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추위로 몸살을 앓는 모양이다. TV 뉴스도 안 보고 인터넷 뉴스도 잘 안 읽으니 자세한 건 모르겠고, 검색 사이트에 뜨는 제목만 보고서 대충 짐작할 뿐이다. 제주공항이 마비니 어쩌니 하는 제목이 눈에 띈다.
춥긴 추운 모양이다. 우리 집 봄이와 삼순이가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는다. 주인이 나가도 본체만체다. 오히려 내가 이놈들 집 앞에 앉아서 얼굴을 봐야 할 지경이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다냐? 개가 자기 볼려면 주인더러 자기 집 앞에 와서 무릎 끓으라고 하다니...
오늘 내일 강추위를 예견하는 일기예보를 보고 아래께 텃밭의 푸성귀를 대부분 거둬들였다. 추위에 약한 상추, 치커리, 유채 등 생으로 먹을 남새만 수확했다. 배추나 양배추는 죽으나 사나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어제 저녁부터 이것들을 주재료로 한 먹을거리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저녁은 쌈채소와 장아찌를 먹기 위해 구운 삼겹살, 아침은 배춧국, 점심은 채소잡채, 다시 저녁은 온갖 묵나물들이 들어간 비빔밥으로. 장아찌는 작년 봄, 여름에 담근 것인데 전부 다 하면 열 가지가 넘는다. 마늘, 양파, 죽순, 오이고추, 곤드레나물, 취나물, 초피순, 엄나무순, 머위 등등. 잡채는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주로 파프리카 종류와 브로콜리)과 도토리묵 말린 것, 죽순 장아찌 등이 주재료다. 덕분에 11월 말에 수확하여 먹고 있던 파프리카를 이제 거의 다 소진했다. 배추를 제외하고는 이 추위에 당분간은 생 채소 먹기는 어려울 테니 마지막 만찬인 셈이다. 이제 푸성귀는 봄날을 기약해야만 한다.
이 와중에 열흘 전 파종한 고추 씨앗은 싹을 틔워 고개를 세우고 있다. 밖은 저 모양인데 벌써 여름을 준비하는 몸짓은 시작되고 있다. 사람들은 알까? 이 싹이 자라 고추가 된다는 것을. 지금부터 150일이 지나야 붉은 고추가 된다는 사실을.
한밤에 현관문을 여니 하얗다. 온통 새하얀, 눈 쌓인 풍경이 낯설다. 이 낯설음을 지우기 위해선 몇 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곳에서 눈은 그리 흔한 풍경이 아니다. 그 낯설음 위에 발자국이 선명하다. 봄일까? 삼순일까?
'살아가는 모습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나무 순, 두릅나무 순 따다 (0) | 2016.04.05 |
---|---|
매화꽃, 활짝 피다 (0) | 2016.03.20 |
겨울본색 - 텃밭 풍경과 엔진톱 소리 (0) | 2016.01.20 |
겨울에 말리는 치자, 무말랭이 (0) | 2016.01.15 |
무말랭이차를 마시며 (0) | 2016.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