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 하면 아직도 기억나는 게 유몽인, 패관문학, 설화문학 등이다. 고등학교 시절 학력고사를 위해 무조건 외웠던 것의 잔재다. 물론 국어책에도 실려 있지 않았고 제대로 된 번역본도 없었기에 그 내용의 일부라도 읽어 볼 기회는 없었다. 이후 내 삶의 여정 그 어느 언저리에서도 마주칠 기회 역시 만나지 못 했다. 그렇게 잊혀졌던 <어우야담>을 삽십 년이 훌쩍 지난 뒤에서야 틈틈이 읽고 있다. 원하는 책은 거의 대부분 구입해 주는 시골 동네 '평생교육관' 덕분이다.
흔히들 야담, 야설이라고 하면 민간에 유포된 음담패설을 떠올리는데 <어우야담>은 풍자나 해학은 물론 역사적 사실에 관한 촌평, 당대의 세태나 풍습에 대한 비판적 언급, 뛰어난 문학 작품(주로 한시)이나 서체 또는 그것들을 남긴 사람에 대한 기록 등 조선시대 지식인이 살아가면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단상들을 모아 놓은 것 같다. 요즘으로 치면 일간신문 '사설'이나 '오피니언' 코너에 실릴 칼럼성 글이나 '횡설수설'이나 '요지경' 같은 코너에 실릴 글이 뒤섞여 있는 셈이다. 어느 게 유몽인이 쓴 원본인지 모를 정도로 이본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읽고 있는 건 2006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신익철 교수 주도로 편집하고 번역한 책(돌베개)이다. 이 책에는 전부 558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목차나 찾아보기를 제외하면 800페이지가 조금 못 되는 책이니 한 편 당 그 분량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하나의 이야기가 한 페이지 남짓인데 고작 몇 줄에 불과한 것도 있고 긴 것이라고 해도 서너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대부분의 편이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가 유몽인의 창작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뭐, 수필에 가까운 글을 가지고 그 진위를 따진다는 게 무의미한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읽으면 이 책이 단순한 '야담'이나 '설화'를 모아 놓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예로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오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시조의 지은이가 황진이로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 잡는 부분이다(466~467). 야은 길재의 시조인데, 당시 사람들이 황진이가 지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회상하는 부분도 있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서애 유성룡이 경연 석상에서 주창한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지지하지 못한 자신을 질타하는 내용을 옮기고 있는데, 유몽인 자신도 그 경연에 참여했으면서도 이이의 말을 찬양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내용이다(83~84). 그런데 이 경연에 유몽인 자신이 참여했다는 언급은 사실 좀 의심스럽다. 기록을 찾아 보면 유몽인이 문과에 급제한 건 1589년인데 율곡 이이는 이미 1584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설혹 그가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경연을 관람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 해도 한낱 유생의 처지에 찬양이니 뭐니 할 위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역사적 사료가 아니라 문학 작품으로 읽어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역사적 기록이나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도 있다. 특히 고려사의 내용을 언급하는 곳이 여러 편인데 공민왕과 신돈의 관계를 꽤나 자주 언급한다. 고려사에 기록된 신우, 신창을 언급하면서, 신돈이 왕비와 통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권근과 정도전이 우리 조선 왕조에 아첨하느라 사실을 왜곡했"(595)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서슴치 않는다. 이건 어찌 보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서술이 아닐 수 없기에 유몽인의 서술인지 후대에 덧붙인 건지 의심스럽다. 이토록 혁명적인 태도가 다른 곳에서는 신우를 언급하면서 정몽주의 충절을 비아냥거린다. 공민왕의 아들인지 신돈의 아들인지에 따라 정몽주의 충절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면서 정몽주를 머뭇거리며 구차하게 산 인물로 묘사한다(46~47). 이 외에도 정지상의 무리가 사악한 간신이라는 기록은 모두 김부식 일당이 지어낸 이야기라 볼 수 있으니 사서에 기록된 것을 다 믿을 수는 없다고 한다(594~595). 아무래도 후대에 가필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과장이 심한 부분도 많다. 논개의 충절을 언급하는 부분에 보면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내렸다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내용이 나온다(36~37). 그런데 촉석루를 묘사하면서 밑으로 만 길 낭떠러지 강물이 흐르는 듯하다고 한다. 아무리 가 본 적이 없다곤 하지만 불과 몇 미터의 높이인데 열 길 낭떠리지는 몰라도 만 길은 너무 심했다. 이는 한명회를 언급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인데, 한명회는 정강이 뼈의 통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픈 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하인을 시켜 돌로 자신의 정강이 뼈를 부러트리게 하고는 그 속에서 엄지손가락 굵기 만한 벌레 한 마리를 찾아내 솥에 넣어 태워 죽인 뒤에 그 자신도 죽었다고 한다(647~649). 아마도 이 당시까지 세조반정을 일으킨 한명회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듯하다.
당시의 사회상이나 풍습에 대한 고찰도 많은데 특히 삼년상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눈에 띈다. 아무리 효도도 좋지만 한 줌 쌀로 연명하는 삼년상을 지내고 죽거나 몸을 상하는 이가 많은데 자식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받는 효도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해서 유몽인 자신은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자신의 자제들을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고 서술한다(34~35). 이외에도 과거시험과 관련된 일화나 당시 벼슬아치들의 일상에 대한 언급, 물난리나 폭설과 같은 천재지변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런저런 책에 나오는, 이미 익숙한 내용도 많다. <어우야담>은 그야말로 한 시대의 문화나 사회상에 대한 백과전서적 기록이요 창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집어 들고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괜찮은, 그런 류의 책이지만 그 내용 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읽어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은이나 우정, 충절에 관한 여러 이야기의 시발점이 아마 이 책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읽고 보고 듣는 것들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피노자, 저주 속에서 피어난 긍정의 철학 (0) | 2015.11.02 |
---|---|
칡과 등나무가 얽힌,'갈등'의 어원을 찾아내는 식물사회학 (0) | 2015.05.21 |
『미학의 역사』 - 보완적 텍스트가 필요한 미학 교과서 (0) | 2015.04.08 |
아룬다티 로이 - 『9월이여 오라』 (0) | 2014.12.26 |
고독의 깊이 - 기형도 (0) | 2014.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