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끝내고 나니 도로 날이 풀렸다. 낮 기온이 섭씨 15도 가까이 올라간다. 바람도 고요하다. 바람 부는 추운 날 골라 배추 절인 게 좀 억울한 생각마저 들게끔 만든다.
아직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거나 서리가 내린 적이 없기에 텃밭의 작물들이 본격적인 냉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상추와 파프리카 잎을 시작으로 서서히 시듦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덜 익은 파프리카가 제법 달려 있는데 시든 가지에 놓아둬 보았자 수분만 빠질 것 같아서 모두 따냈다. 크고 작은 거 모두 합쳐서 서른 개 가까이 된다. 이걸 다 소비하기 위해서는 당분간은 억지로라도 파프리카가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파프리카 정리하면서 미뤄두었던 참다래도 수확했다. 마당 한구석에서 덩그러니 혼자 자라는 모양새라 거름 한 번 준 적이 없는 나무다. 그럼에도 해마다 적은 양일지라도 마트에서 사 먹는 참다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는 열매를 선물한다. 이걸 먹다가 어쩌다 마트에서 파는 크고 좋은 참다래를 먹으면 참외 먹다가 물외 먹는 느낌이다.
일 년에 두 번이나 꽃을 피운 치자 열매도 땄다. 꽃 피운 시기가 3개월 가까이 차이 나는데 열매의 성숙 정도는 그리 크게 차이 나는 것 같지는 않다. 작년엔 성숙 정도만이 아니라 크기도 제법 차이가 났던 것 같은데... 일 년에 두 번 생식 생장을 하는 것에 스스로 적응해 가는 것일까?
모처럼 하루 종일 햇볕을 볼 수 있는 날이다. 겨울 해라 더없이 짧기도 하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미뤄두었던 일 정리하는 손길로 분주한 하루다.
거금도 적대봉 너머로 빠르게 넘어가는 석양이 오랜만에 인사한다. 치자 열매를 닮은 노을빛을 품고서. 이렇게 깨끗한 석양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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