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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일상

겨울본색 - 텃밭 풍경과 엔진톱 소리

by 내오랜꿈 201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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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연장 같기만 하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해서 본색을 드러낸다. 오붓한 저녁 식탁에 예고 없이 들이닥친 불청객 같다. 오늘 아침 이곳 최저기온은 영하 5.5℃. 체감온도를 10℃ 정도는 떨어뜨리는 강한 바람도 친구 삼아 데리고 왔다. 영하 15℃를 넘나드는 곳이 대부분인데 겨우 그거 가지고 뭘, 할 수도 있겠지만 영하 5℃에서 영하 15℃로 내려가는 것보다는 영상 5℃에서 영하 5℃로 내려가는 게 훨씬 더 타격이 큰 법이다. 특히나 텃밭의 작물들한테는.



▲ 양배추 종류들. 영하 5℃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작물이다.


봄볕 같은 따스함에 취해 꽃까지 피우던 브로콜리를 비롯한 양배추 종류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 어제부터 하루 종일 영하의 기온인지라 잎을 곧추세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 축 늘어진 모습이 안쓰럽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상추와 봄동배추는 잘 견디고 있는 편이다. 배추는 그렇다 쳐도 상추가 견디고 있는 건 조금 놀랍다. 하루 이틀은 몰라도 기상청 예보대로 다음 주 초까지 강추위가 이어진다면 아마도 상추는 이 파릇한 싱싱함을 유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응달에 자리한 배추는 하루 종일 잎이 얼어 있다. 월동작물인 마늘, 양파를 제외한다면 텃밭에서 그나마 이 추위를 가장 잘 견디는 작물은 돌산갓인 것 같다. 이미 나름대로 저온에 적응하느라 잎색도 노르스름한 빛을 띄고 있던 돌산갓은 '이 정도야 뭐' 하는 듯하다.



▲ 위로부터 상추, 봄동배추, 가을배추, 마늘, 양파, 돌산갓


갑자기 들이닥친 강추위 탓인지 한동안 잠잠하던 엔진톱 소리가 집 주변 야산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이 동네도 상당수 가구가 화목보일러로 난방을 한다. 그러다 보니 겨울만 되면 집 주변 야산에서는 보일러용 땔감을 자르는 엔진톱 소리와 자른 나무를 싣고 오가는 경운기 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저렇게 막 잘라도 되는가 싶은데 한낱 이방인에 불과하니 뭐라 할 처지는 못 된다. 다만 무지한 시골 어른들의 나무 때는 습관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화목보일러에 쓰는 땔감으로 생나무를 베어 와서 넣고 있는 것. 왜 생나무를 넣느냐고 물어 보면 그렇게 해야 오래 가고 화력도 좋단다. 정말 어이없는 소리다. 불이 오래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화력이 좋다는 소리는 그야말로 무지한 소리에 불과하다. 화목보일러든 기름보일러든 어떤 걸 연소시킨 열로 물을 데워 난방을 하는 게 보일러다. 그런데 연소시킨 열이 물을 데우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다른 생나무를 말리고 태우는데 쓰인다면 그건 열효율로 따지자면 최악의 방식이다. 마른 장작 몇 개면 될 걸 그 몇 배의 생나무를 때고 있는 것. 마을회관에 모여서 그렇게 하자고 합의를 했는지 대부분 생나무를 태우고 있다. 차라리 솔직하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불 보는 게 귀찮기에 생나무를 넣어 놓으면 손볼 일이 없어서 그렇게 한다면 이해는 하겠다. 이 집 저 집 자꾸 난방을 화목보일러로 바꾸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생나무를 마구 베어다 태우고 있는 건 정말이지 말릴 수 있으면 말리고 싶다.




요란한 엔진톱 소리를 들으며 나도 손톱 하나 들고 참나무 장작을 자른다. 지난 주말에 집 주변 야산에서 간벌해 둔 나무를 주워 왔던 것. 우리 집에서 필요한 나무라고 해 봐야 콩을 삶거나 음식을 만들 때 쓸 장작을 준비하는 게 전부다. 그러니 가끔씩 손톱으로 해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굵은 참나무를 손톱으로 자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나절 땀 흘리고 잘라도 사람 키 만한 참나무 스무 개 정도 자르고 나면 나가떨어진다. 톱을 쥔 손바닥, 어깨, 허리, 무릎 등 힘을 쓰는 부위는 안 아픈 데가 없다. 엔진톱이나 전기톱으로 하면 금방 하는데 왜 그 고생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난 대부분 내 몸으로, 내 손으로 직접 하는 스타일이다. 관리기도 잘 쓰지 않는다. 삽으로 고랑을 판다. 처음 농사 지을 때는 묵은 밭을 일구느라 몇 번 사용해 봤는데 땅을 밀가루처럼 만드는 거 보고 다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예초기도 잘 쓰지 않는다. 풀도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고 필요하면 낫으로 친다. 이런 까닭에 무엇이든 기계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어지간한 추위에도 땀 흘릴 수 있는 게 손톱으로 참나무 장작 자르는 일이다.


내일이 대한. 그 다음은 입춘이다. 날은 비록 매섭게 춥지만 틈틈이 나무 주워다 나르고 마른 장작 쪼개다 보면 이 겨울이 끝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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