게 되었다. 이 음반을 통하여 rock팬들에게 춤을 출 수 있는 새로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열정을 자각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음악적 메시지를 담았다.
자신의 Rastafarian신앙과 자메이카 공동체에 대한 중독에 자극받음으로써 밥 말리는 레게를 전파하는 대사가 되었고, 전세계인들은 그의 노래에서 그의 결심, 저항 그리고 정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신념을 담아 Wailers의 첫 미국투어에서 젊은 미국인들에게 그의 이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4년 Peter Tosh, Bunny Wailer와 결별하고 I-Threes(그의 아내 Rita가 포함된 여성보컬트리오)를 조직한 후, 발표되자마자 레게의 클래식이 되버린 "No Woman, No Cry"와 "Lively Up Youeself"가 수록된 아주 뛰어난 명반, "Natty Dread"를 발표했다. 1974년 당시 밥 말리 곡 중의 하나인 "I Shot the Sheriff"는 Eric Clapton이 리메이크했으며 그 곡은 팝 single 1위을 차지하기도 했다. 70년대 말, 밥 말리는 "Rastaman Vibrations"와 "Exodus"가 미국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을 때 또한 "Exodus", "Waiting in Vain", "Jamming" 그리고 "Is This Love"등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트랙을 갖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축구를 무척 즐겨 했는데 1977년 Marley and Wailers의 유럽투어 때 프랑스 기자들과 함께 축구시합을 했다. 경기중에 그는 발에 부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그의 몸에 있던 암세포를 발견했다. 암치료를 거부한 밥말리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978년에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을 투어 했다. 뉴욕에서의 공연을 기념하기 위하여 실황을 담은 "Babylon by Bus"를 발매했고, 뉴욕공연은 레게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라이브공연으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 자메이카 Kingston에서 평화를 위한 콘서트와 Boston에서 흑인자유투사를 위한 자선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무리한 투어일정은 그의 건강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었다.
1979년 "Survival"을 통해서 이전과 달리 그의 정치적인 색채를 공격적으로 표현했다. 1980년 다시 투어에 나선 그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조깅하다가 쓰러졌다. 암은 그의 뇌와 폐 그리고 심장에까지 퍼져 있었고 8달 후 그는 사망했다.
Trenchtown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한 사나이는 그렇게 전세계의 음악 대사로서 인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갔다.
중년의 백인 아버지와 10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메이카 트렌치타운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밥 말리는 플래티넘을 기록한 뮤지션 그리고 레게의 최고스타가 되었다. 또한 그의 음악을 더욱 빛나게 했던 평화, 정의, 자유, 형제애를 부르짖은 저항정신으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다.
밥 말리는 Bunny Livingston, Peter McIntosh(후에 각각 Bunny Wailer, Peter Tosh로 알려짐)와 함께 16세에 가수로서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Drifters, Impressions, Sam Cooke, 컨트리싱어 Jim Reeves와 당시 자메이카의 토속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62년에 그는 Wailing Rudeboys로 알려진 Teenagers와 함께 첫번째 음반인 "Judge Not"을 발표했다. 이후, 팀명으로 Wailers를 채택하고 정치적인 내용을 담은 평범하지 않은 곡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어 자메이카에 서서히 퍼지고 있던 'SKA'비트의 음악을 시도했고, 그래서 "rude boy music"으로 불리기도 했다.
1966년에 밥 말리는 Rita Anderson과 결혼하여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자메이카에서 Rastafarian신앙 (자메이카의 흑인들이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신앙화된 일종의 종교로써 현재 아프리카의 많은 이들이 믿고 있기도 하다.)의 급속한 성장이 그로 하여금 다시 자메이카로 돌아오게 하였다.
SKA, rude boy music과 더욱 발전한 형태인 "rock steady"로 그의 곡들은 더욱 갈고 다듬어졌다. 그러나 1973년 이전까지는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가 Island Record에서 그의 첫 음반을 만들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결과, "Stir It Up"과 Peter Tosh의 "Stop That Train"이 포함된 "Catch a Fire"를 발표하여 전세계인들에게 처음으로 레게를 소개하게 되었다. 이 음반을 통하여 rock팬들에게 춤을 출 수 있는 새로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열정을 자각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음악적 메시지를 담았다.
자신의 Rastafarian신앙과 자메이카 공동체에 대한 중독에 자극받음으로써 밥 말리는 레게를 전파하는 대사가 되었고, 전세계인들은 그의 노래에서 그의 결심, 저항 그리고 정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신념을 담아 Wailers의 첫 미국투어에서 젊은 미국인들에게 그의 이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4년 Peter Tosh, Bunny Wailer와 결별하고 I-Threes(그의 아내 Rita가 포함된 여성보컬트리오)를 조직한 후, 발표되자마자 레게의 클래식이 되버린 "No Woman, No Cry"와 "Lively Up Youeself"가 수록된 아주 뛰어난 명반, "Natty Dread"를 발표했다. 1974년 당시 밥 말리 곡 중의 하나인 "I Shot the Sheriff"는 Eric Clapton이 리메이크했으며 그 곡은 팝 single 1위을 차지하기도 했다. 70년대 말, 밥 말리는 "Rastaman Vibrations"와 "Exodus"가 미국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을 때 또한 "Exodus", "Waiting in Vain", "Jamming" 그리고 "Is This Love"등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트랙을 갖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축구를 무척 즐겨 했는데 1977년 Marley and Wailers의 유럽투어 때 프랑스 기자들과 함께 축구시합을 했다. 경기중에 그는 발에 부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그의 몸에 있던 암세포를 발견했다. 암치료를 거부한 밥말리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978년에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을 투어 했다. 뉴욕에서의 공연을 기념하기 위하여 실황을 담은 "Babylon by Bus"를 발매했고, 뉴욕공연은 레게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라이브공연으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 자메이카 Kingston에서 평화를 위한 콘서트와 Boston에서 흑인자유투사를 위한 자선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무리한 투어일정은 그의 건강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었다.
1979년 "Survival"을 통해서 이전과 달리 그의 정치적인 색채를 공격적으로 표현했다. 1980년 다시 투어에 나선 그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조깅하다가 쓰러졌다. 암은 그의 뇌와 폐 그리고 심장에까지 퍼져 있었고 8달 후 그는 사망했다.
Trenchtown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한 사나이는 그렇게 전세계의 음악 대사로서 인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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